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구판절판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17쪽

아버지는 매표소 바로 뒤 벽에 선홍색 글씨로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건 뭘까요?’라고 적고, 작은 커튼이 있는 곳으로 화살표를 해놓았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답을 보느라 커튼을 걷는 바람에, 정기적으로 커튼을 바꿔야 했다. 커튼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47쪽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자들은 정작 나병에 걸려 동전푼을 동냥하는 과부는 못 본 체 지나고, 누더기 차림으로 노숙하는 아이들 곁을 지나면서도 ‘늘 있는 일’로 치부한다. 하지만 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점을 보면 난리라도 난 것처럼 군다. 얼굴을 붉히고 숨을 몰아쉬면서, 화를 내며 말을 쏟아낸다. 얼마나 분노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 단호함이 겁난다. 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과부와 집 없는 아이들의 운명은 너무 힘들다. 그러니 독선적인 자들이 편들어주러 달려갈 곳은 신이 아니라 그런 이들인 것이다.
-96쪽

기도 카펫이 마음에 들었다. 고급은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아름답게 빛났다. 그걸 잃어버려서 안타깝다. 어디에 펴든, 그 밑의 땅과 주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졌다. 땅은 신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모든 것이 똑같이 신성하다는 점을 되새기게 해주는 것이 좋은 기도 카펫 아닐까. 빨간 바탕에 금색 줄이 섞여 있었다. 폭 좁은 직사각형 위에 삼각형의 꼭짓점이 기도하는 방향을 가리켰고, 그 주변에는 소용돌이무늬가 연기나 알지 못하는 언어의 부호처럼 새겨져 있었다. 털은 포근했다. 기도할 때 이마가 닿는 부분 조금 옆에는 술이 달려 있었다. 발끝이 닿는 곳 조금 옆에도 술이 달려 있었다. 이 넓은 세상 어디에서든 편하게 해주는 크기였다.

-104쪽

가여운 녀석, 인간처럼 멀미를 하다니! 동물에게서 인간의 흔적을 보는 것은 특별한 재미가 있다. 특히 원숭이나 유인원에게서는 인간의 모습을 찾기 쉽다. 유인원은 동물 세계에 사는 인간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머리를 가슴팍까지 숙이면서 밀려드는 감정에 놀랐다. 이런! 웃음이 내 안에서 행복의 화산을 폭발시킨 것 같았다. 오렌지주스는 내게 원기만 찾아준 게 아니라, 멀미까지 없애주었다. 이제 기분이 괜찮아졌다. 다시 수평선을 찬찬히 바라보자 희망이 샘솟았다.

-157쪽

그날 아침 내가 생명을 구한 것은, 갈증이 나서 문자 그대로 죽을 지경이었던 때문이라고 믿는다. ‘갈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니, 다른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말 자체가 짭짤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생각을 할수록 결과는 더 나빠졌다. 공기가 부족한 것이 물에 대한 갈증보다 다급하게 느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몇 분간만 그럴 것이다. 몇 분 후에는 죽을 테고, 질식의 고통은 사라지니까. 반면 갈증은 느릿느릿 일어난다. 보라. 십자가의 예수는 질식해서 죽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불평한 것은 갈증이 아니었던가. 갈증이 인간의 모습으로 온 신까지 불평하게 만들 만큼 힘든 것이라면, 보통 인간은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를. 나는 미쳐서 펄쩍펄쩍 뛸 것 같았다. 입에서 썩은 맛이 나고 끈적끈적한 것처럼 고약한 게 있을까. 목구멍 뒤쪽에 달라붙어 있는 참을 수 없는 이 압박감. 이 피가 걸쭉해져서 잘 돌지 않는 느낌. 사실 그런 고통에 비하면 호랑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173쪽

그와 거리가 3미터도 되지 않았다. 그의 머리, 가슴, 발...... 정말 컸다! 무지무지 컸다! 이빨은 입 안에 군부대 하나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제 방수포로 뛰어들 터였다. 나는 죽은 목숨이었다.

