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놀이 - 공지영의 첫 르포르타주, 쌍용자동차 이야기
공지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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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상처를 감춤으로써 서로를 위한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소통이자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것도.
-24쪽

자살 시도 중 삶의 의지가 거의 없는 가장 절망적인 죽음은 고층에서 몸을 던지는 것이다. 자살이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은 보통 사회에 메시지를 남긴다. 그것이 유서이든 문자 메시지이든 마지막 전화이든 말이다. 그런데 여기 22명의 사람들은 그것조차 남기지 않았다. 이것은 아마도 세계 정신의학회에 보고될 일이 아닐까 싶다. 하나같이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그들은 어쩌면 세상과의 소통에 완전히 절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아주 절망하기 전에 실은 메시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살고 싶다고, 살려달라고 외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3년 동안 하루에 ‘7분’씩 100번이나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외쳐왔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을 우리는 무심하고 태연하게 스쳐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대체 왜 죽음에 이토록 무감각해진 것일까?

-37쪽

"무리한 컨테이너 투입으로 무고한 경찰을 한 사람 잃고, 농성하던 시민 다섯이나 죽게 한 그 참사 앞에서 정부는 여론과 시민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명박 정권 초기였으므로 자칫 정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도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몇몇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러자 경찰은 쌍용자동차에 드러내놓고 컨테이너를 투입했다. 말하자면 용산에서 간을 본 것이었는데, 의외로 저항이 거세지 않자 이번에도 그걸 사용한 것이다 국민이 용산에 대해 국가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더라면 쌍용자동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에게 ‘이렇게 진압해도 된다.’는 몹쓸 교훈을 심어줬다."

-46쪽

어떻게 기업의 건축물과 기계장치, 설비 등이 일 년 만에 100분의 1, 1,000분의 1로 가치가 떨어져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지진이 일어나거나 토네이도가 휩쓸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이들은 면허증을 가진 회계법인, 즉 권위 있는 전문가 집단이었고, 이들의 감정은 바로 법이 된다. 그들에게 부여된 면허증에 양심과 도덕이라는 항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75쪽

조합원들은 회사가 어렵다니까 이처럼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더라도 함께 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회사는 일방적인 해고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해고하려는 2,646명은 전체 노동자의 37%, 현장직 노동자의 4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했던 안진회계법인과 삼정KPMG, 즉 대형 회계법인의 작품이었다. "함께 살자!"는 노조의 외침에 "미안하지만 너희가 좀 죽어줘야겠어." 라는 대답일까?
이때부터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치워야 할 비용으로 보는 자들에 의한 보이지 않는 무자비한 폭력이 시작된다. 나는 22명이 자살한 원인을 이 순간부터 찾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혼돈과 경계, 그리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이 죽어야 한다는 비인간적 폭력이 노동자들에게 가해지기 때문이다.
-87쪽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부모의 양육태도가 아이들의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중 아이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모호함이라고 한다.
-88쪽

일전에 가톨릭 피정을 갔다가 ‘악의 특징’이라는 정의를 배우게 되었다. 나는 그저 ‘나쁘고, 못되고, 잔인하고’ 같은 것들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아주 간단한 단어들이 나열되었다.
혼돈, 지연, 분열.
쌍용자동차에 대한 자료들을 읽었을 때 나는 가톨릭 피정에서 배웠던 세 낱말을 떠올렸다. 쌍용자동차의 노무관리는 이 모든 것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89쪽

사람들은 남는 명단에 있을 사람을 ‘산 자’, 나가야 한다고 지적당한 사람을 ‘죽은 자’라고 불렀다. 자조 섞인 농담이었으리라. 그러나 평택 시내에는 아이들까지 산 자와 죽은 자를 알았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가느다란 도랑이 파이고 졸졸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냇물이 되고 폭포가 되어 대양처럼 넓어져 정말로 산 자와 죽은 자처럼 다시는 서로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91쪽

