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 - 삶의 본연을 일깨워주는 고요한 울림
세스 지음, 최세희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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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쪽 만화는 확실히 정서 차이를 많이 느끼게 한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그림보다 내용의 충격성에서 꽤 감명을 받았는데, 마찬가지로 내용 쪽이 충격적인 조 사코의 '안전지대 고라즈데'는 읽어내는 게 무척 힘들었다. 아무래도 지나치게 빽빽한 그림과 사전을 읽는 것 같은 피로감을 주는 과한 글자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중간쯤 되겠다. 간결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그림에 글밥도 아주 많지는 않다. 하지만 무척 조용한 서사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만화와 일본만화에 익숙한 독자로서 다소 낯선 편이긴 했다.

 

이 책은 저자 세스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만화가이면서 오래된 만화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던 작가는 어느날 우연히 오래전 뉴요커 잡지에서 확 꽂히는 그림을 그린 작가를 발견해냈다. 그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 했지만 찾을 수 있는 작품은 무척 한정적이었다.

 

 

무언가에 꽂히면 올인하는 성격인가 보다, 세스는. 이후 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해서 작가의 신상을 알아내고, 그가 자신이 어릴 적 살던 동네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래서 직접 그 동네로 가보기도 했다. 작가는 이미 죽은지 오래였고, 세스는 그의 흔적을 쉽게 찹지 못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파고드니 캘로의 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집으로 다시 찾아간다. 그러나 딸은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사진 몇 장을 얻고 어머니에 대한 추억 몇 가지만 들었을 뿐이다. 대신 아직도 살아계신 캘로의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자기 아들 얘기 마다하는 어미 봤냐는 아흔 셋의 노모와 캘로의 옛 친구도 찾아가서 만난다. 이 모든 작업들이 무려 십년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무척 집요한 면이 있는 작가 세스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도 집착하게 만든 것일까?

 

 

캘로가 그린 삽화들이다. 왼쪽 그림에는 "어머, 신기해라! 내가 당신 바로 전 해의 미스 오클라호마였다우!"라고 적혀 있다. 1947년 5월에 실린 그림이다. 오른쪽 그림에는 "아니, 혼자 있겠다는 게 아니야. 그냥 좀 내버려둬달라고."라고 적혀 있다. 1954년 10월에 실렸다. 왼쪽 그림에서 유머를 읽었다면 오른쪽 그림에서 어쩐지 좀 짠한 기분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는 청소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캘로는 미국에서 한동안 활동을 했지만 세스를 홀린 만큼 많이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이내 캐나다로 돌아왔고, 그 다음에는 부동산을 운영하면서 지내다가 사망했다. 가족들조차 캘로가 남긴 그림을 소장하지 못했다. 본인이 직접 그림을 없앴을 수도 있고, 가족들이 못 찾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만화가로서 활동했던 경력에 비해 그 흔적이 많이 남지는 않은 편이다.

 

화려하게 불탄 것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사그라져간 그 예술 혼에 세스는 더 관심이 갔던 것은 아닐까 싶다. 세스는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다. 아주 친한 친구가 있지만 그다지 사교적인 편은 아닌 것 같고, 꾸준히 여자 친구도 만들지만 오래 지속되지도 않는다.

 

 

밤에 자다가 깨어보니 스케이트 타는 사람이 있었다. 다음 날 왕년의 솜씨를 떠올리며 스케이트를 타보지만 바로 엉덩방아 찧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어릴 적에는 비가 오면 종이 배를 띄워놓고 혼자 놀기도 했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지만, 또 외로움도 많이 타는 사람으로 보인다. 캘로의 일로 낯선 사람들을 자주 만나고 난 뒤에 절친에게 전화를 걸어 익숙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더 잘 알아보는 법!

 

 

캘로를 찾는 과정에서 하루 머물렀던 여관 이웃방에 장기 투숙 중이던 화가가 있었다. 동종 업종이긴 하지만 애니가 보여준 과도한 친밀감은 도리어 그녀의 외로움을 더 짙게 드러내고 말았다. 피곤하다고 그만 방으로 돌아가려는 세스를 그녀가 얼마나 간절히 붙잡았던가. 다음날 떠나기 전에 세스는 그녀의 방문에 쪽지를 하나 남긴다. 얼굴을 보면서까지 인사할 정도는 아니어도 훌쩍 떠남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다시 만들지 않으려는 소박한 배려가 돋보인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작고 따뜻한 마음씀이다.