-194쪽

여러분에게 비밀을 털어놓겠다. 마음 한편으로 리처드 파커가 있어 다행스러웠다. 마음 한편에서는 리처드 파커가 죽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가 죽으면 절망을 껴안은 채 나 혼자 남겨질 테니까.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 아닌가. 내가 아직도 살 의지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리처드 파커 덕분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가족과 비극적인 처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나를 계속 살아 있게 해주었다. 그런 그가 밉지만 동시에 고마웠다. 지금도 고맙다. 이것은 분명한 진실이다. 리처드 파커가 없다면, 난 오늘날 이렇게 살아 여러분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을 것이다.

-207쪽

인체는 전투에서 영웅이 될 수 있다. 조난자가 부상당한 경우, 뜻은 좋지만 정확한 근거 없는 치료법을 조심할 것. 무지는 최악의 의사인 반면, 휴식과 잠은 최고의 간호사다.

-210쪽

지나가는 배에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너무 많이 갖는 것도 그만둬야 했다. 외부의 도움에 의존할 수 없었다. 생존은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내 경험상 조난자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기대가 너무 크고 행동은 너무 적은 것이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데서 생존은 시작된다. 게으른 희망을 품는 것은 저만치에 있는 삶을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텅 빈 수평선을 내다보았다. 물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나는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였다.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가슴에 팔짱을 끼고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처지였다.
-212쪽

슬쩍 내려다보고서도 나는 바다가 ‘도시’임을 알아차렸다. 내 바로 아래에, 사방에 상상도 못 했던 고속도로, 대로, 좁은 도로, 교차로가 있었다. 해저 통행객이 우글우글했다. 복잡한 바다에는 얼룩 반점이 있는 번들거리는 플랑크톤 수백만 개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트럭, 버스, 승용차, 자전거, 보행자처럼 정신없이 내달리는 물고기 떼는 경적을 울리고 소리를 질러댔다. 주조색은 초록빛. 눈이 닿는 곳까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물속에서 물고기 떼가 속도를 내느라 물을 흔들면, 인광을 내는 초록색 거품으로 이루어진 길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 길이 사라지면 곧 다른 길이 나타났다. 이런 길들이 사방에서 생겼다가 사방에서 생겼다가 사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꼭 노출 시간을 길게 해 찍은 사진 같았다. 밤에 도시를 찍은 사진을 보면, 자동차 불빛이 꼬리를 이은 광경이 긴 빨간 줄들로 보이지 않던가. 다만 여기서는 차들이 서로의 머리 위와 몸 아래로 달리고 있었다. 십 층짜리 고가도로 같달까.

-220쪽

나는 허리를 숙여 물고기를 집어, 리처드 파커 쪽으로 던졌다. 호랑이를 길들일 좋은 방법이었다! 쥐가 간 곳에 날치도 따라가게 되겠지. 그런데 날치는 휙 날아가버렸다. 공중에서, 그러니까 리처드 파커의 벌린 입을 살짝 빗나가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빛이 날아가는 것 같은 속도였다. 리처드 파커는 머리를 돌리고 턱을 깨물며 입을 다물었지만, 날치가 너무 빨라 잡지 못했다. 그는 놀라고 또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리처드 파커는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내 먹이는 어디 있지?’라고 묻는 표정이었다. 나는 공포와 슬픔에 사로잡혔다. 호랑이가 덮치기 전에 뗏목으로 뛰어내릴 수 있을까. 반쯤 자포자기하여 맥이 빠졌다.

-226쪽

만새기는 죽어가면서 아주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빠른 속도로 온갖 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버둥거리는 몸이 파랑, 초록, 빨강, 금색, 보라색으로 바뀌며 네온 불빛처럼 번뜩였다. 무지개를 내리쳐서 죽이는 기분이었다(나중에야, 만새기가 죽음 직전에 무지개 빛깔을 내는 어류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침내 만새기는 뻗었고 탁한 색깔로 변했다.

