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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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진국들보다 훨씬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눈부신 성과를 이뤘지만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들이 인권이나 민주화를 무시했던 산업화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성과를 부정했던 민주화 논리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이 구체제적 사고죠. 또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했던 문제들, 예를 들면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외면하는 태도도 구체제이고, 성장과 효율성만을 앞세워서 경제력 집중과 양극화를 방치하는 것도 구체제이며, 청년들이 기회를 잃고 국민들이 불안에 떠는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도 구체제. 다시 말해 국민의 생각을 받들지 못하는 정당들,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정치시스템, 계층 이동이 차단된 사회구조,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경제 시스템,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지 않는 기득권 과보호 구조 등이 구체제. 새로운 체제는 이런 구체제를 극복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적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통과 합의’가 필요하고요.
-37쪽

저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설득의 과정, 공감의 과정이 핵심이죠. 그래서 민주주의가 전제군주제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결국은 장기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하지 않습니까. 소셜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도 마침 때를 맞춰 확산되면서 이런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강화시키고 있고요.
-41쪽

자살률이라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는 수치라고 생각하는데요, 불행히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전체 중 1위입니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낮은 나라에 비해 10배나 높아요. 거의 매일 40여 명 정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1년이면 1만 5,500여 명이 비극적 선택을 합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가를 보여주는 수치죠. 출산율이란 것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낳은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가 하는 기대에 따라 출산율이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거의 세계 최하위 수준입니다.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낮은 나라.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얘기가 아닐까요?

-83쪽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복지국가 건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경제는 기존의 제조업만으로는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제조업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일자리 창출이 쉽지 않게 됐거든요. 새로운 산업동력의 창출 차원에서 지식정보산업의 발전과 창업활성화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 한 번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주거와 보육, 의료 등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해서 기초적인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면 실패한 사람도 다시 도전할 의욕을 가질 수 있죠. 복지는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을 돌봐주는 사후처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토대라고 할 수 있어요. 아이디어와 지식이 부를 창출하는 구조에서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새롭고 과감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지식경제 사회에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란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잠재성장률이 추락할 위기에 놓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복지 강화는 필수적-85쪽

실리콘밸리의 본질은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입니다. 100개의 기업이나 기업주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고, 열심히 성실하게 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 사람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게 실리콘밸리의 미덕입니다. ‘개인 실패의 사회적인 자산화’ 지식정보산업의 발전이나 창업의 활성화는 이런 토대가 없으면 잘 생겨나지 않습니다.

-87쪽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복지국가는 정치·사회 세력 간에 대립이 아니라 소통과 합의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실 보수, 진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저는 이 두 진영이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상호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라는 것은 그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세력이고, 진보는 새롭게 도전하고 발전하게 만드는 세력이죠. 양쪽이 소통하고 타협해야 한 사회가 안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도전과 발전의 기회도 가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이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협력을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누가 봐도 절실한 복지 확충, 경제 민주화 같은 과제에 대해서도 ‘좌파’의 딱지를 붙이며 색깔 공세를 펴는 비상식적 세력이 건전한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방해하거든요. 이제는 우리가 상식을 회복하고 합리적인 소통과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90쪽

전쟁과 정치는 적과 싸운다는 점은 같답니다. 그런데 전쟁은 적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이고, 정치는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상대방의 궁극적인 목적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적을 믿으면서 싸우는 것, 기본적인 믿음은 가지면서 대결하는 것이 정치라는 얘깁니다. 이런 믿음 위에서 소통의 정치를 추구해야겠죠.

-91쪽

보편적 복지는 내가 낸 세금의 혜택을 실감하고 ‘함께 누리는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체제라고 하겠습니다. 반면 선별적 복지만 고수한다면 부유층과 중산층의 ‘반(反)복지 동맹’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요. 세금 내는 사람 따로, 혜택 보는 사람 따로이니, 사회적으로 증세와 복지 확대에 대한 저항이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선별적 복지는 또 ‘낙인 효과’를 만들어 사회통합에 금이 가게 하죠. 국민을 ‘시혜자’와 ‘수혜자’로 구분하니까요. 예를 들어 학교급식의 경우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하면 ‘얻어먹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경제적 효율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권과 정서라는 측면에서도 배려가 필요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선별적 복지를 하다 보면 수혜 자격, 즉 가난을 입증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행정 비용이 든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고요.

