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여행, 어깨동무 북토크
어깨동무 - 만화가 10인의 마침표 없는 인권 여행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정훈이 외 지음, 국가인권위원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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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인권위원회 기획 세번째 책 어깨동무. 십시일반과 사이시옷을 무척 인상 깊게 읽었고, 그 무렵에 나온 이어달리기가 세번째 시리즈라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이어달리기'는 여성 노동에 대해서 다룬 책으로 맥락은 서로 통하기는 했다. 어쨌든 그리하여 만난 인권 시리즈 세번째 책 '어깨동무'도 전작들처럼 무척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첫 작품 십시일반이 2003년도 출간이니 어느새 십년 세월이 흘렀다. 세번째 출간이다 보니 지나치게 무거웠던 앞의 작품들에 비해서 강약을 좀 더 조절한 느낌이었다.  앞의 두 작품이 '차별'에 대해서 힘주어 얘기했다면 이번 편은 '인권'을 주제로 했으며 소재도 보다 고르게 배치하려고 한 흔적도 보인다. 그러나 그 십년 사이 우리의 인권 감수성은 얼마나 성장했느냐를 떠올리면 한숨부터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숨만 쉬면서 땅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자 고개를 들고 책장을 펴보자. 우리 인권 감수성에 불을 지필 작품들을....

 

첫 시작은 정훈이 작가님이 열어주셨다. '꿈의 공장'이라는 제목인데 특유의 개그와 시니컬한 풍자력을 보여주었다. 인류전자의 '휴먼'이라는 새 휴대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회장님은 급작스레 의식불명이 되고 가사 상태에서 염라국을 경험한다.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은 채 이곳에 온 덕분에 천국으로 직행할 것인가, 아님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3년의 대기 시간을 거쳐야 한다. 이곳의 3년은 인간 세상의 사흘. 남기남 회장은 염라국에서 천국하청기업 조립공으로 일하게 된다.

 

 

이제 감이 오시는가? 염라국의 노고로 천국의 윤택한 생활이 보장된다. 그동안 남기남 회장이 이승에서 당연하게 수행해왔던 작업들이다. 몸소 하청 노동자의 인권 없는 삶을 경험한 남기남은 이곳에서 무려 '노조'를 결성하기에 이르고, 그 바람에 염라국이 시끄러워지자 조기송환 되기에 이르른다. 살인적인 노동과 형편 없는 식사, 닭장 같은 숙소와 감시와 통제까지. 생지옥을 경험한 그가 다시 깨어나서 바꿀 세상이 기대되지 않는가.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모든 재벌 총수들이, 악덕 자본가들이 부디 남기남 회장 같은 생생한 경험을 해야 할 텐데, 그런 일이 만화 속에서만 일어나니 문제다. 그들이 이런 책을 읽으면 혹 달라지려나?

 

이번 어깨동무 시리즈에서 가장 임팩트가 있었던 작품은 두번째로 수록된 최규석 작가의 '맞아도 되는 사람'이다. 맞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물론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당연히 아닌 데도 당연히 맞고, 그런데도 억울함을 풀 길 없는 사람들이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사람들이 마치 그들을 맞아도 되는 사람 취급을 한다는 데에 있다.

 

 

재능교육 노동자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꼭 그들이 아니어도 우리 사회에서 탄압받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정말 박봉의 노동자들도 있고, 제법 괜찮은 연봉을 받던 노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설령 고액연봉을 받는 노동자라 할지라도 이렇게 짐승처럼 사냥을 당하고 아무렇지 않게 자살 유혹에 노출되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고액이라고 받아봤자 재벌들이 가져가는 착취에 비교가 될까. 그리고 이들 몇몇 노동자들은 그만큼 고된 노동을 감수하면서 자신의 몫을 가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알려진 것들이 잘못된 정보일 때도 부지기수다. 다시 '의자놀이'가 떠오른다. 용산 진압 사건에서 이미 간을 본 정부가 쌍용자동차 파업 때에 이 정도의 진압은 국민적 저항이래봤자 감수할 만하겠다 여겼을 거라는 것. 지난 오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 탄압을 보아왔던가. 이제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익숙해진 것처럼 보인다. 마치 북한의 폭격 위협에도 그다지 사재기 현상도 보이지 않고 태연하게 하루하루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들은 맞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피 흘리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누구인지, 왜 피 흘리고 있는지 묻기 전에 그 피를 멈추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들의 흐르는 피를 닦아주고, 신고를 해주고, 문제 있다고 소리를 높여주고, 노동탄압 규탄을 위한 서명이라도 해야 한다. 바로 지금 당장 말이다.