-231쪽

나는 태양 증류기에 대고 소리쳤다.
"귀여운 바다 젖소 같으니! 젖을 만들었구나! 얼마나 맛좋은 우유인지. 고무 맛이 좀 나긴 해도 불평할 처지가 아니지. 내가 마시는 걸 보라구!"
-234쪽

처음에는 줄곧 지나가는 배가 있는지 내다보며 지냈다. 하지만 대여섯 주쯤 지나자 그것은 거의 완전히 접어버렸다. 그리고 망각에 기대 목숨을 부지했다. 내 이야기는 달력 위의 날짜에서 시작해서-1977년 7월 2일-달력 위의 날짜로-1978년 2월 14일-끝나지만, 그 사이에는 달력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며칠인지, 몇 주일인지, 몇 달인지 헤아리지 않았다. 시간은 우리를 갈망하게 할 뿐인 환영인 것을. 내가 살아남은 것은 시간 개념 자체를 잊은 덕분이었다.

-239쪽

내가 바다에서 동물을 조련하고 목숨을 건졌다면, 그건 리처드 파커가 날 공격하고 싶어하지 않은 덕분이다. 호랑이는, 아니 모든 동물은 우위를 가리는 수단으로 폭력을 쓰려 하지 않는다. 동물이 맞붙어 싸울 때는 죽이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고, 이때 자신이 죽을 수도 있음을 잘 안다. 충돌에는 큰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동물들은 최후의 대결을 피할 의도로 경계하는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다. 경계해야 한다는 신호가 감지되면, 그들은 얼른 뒤로 물러난다. 호랑이는 경고 없이 적을 공격하지 않는다. 보통 적수에게 정면으로 달려들 때는 으르렁대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달려들기 직전에 목구멍 깊은 곳에서 위협하는 소리를 쏟아내면서 꼼짝 않고 대치한다. 그러면서 상황을 가늠한다. 상대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나면, 호랑이는 싸울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몸을 돌린다.
-257쪽

내 가장 큰 바람은-구조보다도 큰 바람은-책을 한 권 갖는 것이었다. 절대 끝이 나지 않는 이야기가 담긴 긴 책. 읽고 또 읽어도 매번 새로운 시각으로 모르던 것을 얻을 수 있는 책. 아쉽게도 구명보트에는 성서가 없었다. 나는 크리슈나의 말이라는 은혜 없이 부서진 전차에 탄 서글픈 아르주나 꼴이었다.
-258쪽

일기를 썼다. 지금 필체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최대한 글자를 작게 썼다. 종이가 떨어질까 두려웠다.
-259쪽

생존 식료품이 점점 줄어들자, 책자에 적힌 그대로 여덟 시간마다 비스킷 한 개씩만 먹을 정도로 급식량을 줄였다. 계속 배가 고팠다. 강박적으로 음식 생각을 했다 적게 먹어야 될수록, 공상 속의 음식량은 많아졌다. 상상 속의 식사는 인도만 하게 커졌다. 갠지스 강 분량의 콩 수프. 라자스탄만 한 따끈한 차파티. 우타르 프라데시(인도에서 다섯 번째로 넓은 도시)만 한 쌀밥그릇. 타밀나두 지역에 넘쳐나는 삼바. 아이스크림이 히말라야 산처럼 높이 쌓이고...... 백일몽은 음식 전문가의 경지로 올라갔다. 음식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늘 싱싱하고 풍족했다. 오븐이나 프라이팬은 항상 적당한 온도로 맞춰져 있고, 음식의 조화는 언제나 딱 알맞았다. 타거나 설익는 것도 없고,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찬 것도 없었다. 식사마다 완벽했다. 다만 내 손이 닿지 않을 뿐.
-263쪽

