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
주진우 지음 / 푸른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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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강자 편을 든다는 뜻 아닌가. 똑같은 룰로 링에서 싸우면 당연히 힘센 놈이 이긴다. 그 룰이라는 것도 힘센 놈들이 만들지 않았나.

나는 중립, 균형을 찾기보다 편파적으로 약자의 편에 서겠다. 내가 이런다고 약자들이 이기지도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을 계속 던질 것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그래서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말이다. 나는 17살 주진우다. -7쪽

 

'나는 꼽사리다'의 오프닝은 "세상이 바뀌면 없어질 방송, 99%를 위한 편파방송"이라고 나온다. 99%를 위한 편파방송, 마음에 든다. 1%의 소수를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1%의 특권층을 위한 방송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니까. 주진우 기자의 말대로 세상이 불공평한데 중립을 지킨다는 건 비겁한 일이다. 명백한 '악'을 악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결국 선을 져버리겠다는 말이다. 그거 비겁한 것 맞다. 단테는 이렇게 얘기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예비 되어 있다

그래서 여당도 싫고 야당도 싫다면서 투표하지 않는 인간들이 참으로 싫다. 어느 쪽이든 선택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은 채 꼼꼼히 뜯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이 부당한 특권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독립을 소외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달려든 거다. 검찰은 정권의 개가 되고 싶었다. 개 노릇 그만해도 된다니까 안 예뻐한다고 물어뜯은 거다. -43쪽

 

오늘날의 검찰이라면 조선 시대 사헌부 쯤 되겠다. 혹시라도 청탁에 휘말릴까 봐,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했다던 고고함을 오늘날의 검찰은 갖고 있을까. 특혜는 누리면서 명예는 내팽개치고, 온갖 추문에 휘말린 이 검찰, 그러니 개소리 듣는다고 억울할 수 있을까. 억울한 누군가, 제발 그 안에서 물 좀 갈아치우시라. 내부에서부터 자정 좀 해보시라. 부탁이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재벌이고 재벌의 가장 큰 리스크는 총수다. 총수가 저지르는 온갖 범죄를 처리하는 데 회사는 모든 역량을 퍼부어야 한다. 총수는 기업의 엑스맨이다. -79쪽

 

총수의 범죄를 처리하기 위해서 총역량을 동원하는 거대 기업의 모습이라니, 부끄럽다. 국정원 직원이 의혹대로 정말 댓글 알바에 동원된 거라면, 그 역시 얼굴을 못 들만큼 부끄럽다. 내부고발자를 내치고 처벌하고 매장시키는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검은 것을 검다고 말할 수 없는 사회로 자꾸 망가져가는 게 아닐까. 세상은 과연 더 나은 문명세계로, 진보의 땅으로 갈 수 있는가?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자기들이 잘해서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고, 국가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싼 이자로 돈 빌려주고, 세금 탕감해주고, 독점 주고, 부동산 투기 눈감아주는 특권이 재벌 성공의 핵심이었다. 삼성이 부동산 투기, 사카린 밀수 등이 없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수입차 규제가 없었다면 현대자동차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재벌의 성공에는 국민들의 희생이 있다. 그런데 이익공유제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오만하고 뻔뻔하다. 이게 천재 경영이다. -80쪽

 

박정희 신화를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국민들이 노력했다. 말도 안 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면서 죽도록 일해서 일궈낸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이다. 당신들이 흘린 땀이다. 그 땀의 열매를 제발 인정해 주시라. 백성이 되지 말고 국민이 되시라. 당신의 자손 역시 백성 아닌 국민이 될 수 있도록.

