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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가장 독한 동물들 ㅣ 사이언스 일공일삼 19
니콜라 데이비스 지음, 닐 레이튼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06년 9월
절판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껏 자만심에 빠져 있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 비루하기 짝이 없다.
추워도 못 살고, 더워도 못 살고, 물이나 음식이 없어도 며칠을 못 버티고, 공기 없이는 단 몇 분도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지구에 사는 생물들 중에는 우리 인간들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서 기꺼이 살아남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그 '독한' 동물들을 소개하는 게 이 책의 역할이다.
북극으로 먼저 가 보자. 북극곰들은 우리처럼 겨울에 내복을 입지 않지만 천연 내복을 갖추고 있다. 바로 피부 밑에 7cm나 깔려 있는 지방층이다. 게다가 몸에는 길이가 다른 두 종류의 털이 나 있어서 따뜻한 공기를 한껏 품어 안을 수가 있다. 따땃한 솜이불을 걸치고 있는 효과일 것이다. 게다가 북극곰은 겉이 하얗게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피부는 시커멓다. 그 바람에 햇볕을 잔뜩 흡수해서 열을 품어 피부로 흡수시키는 일을 해낸다. 자신들의 열을 꽁꽁 숨겨두는 북극곰들 때문에 열감지기로 눈밭을 조사해서는 북극 곰을 셀 수가 없다. 털 바깥쪽의 온도가 눈밭의 온도와 같기 때문이다. 열감지기가 찾을 수 있는 것은 털이 덮여있지 않은 북극곰의 코 정도가 다다. ^^
북극사향소는 양털보다 8배는 더 따뜻한 털을 갖고 있다. 이런 털이 왜 상용화가 안 되었는지 궁금하다. 옷으로 만들기에는 털이 너무 거칠거나 예쁘지가 않은 것일까? 혹은 너무 더울까 봐?
해달은 아주 촘촘한 털을 가졌다. 1제곱센티미터 안에 무려 15만 5천 개의 털이 나 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평생을 얼음장같은 물속에서 살지만 이렇게 촘촘한 털들이 따뜻한 공기를 품어 녀석들의 피부를 감싸준다.
북극해에 사는 북극고래는 심지어 털도 없다. 그러나 피부 밑에 거의 50cm나 되는 지방층이 있어서 추위에 끄떡 없다. 추위 다 나오라 그래! 라고 외치는 느낌이랄까.
남극 관련 다큐를 보면 가장 오래 시선을 끄는 것은 역시 황제 펭귄이다. 남극의 추위가 보통 추위인가. 바로 그 혹한의 땅에서 맨발 위에 알을 올려놓고 품어서 지켜낸다. 시속 150km로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55일 동안을 버틴다. 심지어 먹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황제 펭귄의 깃털 외투 덕분이다. 두께는 3cm에 불과하지만 깃털 안팎의 온도 차는 무려 60도나 된다. 어휴, 과학이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생명력의 힘이다. 황제펭귄은 발을 통해서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반류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몸솜의 따뜻한 피가 발 쪽으로 가면 발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피에게 열을 넘겨준다. 그래서 발로 가는 피는 차갑고 몸으로 돌아오는 피는 항상 따뜻하게 유지된다. 귀뚜라미 보일러가 이런 메커니즘을 이용한 것일까?
파충류들은 사막 생활을 잘 견디는데 변온동물인 것 말고도 오래 굶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먹이가 별로 없는 사막에서 살아남으려니 허기를 견디는 것은 그야말로 생존의 절대 조건이다. 그런데 거미 역시 변온 동물이다. 게다가 굶주림을 참는 것은 파충류보다 더 뛰어나다. 영국의 박물학자 존 블랙웰은 1829년에 무려 일년 반 동안 먹이는커녕 물 한 방울 주지 않고 거미를 유리병에 넣어둔 채 관찰했다. 거미줄 쳐놓고 다른 벌레들이 걸려들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 쯤이야 거미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체온이 조금만 높아져도, 또 떨어져도 큰일 나고, 조금이라도 굶으면 성질 버려버리고 물이 없으면 단 며칠도 살 수 없는 우리 인간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체온을 유지하고, 또 음식을 구할 능력을 갖추기 위해 인간이 끊임없이 진화해오고 노력해 온 인간의 생존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진 게 적으니까, 필요가 발명을 만든 것이다. 교만할 필요는 없지만 기죽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북극곰도 음식을 먹지 않고 8달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북극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 겨울이 오기까지 몇 달을 굶어서 몸이 아주 홀쭉해진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요즘은 굶주림보다 얼음이 녹아버려서 사냥할 수 있는 터전이 사라지는 게 가장 큰 문제이지만...
몸집이 작은 철새인 검은머리솔새는 북아메리카에서 남아메리카까지 80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날아간다. 자기 몸을 연료로 삼아서 그 먼 거리를 이동하니, 목적지에 도착하면 말 그대로 '반쪽'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해외 토픽에서 장시간 키스를 해서 신기록을 세운 커플이 생각난다. 화장실마저도 같이 가야 했다고.... 이렇게 장시간 한가지 일에 몰두해서 몇날 며칠을 보내는 인간은 무협지에서 곧잘 볼 수 있었다. 무림 고수들이 내공 수련을 할 때, 혹은 독을 내보내기 위해서 남의 기를 받아들일 때 등등 말이다. 그때도 이게 말이 되냐고 놀라워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극기훈련(?)을 하는 생물들이 있다는 게 아주 재밌다. 어휴, 정말 대단하십니다!!
