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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8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평점 :
지식e 시리즈를 참 좋아한다. 이 책은 내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기쁨들이 뒤섞여 있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주고, 지성의 문을 두드려 주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켜서 뭉클한 감동까지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즌이 나올 때마다 무척이나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펴들었다. 벌써 시즌8, 여덟 권째 책이다. 게다가 7권가지 누적 판매부수는 무려 100만 권을 돌파했다고 한다. 소설도 아닌 인문 서적이, 게다가 영상에서 시작해서 책으로 옮겨온 원소스 멀티 유스가 이렇게 각광을 받으니 더 놀랍기만 하다. 책에서 먼저 인기를 끌어 영상으로 옮겨간 경우는 많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보다 신선하다.
이 책의 원본에 해당하는 방송은 5분을 넘지 않는다. 시각적인 기쁨이야 영상으로 접할 때 오감이 더 즐겁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말을 다 전달하는 것은 무리일 터, 이렇게 보충수업 하듯이 책으로 빈 칸을 채워주는 것이 참 좋다. 물론, 나의 경우는 대다수 책으로 먼저 보고 나중에 영상을 찾아보는 편이어서 순서가 좀 바뀌긴 하지만...^^
(3차원 영상의 아름다움을 2차원으로 옮겼지만 그 맛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사진을 잘 못 찍었지만 책속 사진은 선명하고 아름답다.)
이번 시즌 8에서는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묶어냈다. 결국 사람 사는 이곳, 사람의 이야기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초반에 영상에서 나왔을 문장들이 등장하면 누구에 관한 이야기일까 잔뜩 눈을 빛내며 읽어 내려간다. 초반의 몇몇 힌트만 가지고 주인공을 찾아내면 수수께끼를 맞힌 것처럼 큰 재미를 느낀다. 내가 이전에 몰랐던 인물이 나오면 그 생소함에 또 반가워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역사를 담은 이야기가 나오면 또 열광하게 된다. 이렇게 깊은 의미가! 게다가 광고의 카피 문구를 떠올리게 하는 문장들은 몹시 매혹적이어서 독자를 자주 홀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대결은 축구경기 이상의 함의를 지닌다. 카탈루냐의 수도이자 프랑코 파시즘 정권에 맞선 자유의 성지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의 수도이자 프랑코 정권의 근간이었던 마드리드, 이 두 지역을 연고로 하는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격돌은 사실상 카탈루냐와 스페인의 대리전과 다름없다. FC바르셀로나의 슬로건이 ‘MES QUE UN CLUB'(클럽 그 이상)인 이유다.-34쪽
‘클럽 그 이상의 클럽!’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닌 문화와 역사와 인간 승리를 함께 담아냈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차이점도 놀라웠고, 여기서 파생해서 함께 설명한 협동조합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특히나 한국의 협동조합이 본연의 자세를 잃고 자본주의화해서 경쟁 위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소름도 돋았다. 단지 협동조합이기만 해서는 안 됨을 잊지 말아야겠다. 한 편의 내용이 끝날 때마다 소개해주는 책들도 흥미롭다. 같이 공부하고 참고할 것들이 마구 늘어간다. 즐거운 비명이라 하겠다.
그러나 협동조합 운동가 김기섭은, 오늘날 한국의 협동조합이 과연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결사체이자 사업체로서 상생과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데, 한국의 협동조합은 결사체로서이 성격을 심각하게 이탈해서 경쟁력 강화, 소비자 주권 등의 시장자본주의 용어는 물론이고 주식회사의 성장·개발방식을 도입하고, 협동조합들끼리 바로 이웃에 매장을 여는 등 경쟁체제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37쪽
'마요 광장의 어머니들' 편은, 이 책을 읽은 것이 5월이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독재 정권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시민들과 그들의 유가족이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만들어낸 당사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면서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인사들을 불구속기소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1996년 1월 내란과 반란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함께 제5공화국 비리수사를 진행했다. 199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은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가 12월 22일 ‘지역감정 해소 및 국민대화합’의 명분으로 특별 사면되었다. 납부한 추징금은 532억 원이고 나머지 1,673억 원은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어서” 미납했다. 2007년 1월 경남 합천군은 황강변 ‘새천년 생명의 숲’의 이름을 일해공원으로 바꾸었다. 일해는 전두환 대통령의 아호다. 2012년 2월 서울 상암동에 박정희기념관이 개관했다. 총 220억 원의 공사비 중 200억 원이 국고보조금이다. -84쪽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 이 책에서 이분을 다시 만나자 반가움이 한층 더했다. '공공성'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땅이니, 내 집이니, 내 재산이니... 라는 명분으로 공공성을 해치는 것은 얼마나 저급하고 천박한 선택인가.
