"알지?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열심히 공부해야 미래가 편한 거야. 지금은 힘들어도 나중엔 웃게 돼." 엄마는 작년에도 그랬다. 4학년은 인생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라고 말이다. 6학년이 되는 내년엔 뭐라고 말할까?-38쪽
한꺼번에 학원에서 밀려 나온 아이들 때문에 거리는 복잡했다. 도대체 이 많은 아이들이 어디서 온 건지 신기하기까지 했다. 학원 거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가운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학원이 들어차 있다. 무리에 섞여 걷다 보면 마치 내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으로 최상의 제품을 찍어 내는 것처럼, 나도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지고 있나는 느낌. 절대로 불량품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77쪽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20등도 아니고, 2등인데도 너무 창피했다. 한 번쯤은 봐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엄마가 얼굴을 찌푸리자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무서웠다. "다음은 없어. 그건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엄마가 누구 때문에 고생하는지 몰라?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 될 거 아니야. 공부만큼 쉬운 게 어딨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잖아."-94쪽
내 눈동자가 '계획표'라는 글자에 꽂혔다. 불안했다. 엄마는 나를 관리해야 할 고객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 하루하루를 설계했다. 오늘은 11월과 12월 계획표였다. 11월 초에는 영어 인증 시험을, 12월에는 기말고사를 치러야 한다. 시험 날짜에 맞추어 하루, 삼십 분 단위로 계획되어 있었다.-109쪽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원래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루 종일 책만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책 읽는 것마저도 간섭하면서 싫어졌다. 책장을 덮자마자 느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식은땀이 났다. 이제 나에게 세상 모든 책은 교과서와 다름없었다. -118쪽
시간만 사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과거도 현재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엄마 말처럼 미래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만약에 그렇다 해도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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