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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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은 궁금했다. 병아리를 키우는 남학생이 사는 집은 어떨까. 어떤 부모와 어떤 형제가 사는 집일까. 어떤 집에서 어떻게 자라야 달걀에서 병아리를 떠올릴 수 있을까. 지란에게 달걀은 그저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음식 재료일 뿐이었다. 그런데 해일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보았다. 부러웠다. 평화롭고 따뜻한 집일 것 같아서. 그런 집에 한 번이라도 가 보고 싶었다.-141쪽

'시원'과 별 차이도 없는데 이놈의 '쿨'은 뭔가를 강요하는 면이 있었다. 쿨하지 않으면 왠지 촌스럽고 질척한 인간처럼 만드는 요상한 말이었다. -143쪽

아이들은 해일의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담임뿐만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가. 한없이 기대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쪼르르 달려가 폭 안길 만큼 편안한 존재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곤란한 일이 닥쳤을 때 "무슨 일이냐?"하고 등장한 선생님처럼 든든한 존재가 또 있을까?-152쪽

부릅뜬 지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달걀로 병아리를 부화시키는 동생, 외출하고 돌아와 병아리의 안부를 묻는 형, 아들이 부화시킨 병아리에게 꼬박꼬박 먹이를 챙겨 주는 어머니, 그것들에게 집을 지어 주겠노라 재료를 모아 둔 아버지. 그런 가족이 지란의 집에는 없었다. 갈기갈기 찢긴 종이처럼 너덜한 상처만 남은 집. '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는 말만 쏟아지게 만드는 집, 지란은 이 끔찍한 집이 싫었다.-178쪽

늦은 밤 닭갈비집은, 배부르고 맛있게 따뜻했다.-195쪽

남들과 너무 다르다는 말은 어린 해일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잔인한 억압이었다. 다르다는 말을 틀렸다는 말로 알고, 자신을 늘 틀린 아이로 생각했다. 그런데 감정 설계 전문가 형이, 남들과 아주 똑같다고 했다. 형이, 형이 그랬다. 너무 오래 기다린 말인 탓에 눈물이 나고 말았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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