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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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지만 정작 그의 작품은 그닥 아는 게 없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를 읽었는데, 내게는 원작보다 영화가 훨씬 좋았기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갈증이 그리 크지 않았다. 이번에도 영화 개봉을 앞두고 부랴부랴 책을 읽었는데 초반에 몰입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 이번에도 내게는 영화 쪽이 더 선명하고 좋았다. 개인적으로 바즈 루어만을 좋아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좋아하니 시너지 효과가 있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192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정보도 없는 관계로, 혼탁하고 무질서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영화는 영상과 음악으로 함께 보여주니 훨씬 이해도 쉽고 몰입도도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건 분명 원작이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왜 '위대한' 개츠비가 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영화는 그 부분도 아주 쉽게 설명했다. 그걸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작중 화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했다.

 

작품을 보면서 개츠비에 대해 연민도 느끼고 부러움도 느꼈다. 그가 일생을 건 여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걸 몰랐다는 데에 연민을 느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을 던져 사랑할 대상을 갖고 있다는 것에는 하염없는 부러움이 일어버린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절절한 사랑도 한번은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작품이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가 강을 사이에 두고 강북 강남 나눠 있듯이 미국 동부의 도시에서도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로 나뉘어서 서로를 디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흥청망청 부어라 마시고, 또 윤리와 도덕이 실종된 시절을 살다가 벼락처럼 경제대공황을 맞게 되는 거겠지. 필연적인 결과로 보인다. 그리고 그 폐해는 전 세계가 함께 겪어야 했다. 참, 안타까운 역사였다.

 

민음사 버전의 위대한 개츠비는 내 입장에서 번역이 크게 좋지 않았다. 말끝마다 "형씨"라고 붙였는데, 영화에서는 "친구"라고 번역했다. 뉘앙스를 생각할 때 영화 쪽이 더 어울리게 들린다. 그밖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는 역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소 만족스럽지 않았다. 해서 시간이 좀 더 흐른 다음에 다시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싶어졌을 때는 타 출판사 번역으로 접해 보고 싶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단순 비교가 힘들겠지만, 그보다는 다르게 다가올 위대한 개츠비가 궁금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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