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처럼 살고 싶어 (CD 2장 + 손악보책 1권) - 이오덕 노래상자
이오덕 시, 백창우 곡 / 보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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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창우 아저씨네 노래 창고 중 이오덕 노래 상자 "노래처럼 살고 싶어"다.
양팔을 벌리고 한쪽 무릎만 세워 앉은 듯한 사람 모양새가 보기 좋다.
언뜻 떠오른 것은 '애도하는 사람'의 애도하는 자세랄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가사집이면서 시집인 책 한 권과 두 장의 시디로 구성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반복해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모처럼 싱그러운 노래를 들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참 해맑은 웃음을 지으시는 선생님. 가식도 없고 욕심도 없는 그런 표정이다.
선생님의 표정은 선생님의 글을 닮았다. 아니, 글이 선생님의 얼굴을 닮은 것일까?

선생님은 어린이들 글쓰기가 어려운 '공부'로 되는 것을 걱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글은 쓰고 싶어서 씁니다. 쓰고 싶어서 써야 됩니다. 그래야만 좋은 글이 됩니다. 그것은 마치 말을 할 때, 하고 싶은 말이라야 저절로 술술 얘기가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쓰기 싫은 글, 상 타고 점수 따기 위한 글은 쓰지 말고 쓰고 싶은 얘기들을 진정에서 나온 말로 쓰십시오." (<글쓰기 이 좋은 공부>에서) -9쪽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사회의 현실을 보면 악한 것이 언제나 착한 것을 이기는 것 같다. 그러나 긴 역사를 통해서 보면 마지막에는 결국 착한 것이 이긴다. 무기를 만들어 내고, 사람을 해쳐서 제 욕심만 채우려고 온갖 궁리를 하는 인간들을ㄴ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가고 만다." (<산 넘고 물 건너>에서) -10쪽

이 부분에서 참으로 위로를 얻는다. 뉴스를 피해가지 못하지만, 뉴스를 들을 때마다 괴롭다. 이 놈의 세상, 콱! 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을 만큼 사악한 세상에 분노를 느끼는데, 선생님은 길게 보면 그래도 결국 착한 것이 이긴다고 하셨다. 지금 포기하고, 지금 실망해서 좌절하지 말자고 다시 마음 잡게 된다. 긴 역사를 생각하자. 그 과정이다. 그 일부분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누가 그렸을꼬? 짙은 눈썹의 선생님 얼굴이 강렬하다.
머리 숱도 많다. 이만하면 훈남 중의 훈남 선생님이다.^^

이주영 씨가 전한 일화에는 선생님이 과일 껍질을 따로 모아 말리고 계셨다고 한다. 선생님 계신 집에서 쓸 데가 없는 데도 말이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충주)무너미에 갖고 가 밭에 버릴 때도 있고, 산에 갖다 버려도 돼요. 누가 그렇게 많이 갖다 버리는 것도 아니고, 겨울에 산에 갖다 두면 작은 짐승들이 먹잖아요. 겨울에는 먹을 것도 잘 없을 텐데."

아아, 산에 사는 작은 짐승들의 겨우살이까지 신경 쓰는 이 마음씀이라니!!!
그러나 도시 속 무더운 내 방에선 아까 먹은 감기 시럽약을 바로 버리지 않았더니 달달한 냄새를 맡고 벌써 개미가 달려왔다. 죄송해요. 개미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냐만은... 전 개미랑 같이 살기 싫었어요. 흑흑...ㅜ.ㅜ

또 이주영 씨의 일화다. 흙으로 빚은 물 잔에 죽을 담아서 드시는 게 안타까웠다고.
하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다.
"그런데-음, 이게 참 편리해요. 한 끼에 딱 요만큼 먹으면 속이 편해요. 나한테 딱 맞아요. 그리고 이렇게 들고 있기도 좋고, 손으로 감싸면 손 안에 쏙 들어와요. 참 편하고 좋아요. 이게 예술이지요. 안 그래요? 이게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지요. 청자가 예술이 아니에요. 보고 구경하는 청자보다 이렇게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그릇이 진짜 예술이에요." -15쪽

며칠 전에 어느 분이 올려준 사진에 돌멩이 세개를 포개어서 만든 아기 부처가 생각난다. 근사한 사찰 풍경보다도 더 시선을 끌던, 그 자체로 완성된 아름다움을 가졌던 그 소박한 돌멩이들이 진짜 예술이었지...