“사유지 안에 세워지는 건축은 동시에 지구 위에 구축되는 건축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건축은 그 태생이 공공적”이기 때문이다. 정기용에게 건축은 하나의 독립된 대상이라기보다는 환경과 어우러져 풍경의 일부를 이루며 그곳의 역사, 문화, 사용자의 편의와 정서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하는 구체적 사물이다. 여기서 건축가의 역할은 다양한 현대적 삶을 이해하고, 조절하고 판단하고, 공간이 주는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노동을 조율하여 “원래 거기 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해내는” 것뿐이다. 이것이 바로 정기용이 말하는 ‘감응의 건축’이다. -168쪽
그의 이름 앞에 ‘건축철학자’라고 명명한 것은 적절하고도 적확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경의를 표한다.
의미 없는 상상이지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역사를 돌이켜서 어느 한 부분만 수정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무엇을 들어내고 싶은지...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지만 현대사로 범위를 한정 짓는다면 나는 이승만의 집권을 막고 싶다. 친일 청산의 기회를 박탈하고 그들의 영구적 집권을 뿌리 내린 이승만. 나는 거기서 분단과 전쟁과 독재의 모든 씨앗을 본다. 비틀비틀 힘겹게 걸어온 이 땅의 민주주의. 그 만신창이의 역사도 거기서 뿌리를 본다. 이 책에서는 친일인명카드 제작에 인생을 걸었던 임종국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반민특위도 같이 다뤘다. 당연히 이승만 얘기도 나온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 전쟁'이 아니 떠오를 수가 없다. 양으로 따지자면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친일파의 후손들은 질로 따지자면 이 땅의 절대 권력과 부를 거머쥐고 있다. 대대손손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탑 속에서. 점점 더 희박해지는 역사교육의 현실도 함께 떠올렸다. ‘야스쿠니 신사’를 아냐고 물으니 '야스쿠니 잰틀맨'이라고 대답하는 청소년들을 보며 단순히 아해들의 무지함을 탓할 수가 없다. 국사가 필수과목이었던 내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근현대사는 얼마나 허술하게 배웠던가. 배우지 못해서 모르는 이 아이들이 자라고 난 다음의 대한민국과 우리 역사는 어디를 향해 갈지 두려울 지경이다. 역사는 역시, 가정교육이 답인가....ㅜ.ㅜ
방문취업제가 외국인노동자의 가족 동반을 불허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한국행을 택한 가정의 이혼율은 25%에 육박한다. ‘한 자녀 갖기 풍조’가 만연하여 신생아수는 10년 전에 비해 1/4로 줄었다. 연변 조선족의 둘째자녀 출생수는 연 900명을 밑돈다. 아이가 없으니 민족학교가 문을 닫고, 민족학교가 없으니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내는 악순환 속에서 역사와 언어에 대한 교육도 부실해지고 있다. 2009년 길림성 조선족 언어사용 실태조사를 보면, 초등학생 62.5%, 중고등학생 48%가 한글을 전혀 모른다. 여기에 중국에서 살려면 중국말을 잘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조선족사회 학부모들 사이에 큰 호응을 얻으면서 민족학교와 한글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271쪽
조선족 문제도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가정이 해체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의 1편 우승자 백청강이 바로 떠오른다. 한국으로 돈 벌러 떠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면서 외로움이 사무칠 때마다 더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는 그 청년 말이다. 통계로 본다면 조선족이 국내에서 일자리를 얻는다고 해서 내국인이 그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하다. 그런데도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 우리 동포를 향한 이 땅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그러니 타국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은 오죽할까. 경제 규모가 이만큼이나 성장했지만 우리의 시민 의식 수준은 여전히 성인이 되지 못하고 철없는 아이 수준을 밑도는 듯하다. 배워야 할 게 참 많다.
23년간 11번의 선거에서 승리한 스웨덴의 최장수 총리 타게 에를란데르 편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가난하고 어려울 때 복지를 말했던 그 의식이 놀랍고, 오히려 부유해졌기 때문에 나눔이 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 갑갑했다. 똑같이 경제 성장을 부르짖었지만 누구는 '함께'를 외쳤고, 누구는 그들만의 리그를 장식했다. 소통의 민주주의. 아득하게 들린다. 부럽고, 부럽고, 그래서 무참하다. 에를란데르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가 나왔으면 했는데 방송 분량만 보여주고 추가 내용이 없어서 섭섭했다. 내용이 짧아서 섭섭하기란 나로서는 좀처럼 없는 일이다. 긴 것 질색팔색하는 인간인지라... 그만큼 꽉 찬 내용의 지식e 시리즈를 아끼기 때문일 것이다. ^^
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죽음은 늘 안타깝지만 그 중에서도 노동자의 절망 자살은 언제나 마음의 짐이 된다. 그 정점에 쌍용자동차가 있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의 핵심은 ‘죽음각인’, 즉 죽음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데에 있다. 살아서 죽음에 이르렀던 자로서 PTSD 환자들은 일상으로의 복귀가 불가능하다. PTSD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다. 하여 와락의 최우선과제는 ‘일상의 복원’이고, 그 중심에는 ‘밥’이 있다. “엄마가 따뜻한 밥을 해주듯이 기본적인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는 것이 와락의 생각이다. -284쪽
'의자놀이'에서 그 부분이 생각난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자살을 했는데, 죽기 전에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모두 지우고 엄마 전화번호 하나만 남겨두었다고. 자신의 죽음을 감당해줄 유일한 가족으로 엄마 한 사람만 남겨둔 그 깊은 절망과 외로움이 사무친다.
