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빨강 창비청소년문학 27
박성우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장바구니담기


공부 기계

알람 시계가 울린다

고등학교 이 학년인
공부 기계가 깜빡깜빡 켜진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졸린 공부 기계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간다

공부 기계는 기계답게
기계처럼 이어지는 수업을
기계처름 듣는다

쉬는 시간엔 충전을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잠시 꺼진다

보충수업을 기계처럼 듣고
학원수업을 기계처럼 듣고
공부 기계는 기계처럼 집으로 간다

늦은 밤 돌아온 공부 기계는
종일 가동한 기계를 점검하다,

고장 난 기계처럼 껌뻑껌뻑 꺼진다
-48쪽

학교가 우리에게

십수 년,
매일 밤늦게까지 깜빡거리는 게 지겹다
아침 일찍 졸린 눈 비비는 것도 지겹다

심지어 방학도 며칠 못 쉬어서
주저앉을 지경이다 폭삭 무너질 지경이다

선생님아 학생아
이젠 제발, 나도 좀 쉬자
-58쪽

난 빨강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발랑 까지고 싶게 하는 발랄한 빨강
누가 뭐라든 신경 쓰지 않고 튀는 빨강
빨강 립스틱 빨강 바지 빨강 구두
그냥 빨간 말고 발라당 까진 빨강이 끌려
빼지도 않고 앞뒤 재지도 않는 빨강
빨빨대며 쏘다니는 철딱서니 같아서 끌려
빼지도 않고 앞뒤 재지도 않는 빨강
빨빨대며 쏘다니는 철딱서니 같아서 끌려
그 어디로든 뛰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빨강
난 빨강이 끌려, 새빨간 빨강이 끌려
해종일 천방지축 쏘다니는 말썽쟁이, 같은 빨강
빨랑 나도 빨강이 되고 싶어 빨랑
빨랑, 빨강이 되어 싸돌아다니고 싶어
빨빨 싸돌아다니다가 어느새 나도
빨강이 될 거야 새빨간 빨강,
빨강 치마 슈퍼우먼이 될 거야
빨강 팬티 슈퍼맨이 될 거야
빨강 구름 빨강 바다 빨강 빌딩숲 만들러 날아다닐 거야
새빨간 거짓말 같은 빨강,
막대사탕처럼 달달하게 빨리는 빨강,
혀를 내밀면 혓바닥이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달콤한 빨강
빨-강, 하고 말만 해도
세상이 온통 빨개질 것 같은 끈적끈적한 빨강
-64쪽

못된 아들

울 아빠 울 엄마는 만날 일만 한다

아빠는 가구 공장에서 목재를 나르고
엄마는 집에서 부업으로
이런저런 전자 부품을 조립한다
어쩔 땐 밤새 종이 가방도 접는다

나는 그런 아빠 엄마가
창피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않다

어쩌다가 술을 한잔하신 아빠가
나를 불러 앉혀놓고는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엄마 아빠처럼 고생한다는 말을 할 때는
정말이지 짜증만 나고 듣기도 싫다
사실은 그런 말을 하는 아빠가 진짜 싫다

아빠 엄마는 밤낮으로 일을 하는데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궁색할까
가족끼리 근사한 외식 한번 못하고
왜 만날 돈한테만 쩔쩔매야 할까

근사한 양복에 근사한 원피스를 입고
비까번쩍한 승용차에 어마어마하게 큰 집에 사는
아빠와 엄마를 가진 애들이 까마득 부럽다
그런 집의 아들로 내가 태어났다면 난 어땠을까

정말이지 난, 참 못된 아들이다
-92쪽

쓰레기통

짜샤 지저분하게 굴지 마

학생이면 학생다워야지
어디서, 침 찍찍 뱉고 발길질이야

너만 열 받냐?

여차하면 나도 뚜껑부터 열린다!
-10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