우와아, 책들의 무덤이라고 해야 하나, 일기들의 낙원이라고 해야 하나, 자료들의 천국이라고 해야 하나?
공간과 가구의 부재로 다소 어지러워 보이긴 하지만 꽤 꼼꼼하게 정리하고 분류해 두신 것 같다.
하나하나 저 글단지들을 손으로 빚었을 테지.
부지런하고 부지런한 선생님. 일기도 40년 이상을 쓰셨다. 아주 자세하게.
살아오신 삶의 여정이 모두 그렇게 기록이 되었다.
참 많은 것을 주고 가신 선생님.

바보라도 좋아.
바보라도 좋아.
죽을 때까지 하늘 위에서
노래처럼 나는 살고 싶어.

-이 부분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지난 달에 보고서 완전 반했던 "닭들의 꿈 날다"가 떠올랐다. 거기선 다리 잃은 독수리가 날지 못하는 닭과 함께 '닭수리'가 되어 비행을 한다.
비무장지대를 넘어 평화를 향해 달려가던 닭수리.

또 한 곡이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이승환의 '내가 바라는 나'라는 제목의 노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살 수 있는 나
아무것 없이도 살아 갈 수 있는 나
내 주위 고마운 사람들 행복을 빌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낼 수 있는 나
아마 웃을거야 철없던 날의 내 턱없는 바램
아주 오랜 후에 부끄럽진 않을런지
내 부족함을 알고 욕심을 알며
내가 가진 것들에 으시대지 않는 나
이해와 용서로 미움없는 나
사랑의 놀라운 힘을 믿어갈 수 있는 나
마지막 내 진정 바라는 나
더 이상 너때문에 아파하지 않는 나


이런 노래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어떤 노래가 있을까. 많이 떠오르지만... 다 적지는 못하겠다.
나도, 노래처럼 살고 싶다.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말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 중 하나가 이토록 발달한 의성어와 의태어다.
리듬감도 느껴지고 그대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조주희 작가님의 '키친' 5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자신을 기다리는 저녁 밥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장면이 퍼뜩 떠오른다.
그런 기억으로 남기에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된장찌개.
구수한 엄마 냄새다.

'벌레소리'의 마지막 부분이다.
벌레소리를 지구의 숨소리라고 했고 평화의 소리라고 했다.
기억나는 벌레 소리라면, 여름의 매미 소리, 가을날 귀뚜라미 소리.
또 뭐가 있나? 파리와 모기의 이잉~ 소리를 싫고, 개구리 소리 잘 못 듣지만 좋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이 글을 보니 쪼오금 반성이 된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들려주신 신춘문예 당선작의 제목은 하느님의 발자국 소리였다.
그 작품에서 하느님의 발자국 소리는 눈이 내리는 소리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가 눈 내리는 날에 외쳤던 그 한마디가, 내가 직접 보지 못한 글임에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림도 참으로 순수하고 정겹구나.

내가 고래라면-

이 장면을 보니 안치환이 떠올랐다.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붉게 물든 저녁 저 노을처럼 나 그대 뺨에 물들고 싶어

내가 만일 시인이라면 그댈 위해 노래하겠어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나 행복하게 노래하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댈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내가 만일 구름이라면 그댈 위해 비가 되겠어
더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나 시원하게 내리고 싶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그댈 위해 되고 싶어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내겐 얼마나 큰 기쁨인지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나의 마음을
워- 이런 나의 마음을

//내가 만일--라면... 하고 빈칸을 채워본다.
지나치게 세속적인 것부터 떠올라서 살짝 부끄럽다.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이 퍼뜩 생각난다.
추운 겨울날 봄을 기다리다 지친 친구들에게 노래와 햇살을 선물할 수 있는 시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세 문단이 아주아주 마음에 든다.
오늘은 여러모로 '욕심 없는'에 자꾸 눈길이 간다.
그게 참 쉽지 않아서, 그게 참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늘을 내 집으로 만드는 비밀이니 어려운 게 당연한가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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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6-1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오덕 선생님!
이름 부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차오르는 분이어요.

마노아 2013-06-14 13:02   좋아요 0 | URL
그렇죠? 먹먹하게 하고 뭉클하게도 하시는 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