의자놀이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하던 그 놀이. 의자를 사람 수보다 하나 덜 놓고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다가 노래가 멈추는 순간 재빨리 의자에 앉는 놀이. 행동이 굼뜬 마지막 두 명은 엉덩이를 부딪치며 마지막 남은 의자를 차지하려 하고, 대개는 한 명이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정말 그럴 생각은 없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면 술래가 되지 않기 위해 친구를 밀어버리고 내가 앉아야 하는 그 의자놀이. 쌍용자동차 관리자들은 이 거대한 노동자 군단에게 사람 수의 반만 되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마치 그런 놀이를 시키는 것 같았다. 기준도 없고, 이유도 납득할 수 없고, 즐겁지도 않으며, 의자를 놓친 자들에게는 죽음을 부르는 그런 미친 놀이를.
-92쪽

일터는 단지 먹이를 구하기 위해 가는 장소가 아니다. 돈만 벌면 어디든지 다 좋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터, 우리에게 생활을 보장해주고, 우리에게 밥과 의복을 주며, 사람들을 엮어내서 인간의 사회적 욕구를 펼치게 해주는, 우리의 품위와 자부심, 그리고 긍지를 주는 내 인생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가정과 직장, 이 두 들판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 무너지면 가끔 직장생활도 무너지지만, 일터가 무너지면 가정은 거의 대부분 무너진다. 아무런 사회안전망, 즉 재취업과 실업보험, 혹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주거 등에 대한 약속 없는 정리해고는 삶에서 해고된다는 말과 같다.
-93쪽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물의를 빚은 점은 인정되나"라던 판사에게 김진숙 씨는 말했다. "물의라도 빚지 않으면 누가 우리의 말을 들어줍니까?"
-94쪽

회사는 "재들이 죽어줘야 우리가 산다."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쟤들이 살면 우리는 함께 죽는다."라는 말도 했다. 살아남은 인간이 가진 여러 속성 중 하나인 죄책감이 서서히 ‘죽은 자’들에 대한 분노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에서나 밖에서나 모든 노동자는 공통된 한 가지를 경험하는데, 그것은 ‘인간에 대한 환멸’이었다.

-109쪽

어떤 이는 평택의 상황을 제2의 용산사태로도 말하지만, 용산사태는 무리한 공권력의 집행으로 발생한 사고이며, 결코 경찰이 시민을 죽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평택에서는 가진 자와 공권력이 의도를 지니고 시민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이것은 약 30년 전 광주에서 있었던 시민 학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단지 총칼만 없을 뿐이지 우리 역사에 깊은 상처를 낸 그 폭력의 모습이 다시 일상의 얼굴로 되돌아온 것을 말한다. 언제나 공공질서를 내세우는 경찰과 정부가 용산에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시민에 대한 살인 방조에까지 참여하는 모습이 21세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인 한국의 현실이다. 약자의 생존이 위협받는 행위가 있을 때 이를 제지하지 않는 경찰과 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국가 권력인가. 보호는커녕 기득권을 위해 또 무력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우희종, <한겨레> 2009년 8월 4일자
-138쪽

녹색병원과 전국금속노조는 이 무렵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검진한 결과를 발표했다. 노조원 257명의 정신건강 상태를 연구한 임상혁 노동환경연군소 소장은 "처음에는 콤마를 잘못 찍은 줄 알았다. ‘정상’인 사람이 7%밖에 안 된다. 심리 상담이 필요한 중증도 우울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50년간 미군의 폭격으로 물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매향리 주민들보다 3배나 높다."고 말했다. 파업에 참가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중 48.2%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고 있고, 전체 중 71%가 심리상담 등의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우울 증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이는 인명사고를 경험한 기관사나 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노출된 서비스 노동자보다 6~7배 높다는 것이다.
-147쪽

