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1903 호/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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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역사]자동차 탄생에 숨은 ‘벤츠’ 부부의 비화

독일은 지방자치의 역사가 오래돼 지역별 특색이 분명하다. 특히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 전국의 중심도시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물로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남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 슈투트가르트는 인기가 별로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을 심하게 맞아 대부분의 유적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배낭여행객들은 그저 프랑스와 스위스를 드나들 때 기차를 갈아타는 곳이라는 인식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2006년 5월, 슈투트가르트의 명성을 단숨에 바꿔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자동차 제조업체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z Benz)가 회사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새로운 자동차 박물관을 연 것이다. 둥글고 울룩불룩한 은색의 금속 띠를 층층이 쌓아올린 듯한 파격적인 외양은 TV와 신문의 단골 소재로 오르내렸다.

내부의 구성도 획기적이었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은색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다. 이후 나선을 따라 돌아 내려오며 벤츠의 역사가 담긴 전시물을 시대별로 감상하는 방식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홀 중앙에 전시된 세 바퀴 자동차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카를 벤츠(Karl Benz)가 1886년에 세계 최초로 만든 휘발유 자동차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Benz Patent-Motorwagen)’이다.


•독일 특허 37435번을 획득한 세계 최초의 자동차

[그림 1] 세계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 ‘모토바겐’을 개발한 카를 벤츠.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카를 벤츠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도시 칼스루에(Karlsruhe)에서 태어나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라인강을 따라 북쪽으로 70km 정도를 흘러가면 만나는 북쪽 도시 만하임으로 이사해 동업자 아우구스트 리터(August Ritter)와 함께 1871년 강철 판금 회사를 차렸다.

창업 초기에는 벌이가 시원찮았다. 그러나 약혼녀 베르타(Bertha)가 결혼 지참금으로 리터의 지분을 사들이면서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카를은 1872년 결혼식을 올린 후 공장용 대형 엔진을 설계하고 제작하는 일을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1878년 12월 31일에는 소형 2행정 휘발유 엔진을 발명하고 이듬해 특허를 받았다.

카를의 열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에도 배터리 시동, 점화플러그, 속도 조절 시스템, 기화기, 클러치와 기어 시스템, 수냉식 라디에이터의 특허를 획득하는 등 지금의 자동차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기본적인 시스템 대부분을 고안했다.

그리고 1886년 1월 29일 마침내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놀라운 발명품이 탄생했다. 의자와 핸들, 세 개의 바퀴를 단 최초의 자동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차는 954cc에 0.9마력을 발휘하지만 100kg의 초경량을 자랑하는 4행정 휘발유 엔진을 갖고 있었다. 독일 정부의 공식특허 37435번을 얻었기 때문에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 1호’ 즉 벤츠(Benz)가 특허(Patent)를 받은 모터(Motor) 달린 수레(Wagen)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1.5마력 엔진을 갖춘 2호와 2마력을 발휘하는 3호를 연달아 개발해 최고속도를 시속 16km까지 높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판매량이 많지 않았다. 말이 끌지도 않는데 혼자서 털털거리며 이동하는 새로운 교통수단에 사람들은 좀처럼 마음과 지갑을 열지 않았다.


•벤츠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자동차 문화도 없다

1888년 8월 초 카를의 아내 베르타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만하임에서 남쪽으로 100km 떨어진 포르츠하임의 어머니 집까지 자동차를 몰고 가기로 한 것이다. 여자 혼자서도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자동차가 얼마나 대단한 발명품인지 사람들도 알게 될 거라는 확신에서였다.

신중한 성격의 남편에게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15세와 14세로 아직 어렸던 두 아들 오이겐(Eugen)과 리하르트(Richard)도 여행에 동반했다. 연료도 제대로 된 공구도 없이 무작정 출발한 베르타는 모토바겐 3호를 몰고 라인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림 2] 카를 벤츠의 아내 베르타 벤츠(좌)가 장거리 여행에 사용한 벤츠 파텐트 모토바겐 3호(우).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를 무사히 통과하고 약간 남쪽의 비슬로흐에 도착하자 연료가 떨어졌다. 그녀는 가까운 약국으로 달려가 석유 용제의 일종인 리그로인을 구입해 자동차에 주입했다. 이 약국은 ‘세계 최초의 주유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금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후 칼스루에를 거쳐 슈투트가르트 서쪽의 포르츠하임까지 104km를 무사히 달린 베르타는 그제서야 남편에게 전보를 보냈다. 3일을 머물다 다시 만하임으로 돌아갈 때는 라인강변을 지나는 90km 길이의 지름길을 택했다.

이 길은 2008년 9월 ‘베르타 벤츠 메모리얼 루트(Berth Benz Memorial Route)’라는 이름이 붙었고 세계 자동차 애호가들이 언젠가 한 번은 꼭 달리고 싶은 길로 꼽힌다. 지금도 격년마다 앤티크 자동차 소유주들이 모여 자동차의 어머니 베르타를 기념하는 퍼레이드를 연다.

베르타는 운전에만 능숙한 것이 아니었다. 여행 중에 자동차가 말썽을 부리면 기지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했다. 평소에도 남편을 도와 기계 제작에 참여했던 경력 덕분이었다. 기화기의 노즐이 막히면 머리핀을 이용해 구멍을 뚫었고, 와이어가 다른 부품에 닿아 간섭이 일어나면 스타킹으로 묶어 고정시키기도 했다. 브레이크가 닳아서 성능이 떨어졌을 때는 구두 수선공을 찾아가 가죽끈을 설치해달라고 주문했다. 현대식 브레이크 라이닝을 개발한 것이다.

카를 벤츠가 위대한 발명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는 아내 베르타의 역할이 컸다. 결혼 지참금을 투입해 남편의 회사를 일으켜 세우고, 자동차 관련 특허를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직접 장거리 여행에 나서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자동차 수리와 정비까지 혼자 힘으로 해낸 베르타 벤츠. 세계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한 카를 벤츠와 함께 실로 자동차 역사에 길이 남을 부부가 아닐 수 없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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