요즘은 그렇게 표기하지 못한다고 하지만(그나마도 인권단체의 항의 이후 바뀐 거지만) 범죄자 공개수배 전단지에 '노동자 풍'의 생김새를 설명할 때가 많았다. 이때의 '노동자'가 풍기는 어두운 그림자라니.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치지 않는 이 땅에서 프랑스의 필수 교육과목 '시민교육'은 부러움을 넘어 감동을, 그래서 더더욱 비교되는 현실에 비참함을 느끼게 했다. 다시 한 번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조카의 수학 시험지가 며칠 전에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수학 전공자나 풀법한 아주 어려운 문제가 버젓이 실려 있었다. 배웠냐고 하니까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그 시험문제를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행으로 배워서 풀어왔다는 거다. 미친 교육, 미친 대한민국이다.
심각한 내용과 진지한 주제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마냥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분명 쉬어갈 짬과 웃음의 지점이 있다. 리처드 파인만(1918-1988) 편이 그랬다. 재미로 물리학을 열심히 연구하다가 노벨상까지 받은 이 괴짜 천재는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원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가가 정의한 것처럼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대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신분을 속이고 학생들의 물리숙제를 대신 해주기도 하고, 학점 없는 강의를 수년 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물리학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우연히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탄누 투바’를 알게 되었다. 이곳을 방문한 서구인이 아직 없었고, 수도가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키질(kyzyl)이라는 이유만으로 투바에 가기로 결심하기까지 했다. 공산권 국가에, 게다가 언어도 통하지 않는 지역에 들어가려는 노력은 몇 번의 좌절을 겪었고, 파인만의 사후에서야 11년 만에 완료된 프로젝트였다. 자음만으로 이루어진 도시 이름도 신선하고, 그런 것에서 영감을 받아 거대한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그 열정도 대단하다. 우리가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을 한다면 이 지구가 분명 더 아름답게 변해있을 것만 같은데......
‘홍대용 별’이라 이름 붙여진 소행성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성리학 위주의 조선 사회에서 지구가 둥글며 돌고 있다고 얘기했던 학자. 그의 이런 특성을 이해한다면 그 시대에 ‘북학파’라 불렸던 그의 성향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쉬울 것이다.
내 취향에는 아주 걸맞은 이 책에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번 시즌8은 유독 앞의 책보다도 읽기에 조금 어렵다는 느낌이다. 청소년 독자도 많다는 것을 고려해서 좀 더 쉽게 서술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예를 들면 『뿌리 깊은 나무』발행인 한창기 편에서 ‘국판’이나 ‘사륙배판’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 보통의 독자들에게는 아주 낯선 용어가 아닐까. 전반적으로 한자 용어도 많은 편이었던 것도 조금 신경이 쓰였다. 문장이 현학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본/주의, 민족/주의 등등... 무슨 무슨 주의 앞에 ‘/’을 그은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일까? 처음에 오타인가 했는데 뒤에도 반복되어서 기술되기에 어떤 이유나 고집이 있는지 궁금하다.
206쪽에서 좌익 세력이 모스크바3상 회의 이후 반탁을 외치다가 소련의 입김으로 태도를 바꾸면서 좌우대립이 격화되었다는 표현도 조금 걸린다. 이 부분에서는 ‘동아일보의 오보’ 사건을 먼저 설명해 주고 입장이 바뀐 배경을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수정되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
189
27일 백범 김구가 피살당했다. >>>26일
225
이 모든 아이들은 최대로 성장할 권리가 있다. >>>‘제대로’가 아닐지... '최대로'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닌데 좀 어색하다.
몇몇 아쉬운 대목을 이야기했지만 그건 이 아름다운 책의 아주 소소한 부분들이다. 이 시리즈가 오래오래 이어지고 더 많은 독자와 더 벅차게 만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해본 작은 투정이다.
참, 시청자 참여 ucc 공모전도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이 참가했으면 한다.
음악과 영상과 또 매혹적인 카피까지, 종합 예술을 자랑하는 지식e에 당신의 창의력을 보태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