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플라워 -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2월
절판


"찰리, 세상 사람들이 다 눈물겨운 사연을 갖고 있는 건 아니야. 또 그런 일이 있었다 해도 변명거리가 될 순 없지."
아빠의 말씀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우리 가족은 함께 텔레비전을 봤지. 누나는 여전히 나를 미워하지만 아빠는 옳은 일을 한 거라고 하셨어. 내가 옳은 일을 한 것이기를 바라지만 가끔은 옳은 말을 하는 게 너무 힘들기는 하더라.
-54쪽

할아버지는 울고 계셨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용히 울고 계셨어. 나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지. 엄마가 어렸을 때, 성적표를 한 손에 들고 다시는 이런 점수를 받아오면 안 된다며 엄마를 때리셨던 할아버지를 생각했어. 할아버지는 형과 누나 그리고 나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고 싶었던 거야. 방앗간에서 일하는 사람은 당신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싶었던 거지. 그런 생각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어. 그리고 자식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대학을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지도 잘 모르겠어. 딸들과 마음을 나누며 지내는 대신 자기보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이 더 훌륭한 일인 건지도 잘 모르겠어. 아무 판단도 할 수 없어. 그래서 난 가만히 앉아 할아버지를 바라봤어.
-101쪽

기분 좋은 소식은 패트릭이 내 선물들을 모두 다 좋아한다는 거야. 세 번째 선물은 그림물감 세트와 도화지 몇 장이었어.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것들이라 해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네 번째 선물은 하모니카와 연주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야. 이것도 그림물감과 같은 뜻을 지닌 선물이야. 난 모든 사람들이 그림물감과 자석판 시집 그리고 하모니카 정도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108쪽

"처음으로 키스한 그 사람이 널 사랑한다는 걸 확신하도록 해주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겠니?"
"그래." 그애는 더욱더 슬프게 울었어. 나도 울었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거든.
"난 확신을 주고 싶을 뿐이야. 알겠니?"
"알았어."
그리고 샘은 내 입술에 키스했어. 그 키스는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떠들고 다닐 그런 키스가 아니었어. 그건 내가 그때까지 정말 행복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그런 키스였어.
-117쪽

조지 베일리는 마을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어. 그 덕분에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그가 마을을 구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마을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밖에 없었던 거야. 모험에 가득 찬 삶을 살고 싶었지만 마을의 발전을 위해 꿈을 포기하고 남았던 거야. 하지만 그 결과가 비참하게 나타났을 때, 그는 자살하기로 결심했어. 그런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만약 그가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살게 되었을 지를 보여줬어. 그 마을 전체가 겪었을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준 거야. 또 그의 아내가 어떻게 ‘나이 많은 하녀’로 살아가는지도 보여줬어.
-126쪽

아빠가 쓰던 낡은 침대에 누워 창문 밖의 나무를 봤어. 아빠가 바라봤을 땐 훨씬 더 작았겠지. 그 나무를 보면서, 떠나지 않으면 절대 자신만의 인생을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 그날 밤 아빠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 이곳에 남아 있었다면 아빠는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았을 거야. 적어도 아빠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145쪽

엄마와 난 묘소 앞에 꽃을 놓거나 가끔은 카드를 놓기도 했어. 우리가 이모를 그리워하고, 자주 생각하고 있으며 또 우리에겐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걸 이모가 알아주길 바랐던 거야. 엄마가 늘 말씀하시지만, 이모가 살아 있을 땐, 그런 생각이 없었어. 그리고 엄마도 아빠처럼 그 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 죄책감이 너무 컸던 엄마는 이모에게 돈 대신, 함께 머물 수 있는 가정을 제공했던 거야.
-147쪽

그날 밤에 책을 또 한 번 읽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분명 다시 울게 될 것 같아 그랬던 거야.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완전히 지쳐서 잠이 올 때까지 책을 읽었어. 아침에는 끝까지 다 읽은 책을 곧바로 다시 읽었어. 울고 싶다는 생각을 없애고 싶어서 그랬어. 헬렌 이모에게 약속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154쪽

그날 밤에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 아래층으로 내려가 운동기구 광고를 30분간이나 지켜보고 있었어. 1-800으로 시작되는 주문번호가 계속 화면에 깜빡거리길래 전화를 걸었어. 전화받은 여자의 이름은 미첼이었어. 미첼에게 나는 아이여서 운동기구 같은 건 필요하지 않지만 좋은 밤을 보내라고 말해줬어. 미첼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어. 하지만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어.
-195쪽

"네가 이제 나이가 됐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엔 더욱더 조심해야 하거든. 보호도구를 사용하도록 해라. 만약 여자가 싫다고 하면, 진심으로 싫어한다고 생각해야 해... 만약 상대가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하게 되면, 넌 큰 곤경에 빠지게 될 거다. 알아듣겠지? 그리고 싫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좋다는 뜻을 표현하는 거라면, 솔직히 너를 하찮게 대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거야. 의논할 일이 생기면 내게 와라. 하지만 나에게 말하기 어려우면 형과 의논하도록 해. 너와 이런 이야기를 하게 돼서 참 기쁘구나."
-198쪽

"난 너를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너를 위해 살지 않을 거야."
그 말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 후에는 타인들과 인생을 공유하기 위해 선택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아.
-265쪽

"네가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또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가 돼준다는 건 훌륭한 일이야. 하지만 기댈 어깨가 필요한 게 아니라 어깨를 둘러줄 팔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 건데? 구석에 가만히 앉아 너의 인생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앞세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그렇게 해선 안 된다구. 너도 어떤 행동을 해야 해."
-315쪽

"난 누군가의 짝사랑 상대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만약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아닌 진정한 내 모습을 사랑해주길 원해. 또 그가 마음 속으로만 사랑하기를 바라지 않아. 그걸 내게 보여주고 그래서 내가 그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원하거든. 그가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일이 어떤 것이든 모두 다 할 수 있기를 원해. 그리고 만약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되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할 거야."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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