황량한 극지방과 메마른 사방, 먹이 없는 유리병 안에서도 생물을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펄펄 끓는 용암 속은 어떨까? 이곳에는 박테리아가 살아남는다. 화산 근처에 사는 박테리아를 '호열성 유기체'라고 부른다. 호열성 유기체들은 철과 독성이 있는 유황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산소에 닿으면 죽는다. 이 단세포 생물은 바다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바다 속 용암 때문에 뜨거운 물기둥이 솟아오르는 곳 말이다. 이 호열성 박테리아를 먹는 장님새우, 그리고 바로 그 장님새우를 잡아먹는 더 큰 바다 생물도 있다. 균형을 이루는 먹이사슬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그밖에 엄청난 수압을 버티는 바다 생물들이 있고, 엄청난 중력을 이겨내는 곤충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동물은 온몸이 산산조각 나도 목숨이 붙어 있다. 꽤 많은 무척추동물들이 이런 재주가 있다. 이중 갑은 스펀지라고도 부르는 해면동물이다. 해면동물을 걸쭉하게 갈아서 바닷물에 부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잘게 잘라진 조각들이 도로 다닥다닥 붙어서 서서히 하나의 생명체로 돌아가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시간을 이겨낸 생물들도 있다. 장수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거북이!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가져온 거북이는 2006년에 죽었다. 이 거북이는 175살 이상을 살아낸 것이다. 다윈이 데려왔을 때 갓 태어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오래 산 식물에 비하면 거북이는 겸손해져야 한다. 어떤 나무들은 천년이 넘게 살 수 있고, 또 미국 네바다 주와 캘리포니아 주에 사는 브리슬콘소나무는 무려 5000년 수령을 자랑하고 있으니까. 인간은, 정말 초라해지는 것이다. 100년을 겨우 살아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끝없는 욕심만 채우고 있으니까......
이제 시선을 우주로 돌려보자. 우주는 넓다. 정말 많이 넓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 켄타우루스까지 가는 데는 4년 3개월이 걸린다. 빛의 속도로!
빛의 속도라면 화성까지 3분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속도로 4년 3개월이라니... 정말 이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숫자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거리를 인간의 짧은 생으로 감당하려면 수면 상태로 오랜 세월을 견디는 수밖에 없다. 몇몇 씨앗들의 생명 저장 비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씨앗 중에는 수천 년 동안 잠을 자다가 뒤늦게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들이 있다. 열대 지방에서 자라는 수수과의 식물인 소검의 씨앗은 무려 6천 년이 지난 뒤에도 싹을 틔울 수 있다고 한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
이제 독하디 독한 마지막 생물을 소개해 보겠다.
이 녀석은 식물의 잎에 고인 얕은 물속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 연못이나 바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덩치카 크지도 않다. 기껏 커봤자 1mm 조금 넘는 정도. 이 동물은 물곰 혹은 완보류라고 불리는데, 무려 5억 3천만 년도 전에 지구에 나타났던 고대 생물 무리에 속한다.
물곰은 가뭄이나 갑작스러운 추위 등의 어려움이 닥치면 다리를 오므리고 온몸을 접는다. 그리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몸을 포도당으로 채운다. 그러고는 몸속의 수분 가운데 단 1%만 남기고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턴'이라고 부르는 이런 상태로 들어가면 이녀석들은 천하무적이 된다.
과학자들은 턴을 150도로 가열해 보기도 했고, 영하 272.8도로 얼려도 보았다. 바다 밑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압의 6배나 되는 압력으로도 눌러 보았다. 또 우주 공간처럼 진공 상태에도 두어 봤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수준의 천 배는 되는 방사선을 쪼여도 보았고 독한 화학물질도 써 봤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위기가 지나가고 원래 살던 물속으로 들어가면, 턴에서 다리가 튀어나오고 몸이 펴지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제 할 일을 한다. 이런 음폐 생활 상태로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남은 것이다. 어쩌면 물곰은 여원히 죽지 않고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뱀파이어물들이 매력적인 것은 그들이 아름다운 상태로 불멸의 생을 산다는 것이다. 물곰의 능력은 정말로 놀랍지만, 물곰으로 태어나서 천 년 만 년을 살고 싶지는 않다. 하하하!!!
글밥이 꽤 많다. 축약한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주제로 묶어 소개한 동물들 이야기가 재밌었고, 감탄도 했다. 실제 사진도 같이 담아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또 미관상 너무 징그럽게 생겨서 거부반응이 들었을 지도...^^
사실 신체의 능력만 따지면 인간은 지구 상에서 순하디 순한 동물에 속할 테지만, 잔인함으로 따지면 누구보다 독할 수 있을 것이다. 배고프지 않아도 상대를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동물이니까.
즐겁고 신기한 정보도 찾고, 그 안에서 인간의 모습도 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의미있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