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18일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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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일요일

나는 총이 갖고 싶었어요.
친구 준택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총을 자랑했거든요.
엄마 아빠는 총을 사주지 못했어요.
나는 속상해서 눈물이 나왔지요.
그런데 누나가 총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요.
나무젓가락으로 총을 만드는 누나는 마치 요술쟁이 같았어요.
우리 누나는 뭐든지 잘 만들지요.
누나가 만든 종이비행기는 유난히 멀리 날아가요.
나는 누나가 참 좋아요.

5월 19일 월요일
선생님이 수업도 끝나지 않았는데 곧장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내일도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하시네요.
이유가 뭘까요?
우린 수업이 빨리 끝나서 신이 났어요.
그래서 총 놀이를 하기로 했지요.
세상에서 총 놀이가 가장 재밌는 것 같아요.
엄마는 위험하니까 밖에 나가 놀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누나가 만들어 준 총을 가지고 몰래 성당으로 갔어요.
친구들은 내 총을 부러워하기도 했지요. 나는 준택이 총이 더 좋지만요.
이날은 토요일도 아닌데 누나도 학교에서 일찍 왔어요.
반가워서 와락 누나를 안아버렸지요.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 동네에 왔어요.
진짜 총을 처음 봤어요.
총을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나는 정말 총이 갖고 싶었거든요.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멋진 총을 든 군인이 될 수 있겠지요?
얼른 어른이 되고도 싶어요.
군인 아저씨들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누나가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어휴, 좀 더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방 안에는 이불이 가득했어요.
아빠는 총알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창문을 이불로 다 가렸어요.
방 안이 밤처럼 깜깜해졌죠.
준택이 할머니는 인민군들이 총을 쏜다고 걱정했어요.
아빠는 인민군이 아니라 우리 군인이 총을 쏘는 거라고 했어요.
아니, 우리 군인이 왜 우리한테 총을 쏘는 거예요?
그리고 인민군은 또 뭐죠?
이불로 창을 다 가려버리니 답답해요.
밤이 되자 멀리서 총소리와 대포 소리도 들렸어요.
소리가 너무나 커서 아주아주 무서웠어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아빠는 누나에게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누나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누나는 나를 꼭 안아 주었죠.
누나 냄새는 언제나 향긋해요.

5월 21일 수요일(석가탄신일)
아침이 되자 총소리가 멈추었어요.
그런데 일어나 보니 누나가 없는 거예요.
큰 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누나는 없었어요.
엄마는 누나 소식을 알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울었어요.
밤늦게까지 누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나는 누나가 보고 싶었어요. 누나 걱정이 되었고요.
우리 누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5월 23일 금요일
아빠는 누나를 찾으러 아침 일찍 나가셨어요.
다음 날 새벽에야 혼자 돌아오신 아빠의 바지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군인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를 막아서 아무도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해요.
아빠는 옷만 갈아입고 누나를 찾으러 다시 나가셨어요.
아빠가 얼른 누나를 찾아서 돌아왔으면 해요.
너무너무 무서워요.

5월 24일 토요일
동네 아줌마들과 엄마는 학생과 시민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누나가 돌아왔어요.
하지만 누나는 집으로 가지는 않았어요.
걱정하지 말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형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외쳤어요.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면 군인들이 총을 쏘는 건가요?
누나는 트럭에 탄 채 다시 떠났어요.
엄마가 나를 안고 오랫동안 울었어요.
나는 누나가 걱정이 되었어요.
민주주의인지 뭔지도 지키고 누나도 무사히 돌아왔으면 해요.

5월 25일 일요일
비가 내렸어요.
향냄새가 가득한 강당에 많은 관들이 늘어서 있었어요.
관 위에는 사진이 놓여 있었고요.
아저씨, 아줌마, 여러 형들과 누나들 사진이 있었지만 우리 누나는 없었어요.
이 사람들이 모두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모두 울었어요. 사진을 찍는 기자도 울고 향을 피우는 사람도 모두 울었어요.

5월 26일 월요일
엄마는 누나를 기다리며 울고 또 울었어요.
잠도 자지 않고 울었어요.
나도 잠이 오지 않았어요.
누나가 어여 문을 열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새벽에 엄마와 아빠는 누나를 찾으러 다시 나가셨어요.
집에는 나랑 강아지 아롱이만 남았어요.

5월 27일 화요일
친구들이 총 놀이를 하자고 불렀어요.
나는 총 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나가 만들어 준 비행기들만 남기고 총은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누나가 만들어준 것이지만 갖고 있을 수 없었어요.
총은 무서운 놈이에요.
총은 나빠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사람을 죽이는 무기는 나빠요.
나는 전쟁놀이도 이제 싫어요.





5월 28일 수요일
누나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누나가 보고 싶어요.

2013년 5월 18일

누나가 돌아오지 않은지 30년이 넘게 흘렀어요.
우리 누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그 사람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누가 그 사람들을 죽게 한 걸까요?
누가, 책임을 졌나요?
누가, 잘못을 뉘우쳤나요?
오늘은 5월 18일,
우린 큰 슬픔을 가졌어요. 위로가 필요하고 치유가 필요해요.
그런데 치유의 노래 한자락도 마음껏 부를 수가 없네요.
대체, 우린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거지요?
이게, 민주주의 맞나요?
이런 게, 2013년의 대한민국 현주소 맞나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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