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 슬럼버
최종훈 글 그림 / 걸리버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은밀하게 위대하게 '슬럼버'다. 수면, 잠, 파자마... 뭐 이런 뜻이 있던데, 왜 '슬럼버'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 작품은 본편의 번외편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주인공 원류환을 아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먼저 꼬마 조장 리해진!
본편에서 원류환이 꼬마 해진에게 상처를 입히는 장면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번에 그 속내를 보여주었는데 이제야 납득이 가고 이해가 간다.
그때 남겼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애초에 갈 수 없는 길이었다.

동무를 밟고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는 야수의 세계에서, 동무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굶주린 배는 닭고기 한덩어리에 좀전에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희석시켜 버린다.
바로 그걸 지적해버리는,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선배의 조언이 애처롭다.
배고픔 앞에서 무엇이든 이유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핑계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공간이 있을 것이다.

리해랑의 기억도 엿볼 수 있었다.
밝고 명랑하며 오버하는 스타일로 보이지만 누구보다 외로움을 타고 정에 굶주려 했던 친구다.
그에게 원류환은 역시 특별했을 것이다. 해진과는 다른 의미로.
친구지만 친구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전사의 우정이 뜨겁고 아프다.
마지막이라면 꼭 배웅하고 싶은 상대, 기회만 있다면 꼭 보고 싶은 상대가 류환이었다.
친구지만 친구라고 부르지 못하는 하나뿐인 친구

해랑이 기타에 붙이고 다녔던 두장의 사진이 아프다.
어머니 사진 한장, 친구 사진 한장.
마음 기댈 거라곤 그렇게 두장의 사진 뿐이었다.
아버지는 마음에서 버렸다.
아니, 그가 먼저 버림받았다.
죽기 적전 그가 끌어안았던 기타의 깊은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후회 없이 눈을 감았다.
살리고 싶은 목숨이 있었고, 데리고 가야 했던 목숨이 있었다.
그래서 제 몸을 던졌다.
온몸이 찢겨졌지만 마지막에 담고 싶은 것들을 마음에 담았다.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하면서 잘 놀았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애석하게도...

동네 이웃들에게 그는 동구였다.
바보 동구. 모자라도 성실하고, 궂은 일 마다않고 해주던 우리 동네 동구,
내 작은 아들 동구.
그 아이가 간첩이라고 한다. 남파 간첩.
믿을 수 없는 진실 앞에 당연히 망연자실한다.
국정원에서 뭐라고 떠들건 그들에게 동구는 해맑고 순박한 청년일 뿐이다.

동구도 그랬다.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어머니에게만 쓴 게 아니었다.
그가 처음으로 마음을 주고 정착하고 싶어했던 그곳에,
마음으로 새긴 고향 땅에,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진 그 땅의 이웃들에게 그가 남긴 마음이 애잔하다.

자신이 떠난 뒤 그들에게 남을 자신의 모습을 걱정했다.
그의 정체를 알고 난 뒤 그들이 가질 감정이 두려움은 아니길 원했다.
야수로 태어나서 괴물로 자란 그가, 인간 병기로 길러진 그가 바란 마지막 소망이었다.
그것도 적국 대상 요원에게 부탁한...
그들도 이렇게 인간인 것을... 사람답게 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가진 인간인 것을....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조각난 조국이 안타깝고 가엾다.

원작 만화를 재밌게 읽고 영화도 즐겁게 보고 왔다. 이 외전 성격의 책은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에 출간되었는데, 본편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무척 짧아서 아쉬움이 큰데 사이사이의 여백을 잘 메꿔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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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쟁이 2013-07-2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지 모르게 모든면에서 조금씩 당위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이야기였는데 빈칸메우기 같은 책이네요.

마노아 2013-07-21 23:45   좋아요 0 | URL
그렇게 빈칸을 메우고도 완벽해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조금 달래주었죠. 그게 어디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