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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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몹시 재밌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읽었다. 그 책을 쓴 한윤섭 작가님의 작품이다. 이야기는 주인공 준영이네 가족이 득산리로 이사를 가면서 시작한다. 시골 할아버지 목사님의 뒤를 이어 목사님으로 부임한 아빠를 따라서였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준영이는 시골행이 반갑지가 않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모두 즐거워하는 분위기다. 준영이에게도 한학기 동안 신나게 놀라고 하시는 통큰(?) 부모님!

 

여러모로 낯설고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새 학기를 맞이한 준영이에게 담임 선생님은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들과 꼭 같이 가라고 하셨다. 축구를 하고 집에 가겠다는 친구들과 급작스럽게 친해지고 싶지 않았던 준영이는 혼자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친구들은 절대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 마을에는 전설이 있는데,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혼자서 득산리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아이들의 이야기 보따리는 이야기 속 이야기로 재미와 오싹함을 함께 선사했다. 마을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와 절반 쯤은 허풍과 과장으로 채운 이야기에 준영이는 잔뜩 긴장하고 만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혼자서 집으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그렇게 준영이는 득산리에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맞이한다. 복숭아꽃이 잔뜩 피어서 무릉도원을 연상케 했던 득산리는 흡사 에덴 동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근사한 풍경을 자랑했다. 아이는 한달 만에 얼굴이 까맣게 타버렸고 체중도 부쩍 늘었다. 짐작하기에 무척 건강해진 혈색으로 변했으리라.

 

준영이가 가을을 눈치 채는 대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어제까지는 분명히 여름이었건만 하룻밤 사이에 가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시에서는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는 계절의 변화를 아이가 한눈에, 그리고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것만으로도 준영이의 시골 생활은 축복이고 은총이리라.

 

'아람 불다'라는 표현을 이 책에서 처음 만났다. 이런 관용구가 있구나. 덕분에 '아람'의 뜻도 찾아보았다. 밤이나 상수리 따위가 충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질 정도가 된 상태. 또는 그런 열매라고 사전에 나온다. 친구들은 밤나무로 유명한 돼지 할아버지네 집에서 밤 서리를 하면서 준영이에게는 망을 보게 한다. 할아버지는 도둑놈들이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지만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올해도 무사하신지 들러보는 거라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도 끝까지 쫓아오지 않고, 아이들도 할아버지가 겉으로만 자신들을 쫓아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름의 공생 관계랄까.

 

그런데 준영이는 영 편치가 않다. 정말 정말 맛있는 밤이지만, 그 밤을 맛있게 먹는 것도 죄스럽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할아버지가 끝까지 쫓아오셔서 도망치는 것에 실패한 준영이는 할아버지의 예상치 못했던 면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새벽녘에 밤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 행운까지 얻는다. 가을 내내 아람 불었던 밤들이 새벽이슬에 미끄러져 낙엽 위로 떨어지는 소리는 누군가의 발소리처럼 들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신기한 소리. 세상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준영이 느꼈을 황홀경을 독자도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새벽의 빛깔과 밤알 떨어지는 소리의 조화라니... 게다가 그 과정에서 보여준 돼지할아버지의 온정은 또 얼마나 따뜻하고 인자하던가.

 

준영이처럼 독자도 득산리가 점점 좋아지려고 한다. 무척 시골스럽게 들리던 마을 이름도 점점 정감이 간다.

 

이야기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서 대단원의 성장을 보인다. 막연히 상상하던 수목장이 무척 장엄하고도 숭고하게 느껴졌다. 나 죽으면 당연히 화장하면 된다고 여겼는데, 그 뼛가루가 이렇게 나무의 거름이 되어서 내가 이땅에 한줌이라도 좋은 일을 하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무로 다시 태어나는 삶이라니, 이 얼마나 시적인 일인가.

 

 

해가 바뀌어 득산리에 다시 봄이 왔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에덴 동산 같고 무릉도원 같은 그 봄이. 그리고 학교에 전학생이 왔다. 일년 전 준영이가 그랬듯이 새 전학생도 마을의 전설에 푹 젖을 차례다. 얼마만큼 용감한 아이로 성장할지 자못 기대가 크다.^^

 

서울 아이가 시골에 가서 겪는 이야기라는 설정은 흔할 수 있지만, 우리 동네 전설은~ 하면서 마을의 오랜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가 잘 조화되어서 무척 신선하게 읽혔다. 계절이 변해가는 그 순간순간이 아름다웠고, 어린 준영이가 나름의 자존심과 용기를 키워가면서 마을에 적응해 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리고 어른은 어른이라는 생각에, 조금씩이라도 등장하는 마을의 인물들도 고마운 캐릭터였다. 어린이 친구들만 보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두루두루 같이 읽고 함께 푹 빠질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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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3-25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리뷰는 못 썼지만, 정말 괜찮은 동화였어요~ 우리동네 전설도 떠오르고요.
사계절 삽화를 저렇게 모아놓으니 뚜렷이 비교가 되네요~ ^^

마노아 2013-03-25 08:32   좋아요 0 | URL
굳이 선호도를 따지면 편지 전하는 아이가 더 좋았지만 이 작품도 충분히 훌륭했어요.
어릴 적 우리 동네에 따라다니전 전설은 관련 건물과 개천이 사라지면서 이야기도 사라진 듯해요.
아쉬운 부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