또 다른 보고서인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노동자 3차 정신건강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0명의 80%가 중증 이상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1년간 자살률은 일반인의 3.74배, 심근경색 사망률은 18.3배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이들은 계속 진압당하는 악몽을 꾸고, 헬기 소리는 물론 선풍기 소리에도 비명을 지르는 등의 엄청난 후유증을 보이고 있으며, 농성이 계속된다고 생각해 집 안에 비상식량을 쌓아두고 새총을 장전하는 등의 정신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혼으로 깨진 가정이 수없이 생겨났다. 거의 모든 사람의 삶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147쪽

정혜신 박사는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인구 10만 명당 31명이 자살하는 최고 자살국이다. 그러나 쌍용자동차의 경우 해고 노동자 2,646명 중 22명이 사망했는데, 그중 자살자는 12명이다. 국내 자살률의 15배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쌍용자동차 팀은 "내가 만난 환자들 중 최악"의 우울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148쪽

정 박사는 이를 고문 피해자에 빗대 "극한의 고문을 당했던 분들에게 ‘무엇이 가장 고통스러웠느냐.’고 물어보면 놀랍게도 고문당했던 경험보다 감옥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은 상처가 가장 끔찍했다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해고자들 또한 옥쇄파업을 하고 구속당하는 것보다 그다음 이어지는 삶이 이들에겐 더 큰 형벌이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도 죽음 앞에 서 있다. 희망이, 정의가 없는 까닭이며, 그것이 회복될 가능성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며, 자신들을 폭도로 몰아가는 힘센 정권과 언론과 여론이,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그들에게 억울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 출연했던 한 노동자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사회가 우리보고 죽으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이 사회에서 나가달라고."
-149쪽

그렇게 경찰서로 병원으로 돌아서 집으로 돌아온 이들에게 또 하나의 살인적인 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4명의 부상자들에게 총 3,000만 원의 보험급여 환수가 통보되었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킬 때에는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 제48조 제1항을 들어서 의료보험료를 환급하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척추가 손상되는 등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이다. 이는 쌍용자동차뿐 아니라 용산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마찬가지,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광주항쟁 부상자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잔인하고 잔인한 일이다.
-150쪽

물리적 폭력은 가시적이기 때문에 공분의 대상이 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비가시적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가고, 그 폭력에 신음하면서 보내는 구호 요청의 신호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다. 특히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 구조적 폭력은 국제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무관심과 순응의 자세로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나는 당연히 이 자살은 자살이 아니라, 구조적 타살이며 사회적 타살로 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희연, <한겨레>, 2012년 4월 16일자
-151쪽

이제는 철학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 다시 온 것 같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삶이 무엇 때문에 지속된다고 생각하는지, 인간의 노동이 무엇인지, 인간은 진정 무엇으로 고난을 이겨내는지 그런 철학 말이다. 나는 생각해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생애를 통틀어 어떤 때 가장 행복했을까? 그리고 어떤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이 연설문을 보면 그는 자동차가 한 대 생산될 시간에 세 대가 생산되면 행복하다고 믿나 보다. 그런데 그 자동차는 누가 탈까? 한 명씩 죽어가는데.
-156쪽

생각해보라. 삶은 파탄 나고 하루아침에 빈민으로 전락했다. 상처의 후유증은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하루 종일 쓰리다. 희망이라고는 아무 데도 없는데 폭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마저 받는다. 그런데 미워할 대상이 없다. 친구도 끊어지고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진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더 공부 많이 해서 출세하지 못한 내가 바보고 내가 죄인인 것만 같다. 부모만 잘 만났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제 나 만나서 아내와 아이들도 고생하는 것 같다. 다 내가 못난 탓이다, 내가 죄인이다,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게, 남 탓 해보지 못하고 평생을 산 착한 그들에게 가장 쉬웠을 것이다.
-167쪽

2012.3.12
경찰 수사 우수 사례로 쌍용차 사태가 선정되었다. 전국 수사경찰관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주요사건 중 ‘베스트 10, 워스트 10’ 후보를 공모했는데 1,192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평택 쌍용차 점거농성 사태 조기 해결’이 베스트 5위로 선정되었다.
-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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