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기내식 맛없는 이유는 소음 탓? 소음의 역할
흔히 항공기의 기내식은 맛이 없다고 평가된다. 이용자들은 항공사에 맛있는 음식을 요구하지만, 항공사는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소음’ 때문이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앤디 우드 교수는 2010년 10월 ‘음식품질과 선호(Food Quality and Preference)에 실린 논문에서 소음과 맛의 관계에 대해서 밝혔다. 그는 소음이 증가할수록 음식의 맛을 사람들이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앤디 우드 교수는 48명의 실험자의 눈을 가린 뒤 이들에게 비스킷과 감자 칩과 같은 맛있는 음식을 주고 헤드폰을 쓰게 하면서 소리에 따라서 맛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지 실험을 했다.
실험자들은 소리가 커질수록 단맛이나 짠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 이유는 주의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소음이 많은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를 뒷받침해 준다. 통상적으로 조용한 가정집의 음식보다 시끌시끌한 식당의 음식이 단맛이나 짠맛이 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맛이 강하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느낄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소음은 사람들에게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당장 일에 집중을 못하게 하며 두통이나 불안과 초조함, 불면증, 착란증을 일으키고 정신분열증이나 편집증은 물론 심혈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소음이 완전히 없어도 안 된다. 미국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의 실험실에 있는 ‘무향실(anechoic chamber, 외부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한 음향측정용 방)’에 사람들이 들어가면 45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아예 소음이 없으면 사람들은 감각의 혼란이 생겨 버리기 때문이다.
소음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6월 미국 컨슈머리서치 저널에 발표한 미국 일리노이대의 라비 메타 교수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조용한 공간보다 소음이 있는 공간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험자들에게 세상에 없는 물건을 만들라거나 평소에 익숙한 물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하라고 과제를 냈다. 상대적으로 조용한 환경(50dB)에 비해 소음이 있는 환경(70dB)에서 참가자들이 흥미로운 답변을 내놓았다.
70데시벨(dB)은 청소기나 TV, 커피숍에서 트는 음악 소리 정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시끄러운 상황에서는 문제에 더 집중하게 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접근하던 방식이 방해를 받으면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면서 보통은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그러나 85dB 이상에선 창의력이 떨어졌다. 또한 음악이 있는 매장에서 신제품이 팔렸다. 이는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창의성을 증가시킨 것이라는 맥락이다.
친환경적인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는 소음이 환경오염을 덜 시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내연기관이 아니라 모터를 사용하고 그 모터의 소리마저 흡음재가 흡수한다. 하지만 소음이 없어서 오히려 위험한 차가 돼 버렸다. 일반 보행자도 그렇지만 시각장애인이나 어린이들이 자동차가 접근하는지 판별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의 실험 결과, 일반 휘발유 자동차의 경우 8.5m 밖에서 차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지만 하이브리드차는 2.1m 앞에 올 때까지도 감지가 불가능 했다. 그래서 한 스포츠카 회사는 가짜 소음을 만드는가 하면 범퍼에 스피커를 달기도 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고주파보다 저주파가 더 위험하다고 한다. 저주파는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두통과 불면증, 만성스트레스를 일으키고 위궤양, 고혈압, 당뇨병, 암까지도 발생시킨다. 소리 없이 사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저주파다. 더 시끄럽다면 사람들이 이를 피하거나 방지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
시동을 걸 때 나는 소리는 크지만 불쾌감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렁차게 나야 사람들은 기분 좋게 느낀다. 길거리의 빗자루 소리도 경쾌해야 깨끗해진 듯싶고 청소기는 소음이 있어야 청소가 잘 되는 것 같다. 칫솔 역시 시원하게 소리가 나야 잘 닦이는 듯싶다. 변기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슬그머니 없어지기만 한다면 찜찜하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왁자지껄해야 하고 홈 쇼핑 채널은 진행자가 호들갑을 떨어야, 쇼핑센터에서는 사람들이 웅성거려야 제 맛이다.
청량 음료수의 캔을 딸 때 소리가 없다면 시원한 맛이 덜할 것이다. 기름으로 튀겨낸 스낵 봉지를 열 때나 튀김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맛이 덜할 것이다. 맥주를 따랐을 때 시원하게 올라오는 거품의 소리는 술 마실 맛을 나게 한다. 폭포에는 폭포소리가 나야 하며, 도마에서는 칼과 도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야 한다. 시끄러운 아이들의 소리는 잔칫집에서는 제 맛을 준다. 좌판에서 엿을 쪼개며 두드리는 가위 소리는 주택가에서는 짜증이지만 축제 행사장에서는 더욱 정겹다. 이런 곳에서는 조용한 클래식보다 시끄러운 트로트가 더 어울리고 기분도 낸다. 이른바 감성 소음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소음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음악이 되기도 한다. 특히 본인에게는 잘 들리는 음악이지만 거리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노이즈에 불과하다. 사람에게 잘 들리는 주파수는 3500㎐ 대역인인데, 이보다 낮아지면 음량의 폭이 가늘어져 소리 크기는 작아지지만 훨씬 민감하고 자극적인 소음이 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음악을 들려주면 소는 젖을 잘 만들어낸다. 일본의 연구에 따르면 젖이 2~3%늘고 젖의 질도 좋아졌다고 하는데 돼지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완전한 공유가 이루어진다면 소음이라는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미국 코넬대학 심리학과의 로렌 앰버에 따르면 옆 사람의 대화 내용이 짜증을 일으키는 이유는 대화 내용이 드문드문 들리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뇌가 피로해지는 결과라고 했다. 큰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옆 사람의 대화가 소음으로 들리는 이유다.
이렇듯 지나친 소음은 우리를 괴롭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소음은 우리생활에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글 : 김헌식 문화평론가
출처 :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