여러 가지 하늘이 있었다. 바닥은 평평하지만 윗부분은 둥글고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흰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잿빛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숨 막히게 자욱하지만 비는 올 것 같지 않은 하늘도 있었다. 얇게 내려앉은 하늘. 작고 흰 양털 같은 구름이 피어오른 하늘. 솜 덩어리를 늘어놓은 것 같은 얇은 구름이 높게 끼기도 했다. 형태 없이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하늘도 있었다. 짙고 거센 비를 머금은 구름이 지나만 갈 뿐 비는 뿌리지 않는 하늘. 모래톱처럼 생긴 작고 평평한 구름으로 자욱한 하늘. 수평선에 걸쳐진 덩어리로만 보이는 하늘. 태양빛이 바다에 밀려들면,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확연히 드러났다. 하늘은 내리는 빗줄기로 된 머나먼 장막이었다. 하늘은 층층이 있는 구름이었다. 어떤 것은 짙고, 뿌옇고, 또 연기 같았다. 하늘은 검은색이었고, 내 웃는 얼굴에 빗줄기를 뿌렸다. 하늘은 떨어지는 물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267쪽

여러 가지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바다는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처럼 귀에 속삭였다. 바다는 호주머니에 든 동전처럼 쨍그랑댔다. 바다는 산사태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포로 나무를 문지르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람이 토하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죽은 듯 고요했다.
그 둘 사이에, 하늘과 바다 사이에 온갖 바람이 있었다.
또 온갖 밤과 온갖 달이 있었다.
-268쪽

상반되는 것 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바다가 주름살 하나 없다. 바람의 속삭임조차 없다. 시간이 영원까지 계속될 듯하다. 어찌나 권태로운지, 의식불명에 가까운 상태로 빠진다. 그러다 바다가 거칠어지면 감정은 광풍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두 상반되는 것조차 명확하게 남지 않는다. 권태 속에는 공포라는 요소가 있다.

-269쪽

어느 날 오후, 폭풍우가 천천히 들이닥쳤다. 바람에 앞서 다가온 구름이 겁에 질려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어서 바다가 비틀거렸다. 바다가 위로 솟았다 밑으로 떨어지자 내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279쪽

새벽녘에 뗏목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묶은 노 두 개와 그 사이에 매놓은 구명조끼만 남았을 뿐이었다. 타버린 집에 남아 있는 기둥을 바라보는 가장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수평선을 꼼꼼히 살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내 작은 해양 마을은 사라지고 없었다.

-282쪽

새는 모두 여섯 마리를 봤다. 가까이에 육지가 있다고 알려주는 천사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들은 바다에 사는 새여서, 날갯짓도 별로 하지 않고 태평양을 날 수 있었다. 나는 경외감을 품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부러워서 자기 연민에 빠지기도 했다.

-285쪽

나무가 계속 서 있어서 나도 계속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파란색만 물리게 보다가 초록색을 보니, 눈에 음악을 쏟아붓는 것 같았다. 초록색은 예쁜 색이다. 이슬람교의 색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이기도 하고.

-320쪽

그것은 나무였다. 바다에서 오래오래 헤맨 사람에게 얼마나 축복 넘치는 광경인지. 나는 나무의 영광을, 그 단단하고 서두르지 않는 순수를, 천천히 꽃피우는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아, 나도 저렇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모든 손을 공중에 들어올려 신을 찬양할 수 있다면!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324쪽

나는 안간힘을 쓰다가 모래사장에서 쓰러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완전히 혼자였다. 가족도 없는데 이제 리처드 파커도 없이 혼자가 되어버렸다. 신마저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 신도 없었다. 보드랍고, 단단하고, 드넓은 이 해벼은 신의 뺨 같았고, 내가 거기 있자 어디선가 두 눈이 기쁨으로 번득이고 입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353쪽

"왜 조난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지 그가 몰랐을까요?"
"만일 신호를 보냈다면요? 내 경험으로 시꺼먼 삼류 고물 배가 가라앉는 경우, 운이 좋아서 그 배가 기름을 운반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아무도 그 배의 사정을 듣지 않는다구요. 생태계 전체를 망칠 만큼 많은 양의 기름이 실려 있지 않다면. 녹슨 고철덩어리 배는 알아서 해야 한다구요."
-3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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