 

손문상 화백은 '은별이'라는 제목으로 강정 마을을 다뤘다. 강정은 평화다!라고 적어 놓은 철조망 아래의 저 담장 그림이 가슴 한켠을 욱신거리게 한다. '맞아도 되는 사람'처럼 역설적인 제목이다.

 

 

김수박 작가의 '사랑이란 이름의 추억 박탈'은 교육 문제를 다뤘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가장 위태위태하게 흘러가는 분야가 이곳이 아니던가. 대한민국에 산적해 있는 많은 문제들 중에서 한숨 나오는 분야가 어디 있겠냐마는 가장 갑갑한 게 교육문제로 보인다. 자녀가 있건 없건 간에 말이다. 아이들의 교육이란 곧 이 나라의 미래이고 내게는 생업도 걸려 있는 문제니까.

 

교육 선진국으로 늘 비교되는 핀란드 얘기도 나왔다. 핀란드는 가난하던 시절에 복지를 시작해서 성공했고, 우리는 극단적인 가난의 시절은 지나가고 이제는 좀 배불러지고 나니 오히려 복지를 못하고 있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복지를 포률리즘이라 폄하하면서 종북이라 매도하는 목소리 큰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그들 중에 진심으로 '함께' 잘 살고, '같이' 좋은 교육을 만들기 원하는 자들이 있을까. 또 모른다.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주장들을 포장한 껍데기가 진심이라고 이미 세뇌가 되어 있을 지도...

 

 

현직 국어 교사인 조주희 작가님의 교문 안 이야기는 명랑만화를 떠올리게 할만큼 유쾌했다. 이 무거운 주제의 책에서 잠시 숨 돌릴 여유를 주었다. 말썽 부리고 사고친 아이들을 데려다가 텃밭을 가꾸게 하고, 거기서 재배한 작물을 나눠 먹게 하신 선생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3주 쯤 전에 화단에 대대적으로 비료를 주었다. 똥냄새 가득한 놈으로~ 어제 동아리 활동 시간에 원래 거기서 활동해야 하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냄새 때문에 도저히 할 수 없다는 적극적인 저항에 부딪혔다. 하핫, 땅냄새 흙냄새까지는 좋은데 똥냄새는 좀 거시기하지... 아해들은 다른 곳으로 재배치 되었다는 후문이다.

 

박철권 작가님의 '그 아이'는 참 먹먹한 이야기였다. 성폭행 당했다고 고백한 학생과, 그 고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교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성폭행은 상처의 강도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데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어떻게 위로를 해주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관계가 망가지지 않을지 알 수가 없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어디 쯤에 묻어두지만 그 자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위를 지날 때마다 가슴을 졸이고, 누군가가 그 위를 지나가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또 어떨 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서 혼자 구덩이 앞에서 울고 있을 수 있다.

 

작가님도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나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다.

 

 