 

깔때기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표현할 방법을 찾다 떠오른 말이다. 설교를 듣다가 언제쯤 돈 얘기 하겠다 생각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헌금 얘기가 나온다.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든 어김없이 이 깔때기가 들어온다. 천국에 가려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정봉주보다 더 자주 들어온다. 그러니 깔때기의 원조는 조용기 목사다. 막상막하로는 오직 조중동 깔때기가 있다. 이들은 어떤 사안이든 나쁜 일이 생기면 북한 때문이다. 아니면 DJ나 노무현 탓이든지. 조중동은 북한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나라처럼 돈을 뜯는 십일조는 전 세계적으로 없다. “모든 버는 돈의 십일조, 월급의 십일조를 내라. 그래야 천국 간다.” 이건 성서에 있는 게 아니라 한국 목사들이 개발한 수익 모델이다. 돈을 내라고 이렇게 깔때기를 들이대는 목사도 전 세계에 없다. 조용기 목사는 우리나라 교회의 대형화·금권화·만능화의 출발점이다. 프랜차이즈 분점 교회를 만들어 비디오를 보면서 ‘아멘’ 하는 교회가 다른 나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114쪽

 

난 심지어 이미 죽은 사람을 헌금 더 내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영혼을 올려보내준다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아, 내 귀를 의심해야 했던 순간이었다. 이번 정권에서 농협 해킹도 천안함도 모두 북한 소행이라고 했다. 세상에, 북한은 못하는 게 없다. 안 해본 게 없다는 가카보다 더 대단하다. 정말 북한 없었으면 조중동은 뭘 가지고 기사를 쓸까. 엄마는 방학을 하자마자 어김 없이 또 기도원 다녀오라고 압박을 하신다. 그동안 오산리 기도원을 다녀오곤 했는데, 이제 도저히 못가겠다. 가면 내내 듣는 설교가 조용기 목사님 찬양이다. 한국 교회 어쩌다 이모양이 되었누....

 

지하철에서 조선일보를 보는 시민을 보면 안쓰럽다. 조선일보에는 지하철을 타는 서민을 위한 기사는 없다. 조선일보는 친일파·독재 세력·수구·재벌의 기득권만을 대변하려는 것 같다. 어떤 사안이라도 그들을 위한 깔때기 기사가 나온다. -151쪽

 

저소득층일수록, 저학력일수록 보수쪽에 표를 준다고 했던 선거 결과가 떠오른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에 병아리 눈물만큼 위로가 되었을 뿐. 역시 국어 교육이 절실하다. 우리 글의 독해부터 일단...ㅜ.ㅜ

 

이들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게 돈 뺏기는 거다. 그래서 난 5백 원이라도 뺏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당하게 쌓은 부에 대해서는 뭐든지 해서 추징해야 된다. 이명박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욕먹는 것, 칼을 씌워 광화문 앞에서 석고대죄시키는 것보다 5만 원을 뺏으면 더 슬퍼할 거다. 명예라는 건 애초에 없어서 부끄러운 것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부당하게 얻은 돈을 다 뺏어야 한다. -203쪽

 

뻔뻔하기로 치면 대한민국 최고라 할 수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자신을 향해 비난을 던지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까.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추징금을 회수할라치면 몸서리치게 놀랄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할 것이다. 일년도 안 남았던가. 추징금 징수 만료일이. 무슨 법이 이따우지. 하아, 한숨 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겨놓은 재산이 10조 원가량 된다는 부분은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 중 취득하거나 강탈하여 정수장학회, 영남대, 육영재단 등을 남겼다. 박근혜 의원은 세 재단의 이사장을 지냈다. 전국에서 캠퍼스가 가장 큰 대구의 영남대학교도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재산이다. ‘교주’ 박 대통령이 출연한 돈은 ‘0원’이다. 박근혜 전 이사장이 출연한 돈도 ‘0원’이었다. -260쪽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매섭게 몰아붙인 것은 노엽고, 박근혜가 오늘날 300억에 해당하는 6억 원의 돈을 받은 것은 괜찮으신 어르신들, 대체 그 셈법은 왜 그런가요?

