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1803 호/2013-02-13

 

심장이 두근두근! 사랑일까, 뇌의 착각일까?

드디어 내일이 발렌타인데이! 태연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든 채 무언가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으… 짜증나, 으~ 짜증나! 도대체 왜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를 않냐고! 혹시 초콜릿이 별로 안 좋은 건가? 아님 모양 틀이 미운건가? 아아, 어떡하지?”

“태연아, 도대체 누굴 주려고 그렇게도 열심히 초콜릿을 만드는 게냐? 혹시 아빠? 으흐흐. 역시 그렇구나. 원표랑 헤어진 지 두 달도 안됐는데 벌써 남자친구가 생겼을 리는 없고. 아빠 맞지?”

“아빠가 아니므니다.”
“그럼 새 남친이냐?”
“남친이 아니므니다!!”
“그럼 누군데?”
“사람이 아니므니다. 수종이는 신이므니다. 너무나 잘생겼으므니다!! 수종이를 볼 때마다 심박수가 200을 찍스므니다!”

아빠는 급속히 기분이 나빠진다. 아빠를 위해서는 달걀 프라이 한 번 부쳐 본 적 없는 태연이가 알지도 못하는 어떤 녀석에게 초콜릿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심술이 나고, 그 녀석을 칭찬하는 것도 얄미워 죽겠다.

“심장이 그렇게나 뛰냐?”
“네~,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아요.”
“단지 심장만 뛰는 거야?”
“네, 엄청! 베리 어~엄청!!”
“에이, 그럼 넌 사랑에 빠진 게 아냐. 단지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을 하는 거지.”
“예에??”
“진짜야. 네가 수종이란 녀석을 좋아해서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심장이 뛰니까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거라고. 이런 사실은 실제로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됐어.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교의 아서 아론, 도널드 더튼 박사가 했던 ‘카필라노 실험’이 대표적인 경우지. 박사들은 실험에 참가한 남성들 중 절반은 낮고 안전한 다리를 건너게 하고, 절반은 아찔한 흔들다리를 건너게 했단다. 남성들이 다리를 건넌 직후, 한 젊은 여성이 그들에게 다가가 엉뚱한 설문조사를 했지. 그런 다음 설문결과를 알고 싶은 사람은 그 여성에게 전화를 하라고 말했더니,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아니? 아찔한 다리를 건넌 남성들이 8배나 많이 여성에게 전화를 했다는구나. 아찔한 다리를 건너느라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있었던 탓에 상대 여성을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꼈고, 전화를 하게 됐다는 거야.”

“말도 안 돼. 인간이 얼마나 오묘하고 영특한 존재인데, 심장 뛰는 것과 사랑을 구분조차 못한다는 거예요?”

“그럼 또 다른 실험을 말해줄게. 뉴욕주립대학교 심리학과 스튜어트 밸린스 교수는 방 안에 남성을 한 명씩 데려다놓고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주면서 여성의 사진들을 보여줬단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아니라 가짜로 녹음된 심장소리였지. 교수는 미인 사진을 보여줄 때는 보통의 심장소리를, 평범하거나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 사진을 보여줄 때는 미친 듯이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를 들려줬어. 그랬더니 어떻게 됐게? 남성들은 자신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고 생각되는 평범한 여성에게 훨씬 높은 호감을 보였다는구나. 이런 착각을 심리학적으로는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르는데, 이 실험처럼 너도 단지 심장이 뛰니까 ‘내가 수종이를 좋아하는 구나’ 그렇게 생각한 거라고.”

“진짜요? 흑흑, 이번에는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절대 아니거든! 인간의 뇌는 현실과 착각을 구분하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있단다. 심지어는 ‘노인’과 관련된 단어를 보여주자 자신을 노인이라고 착각한 실험참가자들이 노인처럼 굼뜬 행동을 했다는 실험까지 있어. 특히 사람의 뇌가 가장 심한 착각 상태를 보일 때는 사랑에 빠졌을 때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대방의 모든 것이 멋있어 보이고, 작은 키나 괴팍한 성격까지 사랑스럽게 느끼게 되는 ‘제 눈에 콩깍지’ 상태가 되는 거지.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착각을 착각이라고 여기지 않고 사랑이라고 인식한단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일이냐!”

“알겠어요. 모든 것이 제 뇌의 착각이었다면… 다시 생각해 볼게요.”

“그렇지!! 그런 태도 참으로 좋다. 우리나라 교육방송에서도 실험을 했었는데, 놀이공원 소개팅을 한 커플이 실내 소개팅을 한 커플보다 실제 연인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단다. 놀이공원은 곧 무엇이냐! 무서운 놀이기구! 다시 말 해 벌렁대는 심장 아니겠니? 그러니까 태연아, 넌 결단코 사랑에 빠진 게 아니란다. 심장이 좀 빨리 뛰었을 뿐이지. 알겠니?”

“흑흑흑, 정말로 감사해요 아빠. 깊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오늘처럼 아빠의 과학상식을 좋아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놀이공원에 가서 수종이에게 자이로드롭을 타게 한 후, 고백을 하면 커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거죠? 꼭 실천할게요!”

“헉! 그게 아니라….”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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