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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호황기에 착공되고 불황의 시작과 함께 입주가 시작된 도쿄의 고급 아파트. 출세의 상징과도 같은 그 아파트에서 어느 날 일가족 4명이 살해된다. 그런데 사체를 확인해 보니 이들은 살해된 아파트의 주민이 아니었고, 원 주인은 처가댁에서 있다가 이 사실을 알고는 도망친다. 도망친 원 주인이 다시 출두해서 사건을 알아보니, 이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게 되었고, 넘어간 집을 다시 되찾기 위해 소위 '버티기꾼'을 고용해서 임시로 살게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또 조사를 해보니 버티기꾼으로 고용된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들이 사용한 이름도 진짜 이름이 아니었다. 대체 이들은 누구이며, 왜 여기서 이렇게 죽임을 당한 것일까.
이 작품은 이렇게 일가족으로 보였던 네 명의 살해 사건을 시작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하나하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해 나간다. 전지적 작가의 역할을 해내는 이는 바로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는 르포 작가가 되겠다. 이 사람 역시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간에는 사건의 전말을 다 알 수가 없었지만, 하나하나 추적해가고 진짜 진실에 다가가면서 독자 역시 그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680여 쪽에 이르는 긴 소설인데, 누가 진짜 범인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이 왜 죽었는지, 왜 이렇게 모여 있었는지 그 '이유'가 중요했다.
작품은 끊임 없이 '가족'에 대해서 얘기했다. 이 작품에는 정말 무수하게 많은 가족들이 등장한다. 게 중에는 화목한 가정도 있고, 화목한 척하는 가정도 있고, 서로 위해 주지만 사실은 가족이 아닌 유사 가족도 있고... 정말 무수한 사례의 가족들이 나온다. 그리고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과, 살인 용의자로 추적되는 사람과, 이름을 도용한 사람과, 이름을 도용당한 사람까지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등장하는데, 그들 가족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들이 생성되고, 그것이 밖으로 확장되어서 이 어마어마한 살인 사건과 맞닿게 된다.
감정 표현이 서투르고 때로 오해와 불신이 씨앗이 되어서 비극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가정은 처음부터 '가족'이라는 이름이 불쾌할 만큼 서로에 대한 증오만 남은 경우도 있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이지만, 또 드라마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지만, 그것들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 것은 우리도 살면서 그런 가족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집집마다 작은 문제점들을 갖고 있고, 가족이기 때문에 더 힘든 경우가 있지 않던가. 적어도 나는, 많이... 아주 많이 그랬으니까.
이승환 5집 타이틀 곡은 '가족'이다. 이 노래의 가사 일부분은 이렇다.
힘이 들어 쉬어가고 싶을 때면
나의 위로가 될
그때의 짐 이제의 힘이 된 고마운 사람들
5월이면 많이 울려 퍼지는 이 아름다운 가사처럼, 한때 짐이 되었을지언정 지금은 '힘'이 되는 가족을 우리는 모두 바라고 소망하고 추구한다. 그렇지만 어떤 집에서는 여전히 '짐'이 되는, 그래서 내려놓고 싶지만 버릴 수 없어서 더 고통스런 가족도 존재한다. 그 생각 때문에, 이 작품이 더더더 무겁게 다가왔다. 살해된 사람도, 그리고 살인자가 된 사람도 정상스런 가족 울타리 속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살의를 느끼게 할 만한 부모를 갖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조건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할 대상으로부터 태어남과 동시에 저주를 받고 자란 존재가 멀쩡하게 자라서 보통 사람들의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 아닌가.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그 사람의 가정 환경부터 의심하고 파고들어가는 것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의 집안 사정부터 돌아보게 되는 것도 그런 까닭 아닌가. 본질, 근원, 시작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작점을 잘못 시작하면 돌이키는 일이 참으로 힘들다. 피를 나눈 가족과의 관계가 이리 힘든데, 타인과 관계를 맺고, 다시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는 일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일까.
그렇기에 이 작품은 몹시 무겁게 읽히지만, 그래도 그 행간 안에는 따뜻한 부모의 정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살인 용의자로 쫓겨다니는 인물을 발견한 것은 자신의 딸이었지만, 행여나 아이에게 해가 미칠까 봐 자신이 먼저 알아봤다고 서둘러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랬다. 어린 딸은 철없이 자신의 공을 아빠가 가로챘다고 섭섭해 했지만.
사회파 소설가로도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답게 이 작품에서도 여러 사회 문제를 지적했다. 호황 경기에 힘입어 호화스런 고급 아파트를 지었지만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아파트값은 떨어졌고, 그 바람에 나도 조금만 더 보태면 저런 집에 살 수 있을 거란 허파에 바람 든 사람이 등장한다. 제 능력을 상회하는 빚을 지고, 그 위험성을 지적하는 누이에게 몹쓸 소리를 하며 연을 끊어버리는 남동생과, 그런 남편을 부추기며 허영을 채우는 아내가 있다. 그리고 이런 부모가 부담스러워 차라리 생판 모르는 남과 살고 싶어하는 아들이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고급 아파트일까. 거기서 살면 자신의 위치가 높아질 거라고 착각하는 이 우매한 인간들이 어디 여기에만 있겠는가.
아들의 진로 문제로 크게 싸운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우습게 여긴다고 생각했고, 이런 고급 아파트에 들어가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아버지로서의 체면을 차릴 수 있다고 여겼다.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해결방법. 악순환은 삶에 깊은 골을 만들어버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본인도 힘들어 했던지...
작품 말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돌아갈 곳도 갈 곳도 없다는 것과 자유라는 것은 전혀 다른 걸 거야."
정말, 많이 다르다. 어디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구속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독립해서 살겠다고 몇 번이나 집을 나갔지만 결국 이번 주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큰 언니를 떠올리면서 생각해 본다. 그런데 나의 자유는 어쩌지? 후우......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가족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양분을 주어 가꾸어 온 그 자리를. 당신의 자리에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는지, 아니면 가물어 시들시들 죽어가는지, 혹은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품이 몹시 길고 진실이 한꺼풀씩 드러나는 과정이 몹시 오래 걸린다.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과 그들 각자의 구구절절한 가족사도 작품을 좀 늘어뜨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은 분명히 인정한다. 헌데 작품 말미에 붙은 '해설'은 솔직히 좀 사족 같다. 크게 공감이 가지도 않았고... 여하튼 미미 여사는 솜씨가 훌륭하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덧글)
164쪽 관자놀이에서 옆으로 한 줄기 선명하게 나 있는 메시만 남게 되었다. >>> 메시만????
514쪽 얘기 없는 얘기 >>> 있는 얘기 없는 얘기
514쪽 꼬득였는지 >>> 꼬드겼는지
556쪽 떠들고 다닌데. >>> 떠들고 다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