 

 

“과거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를 용인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알베르 카뮈의 말에서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의의를 찾았다. ≪친일인명사전≫이 세상에 나오는 데는 광복 후 64년 세월이 필요했다. 8년 동안 학자 150여 명이 편찬에 참여했다. 먼저 문헌자료 3천여 종에서 인물정보 250만 건을 취합했다. 그리고 20여 개 전문분과 심의와 편찬위원회의 50여 차례에 걸친 면밀한 검토를 거쳐 친일 인사 4389명을 수록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편찬위원들에게 “우리 할아버지를 명단에 올린다는 생각으로 선정과 서술에 신중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감수에 참여한 한 교수는 “고증에 고증을 거듭했다. 친일파가 사전에 빠질 수는 있지만 친일 행적이 없는 사람이 올라가거나 내용이 틀린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265쪽

 

친일파가 다시 살아돌아올 것 같아 두렵다. 이미 시작된 것 같기도 해서 떨린다. 어떻게 지켜온 나라인데 이렇게 거꾸로 가는가. 그래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두환보다도, 박정희보다도 더 밉고 더 싫은 것은 이승만이다. 반민특위의 좌절은 곧 대한민국의 좌절이다.

 

호남의 정서는 지역적·패권적 지역주의가 아니라 저항에 가까웠다. 특정 지역에서 20년 넘게 한 사람에게 90% 넘는 몰표를 던졌다는 것은 지역정치만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다. 한화갑 전 대표는 “표가 적은 지역은 지역주의를 조장해서 대결하면 무조건 불리하다. 무슨 이득이 있다고 DJ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가”라고 말했다.

DJ에 대한 가장 흔한 비방 중의 하나는 그가 대통령병 환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자리를 지키기 위해 18년간 독재한 박정희 전대통령과 12년간 독재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서 이러한 비난은 없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91쪽

 

빨갱이 취급 받으며 살아온 그 서러운 시간을 등에 업고 묵묵히 표를 던져준 호남인들에게 무척이나 미안한 한주였다. 여행을 가더라도 전라도로, 농산물도 전라도 것을 사겠다는 어느 네티즌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문득, 전주 사는 친구가 놀러오라고 아우성이던 게 떠올랐다. 전주, 다녀올까?

 

독립유공자 유족 6천여 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가 넘고, 봉급 생활자는 10% 남짓이다. 중졸 이하 학력이 55%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광복을 맞은 조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이 죄가 되고, 자자손손 불행으로 이어질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친일파들은 권력을 유지하면서 자기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독립투사와 그 가족들을 ‘빨갱이’로 낙인 찍고 못살게 굴었다. -299쪽

 

이런 나라에서, 다시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나라를 위해서 헌신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결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 바로잡아야 한다. 제발, 이제라도....

 

주진우의 주기자를 읽은 지도 제법 지났는데, 해 넘기기 전에 리뷰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기억을 더듬어 본다. 무척 뜨겁게 읽었더랬다. 나꼼수를 들을 때도 그랬다. 대선이 끝나고 많은 이들이 이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세상에, 대가도 없이 바른 말 하며 싸워온 언론인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부끄럽고, 슬프다. 동료 시사인 기자들은 묵묵히 출근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속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주기자는 다시 새로운 기사를 준비하며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폭군 임금을 향해서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선비가 조선의 역사 내내 있어 왔다. 그런 역할들을 주진우나 이상호 같은 이런 기자들이 지금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선이 끝난 다음 날, 멘붕이 시작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뉴스타파에 정기 후원 회원 가입을 한 것이다. 언론이 바로 살지 않으면 이 나라에 미래란 없을 것이므로.

 

정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는 일은 무척 피곤하다. 하지만 정치가 일상이고 내 삶을 좌지우지하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이렇게 앞장 서서 싸우고 파헤치는 사람도 있는데, 그 기록을 읽는 것조차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고맙습니다. 바른 언론인들, 바른 말 하시는 모든 분들께.

 

덧)

33쪽 내가 우리나라에게 제일 똑똑한데 >>> 우리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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