김성희 작가님의 세대유감은 가장 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든 이야기였다. 베이비 부머 세대 부모님과 그들의 자녀들이 이룩한 90년대생 손주들이 있는 그런 가정. 빌딩의 청소 용역으로 일하고 계신 어머니의 걸진 말투와 사투리는 고단한 일상을 이야기하는 데도 재미가 있다. 위 그림처럼 뻔히 청소하는 것 알면서도 개념 없이 습관적으로 쓰레기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타워'에서 보면 애완견의 똥을 치우지 않는 입주민에게 개 주인이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가 모욕을 당하는 청소 아주머니가 나온다. 위 만화에서는 아주머니가 무척 지혜롭게 말씀해 주셨고, 지적을 받은 직원도 잘 수긍하고 넘어갔지만 험한 상황으로 번질 경우도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새벽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할머니가 새벽 지하철을 타고 알바에서 퇴근하는 손녀를 만난다. 서로가 고단한 인생이다. 졸업과 동시에 학자금 대출로 빚더미에 앉은 채 사회에 떠밀린 취업준비생 이야기는 이제 지나치게 흔해지지 않았는가. 갑갑한 현실을 담아내었지만 지나치게 무겁게 다루지 않고 과하게 많은 말을 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히 소임을 다한 것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어지는 윤필 작가의 '늙은 개가 짖는 밤'은 고독사를 다루고 있다. 하루종일 사람이 그리운 할머니는 한달에 한 번 복지사가 다녀가는 날에는 두시간 전부터 준비를 하며 손님을 기다린다. 한달에 한 번 돌아오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에 할머니는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하신다. 아파트에서 많이 짖는다고 버림받은 개와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할머니가 가족이 되었다. 서로가 나이가 많아 언제 이 세상을 떠날 지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가족. 기어이 할머니가 먼저 생을 달리 했지만 늙은 개는 크게 짖어서 누군가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 살기에 바쁘고 이웃 간에 관심이 없는 옆 호수 사람들은 개가 시끄럽게 짖는다고 타박만 놓을 뿐이다.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옆집과의 거리가 이토록 가까운 인구 조밀 지역에 살면서, 우리와 이웃 간의 관계는 얼마나 멀고도 먼가. 서로가 외로워하면서 서로를 더 밀쳐내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지... 대체 무엇을 위한 번영인가 싶다. 이 화려한 문명 속에서의 인간이란...

 

 

굽시니스트의 '人權Begins'다. 인권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비화를 담고 있는데 특유의 유머감각을 잘 발휘했다. 마치 학대받는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서 등장한 조로처럼 화려하게 선을 보인 한 인물. 그는 자신을 '인권'이라고 소개했다. 어찌하여 인권이 그리 고강한 무공을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애초에 이름도 없고 힘도 없는 마음의 씨앗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리하여 시작되는 인류 역사의 현장. 이름도 없던 그가 국가권력에 어떻게 대응하고 대항해 왔는지 지난한 역사가 소개되었다.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과 함께 '인권'이라는 이름을 달기까지의 이야기는 간추린 인류 역사 혹은 철학사로도 보인다.

 

그러나 '인권'이란 이름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바로 인권이 대접받는 시대가 오지는 않았다. 인류는 더 많은 피와 희생을 치룬 다음에야 흑인에게도, 여성에게도 차례로 인권을 허락했다. 이어 아동에게, 이주노동자에게,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를 이야기했지만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쪽 손으로 나의 인권을 잡고, 다른 한쪽 손으로 상대방의 인권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인권과 서로의 인권을 소중히 여겨줄 때, 강력한 인권 사슬이 되어 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은 거저 오지 않는다. 스스로 살아남지도 않는다.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마지막 이야기는 유승하 작가의 '세계 인권 선언의 탄생'이다. 세계 인권 선언이 어떤 배경으로 인해 만들어지게 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선포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같은 의미의 단어라도 혹시 차별적 의미를 담고 있는지 고려했고, 혹시 의미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들리지 않는 지 몇 번이나 감수를 거쳤다. 그렇게 오랜 다듬기를 마치고 마침내 1948년 12월 10일에 감동적인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다. 인권을 주제로 한 10가지 이야기의 마무리로 잘 어울린다.

 

'어깨동무'라는 제목도 다시 읽어본다. 우리가 서로의 어깨에 기대고, 또 내 어깨를 빌려주어 함께 나아가는 모습. 그 속에 인권의 시작이 있고 인권의 미래가 있다. 나와 너와 우리 모두를 위한, 또 이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한 인권. 우리가 충분히 물을 주고 따뜻한 볕을 주어 무럭무럭 자라나게 해서 열매도 맺고 꽃도 피워야 하는 인권. 결코 시들게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안에 우리의 생명이 있으니까. 우리의 희망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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