 

 

작품은 아주 천천히 물 흐르듯이 잔잔하게 진행되는데, 세스의 동선과 시간을 고스란히 그 속도로 담아내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어린 시절에 읽었던 만화책의 한 대목을 떠올리는 부분이다.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에서 땡땡이 기차 위를 달리다가 터널에 머리를 부딪칠 뻔하는 위기의 장면이라고. 출판사 편집자는 어린이들이 따라할지도 모르니 그 장면을 지우자고 했지만 에르제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 바람에 터널만 보면 그 만화의 한대목을 떠올리는 애독자도 생겼다.

 

어떤 기분일지 나도 알 것 같다. 어릴 때 언니가 읽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몰래 가져다가 읽었더랬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2층집 창문에서 시체를 기차 위로 던졌고, 기차가 달리다가 커브 길에서 도는 바람에 시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살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엉뚱한 곳에서 사체가 발견된 것이다. 홈즈는 단번에 2층집 창문을 생각해 냈고, 기차를 타고서 지나는 길목에 위치한 2층집을 찾아낸다. 당시 내가 살던 동네에 꼭 그런 집을 연상시키는 2층 집이 있었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홈즈의 그 대목이 생각났고, 하얀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아주 깔끔한 그 집이 음산하게 보였다. 날도 환한데 괜히 무섭다고 뛰어서 돌아가기도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찾아보면 이런 식의 추억은 꽤 많을 것이다.

 

작품의 미덕은 이렇게 느린 속도의 전개가 독자로 하여금 마찬가지로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나도 그랬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는 것이다. 극적인 변화를 싫어하고 지금 이대로를 좋아하는 세스. 본인이 만났던 사람들 전부를 리스트로 만들어 보기도 했다는 세스. 이거 무척 재밌는 생각이다. 사람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 나는 과연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적을 수 있을까? 그들을 학연 지연 그밖에 취미, 업무 등등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친밀도를 떠올려 본다면, 마치 핸드폰 속 전화번호부 카테고리가 구현될지도...

 

작품의 제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더 강해진다면'이란 가정이 아니라 '약해지지만 않는다면'이라고 했다. 모두가 더 강하고 더 빠르게를 외치는 시대에서 약해지지만 않는 정도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이라니, 그 느려보이지만 가볍지 않은 삶이 흐뭇하게 다가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가수 이승환이 그런 말을 했다. 불행하지만 않으면 행복한 거라고... 동의한다. 불행하지 않으면 그걸로도 행복한 거지. 마찬가지로,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그 정도면 괜찮은 인생이다.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루저 취급받는 세상에서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해주는 것, 정말 최고의 위로 아니던가. 크게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하는 삶,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삶... 그런 삶을 지향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살고 싶다.

 

 

독특한 주석이다. 작품에 등장한 여러 만화책과 작가들을 맨 뒷장에 소개했는데, 저렇게 캐릭터들도 같이 실어주었다. 이런 스타일의 그림이구나... 감상하는 게 즐거웠다. 이렇게 재미난 주석이라면 귀찮다고 패쓰패쓰할 일이 없을 텐데...

 

오른쪽 붉은 바탕의 사진은 책의 앞뒤 날개를 펼치면 나오는 장면이다. 캘로의 아내 헬렌과 딸의 모습이다. 캘로를 찾아내면서 시작된 세스의 여정이 다시 캘로에서 끝난다. 기승전결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구나, 세스는!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로 추정되는 뉴욕 시절의 캘로 사진이다. 통 넓은 바지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나보다.

 

오른쪽의 제목은 내지 표지인데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번 강조하는 의미로 한컷 찍었다. 괜찮은 인생이라는 말이, 오늘 여러모로 나를 안심시킨다.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37쪽 맨 위 두번째 컷 : 교정를 보다가 >>> 교정을 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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