-95쪽

유시민 전 의원이 TV 토론에 나와서 그러더군요. "그렇게 세금을 많이 냈는데 먹여도 되지 않나."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부유층 자녀는 부모, 조부모가 이미 많이 낸 세금의 혜택을 당당히 누리는 것이지 결코 ‘공짜’로 먹는 게 아니죠. 가난한 집 아이들은 사회적인 부조를 받는 것이고요.

-98쪽

남유럽국가들의 복지 수준은 유럽에선 하위권에 불과합니다. 복지 지출이 많아 재정위기를 맞았다면 훨씬 수준이 높은 북유럽이 먼저 망했어야 했겠죠. 그런데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복지의 안전망이 오히려 위기에서 경제를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남유럽의 문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유증, 즉 부동산시장 붕괴와 구제금융, 재정지출 확대가 원인이었고 유로 통화 통합으로 환율의 경기대응 기능을 잃은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재정 수요가 늘어나는데 무리한 감세 정책을 써서 조세 수입이 줄고 재정적자가 늘어난 것, 탈세가 만연한 것, 복지 설계가 사회 서비스 확충 대신 현금소득 지급 위주로 잘못된 것 등에 원인이 있다고 분석되고 있죠. 복지를 늘릴 때 재정 건전성을 함께 생각하는 자세는 꼭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수준이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형편에서 좀 늘리자는 얘기를 두고 ‘재정위기’를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요.

-99쪽

현재 국내 국공립 보육시설의 수용 능력은 아동수를 기준으로 전체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럽 선진국은 70~80%에 이른다고 합니다.

-100쪽

꼭 아파트를 새로 지으려고만 하지 말고 민간의 다세대주택을 사들여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정책 같은 것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많은 재원을 갖고 있는데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가지고 미래가 불안정한 오피스빌딩을 매입하기보다 국가 보증하에서 안정적이고 공공성이 높은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106쪽

스웨덴에 대해서는 "부자라서 복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를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평가가 있더군요. 독일 등 대다수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정도일 때 복지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했다고 합니다. 스웨덴은 그보다 훨씬 가난할 때 복지제도를 갖추기 시작했고요. 노령연금이 도입된 게 1919년, 기초수급제가 도입된 게 1930~40년대랍니다. 가난할 때부터 차근차근 복지안전망을 늘려왔기에 부자나라가 될 수 있었고, 지속 성장이 가능했다는 얘기죠. 이런 탄탄한 복지 안전망이 지금 스웨덴의 산ㅇ넙 경쟁력의 토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의 소득 수준에서 복지 제도를 확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지가 없는 것이지 불가능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정치가 지금처럼 편을 갈라 싸우면 복지 국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스웨덴도 사민당이 야당과 대통합, 협력해서 복지 국가를 만들 수 있었고, 독일도 우파정권이 사회대통합으로 야당을 끌어들이면서 복지체제를 완성했어요. 우리가 선진 복지국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념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과제가 시급합니다.

-107쪽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스스로를 위해서도 공생하는 파트너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세계적인 기업 혁신의 90%가 중소기업에서 나옵니다. 산업생태계를 통해 믿을 만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쑥쑥 성장해야 대기업들도 더욱 발전할 수 있어요.

-121쪽

저는 시장만능주의를 경계하는데요, 시장만능주의에 빠지면 탐욕을 통제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규제를 줄이는 것은 좋지만 감시는 강화해야 하고, 시장이 정글이 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125쪽

우리나라에서 창업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대표이사 연대보증제 때문에 실패한 기업인의 재기가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인데요, 실패의 경험임 사회적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금융제도도 개선해야 합니다.

-129쪽

미국이라는 나라는 자본주의의 모든 장단점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고 사실 많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지만 부패에 대해 엄격한 법과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의 건강성을 유지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본시장이나 기업 범죄, 탈세 등에 대해서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나 병합선고, 즉 모든 죄의 형량을 합산해서 처벌하는 방식으로 엄벌을 내리죠. 기업 간의 공정거래를 해치는 범죄행위도 강력하게 처벌하고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대통령까지도 하야시킬 수 있는 법으로 부패를 막고 있죠. 우리나라는 미국의 제도를 많이 들여왔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같아요.

-144쪽

우리 사회도 그동안 효율성을 앞세우면서 부패에 관대한 문화를 키웠죠.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궤도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한 우리나라의 부패인식지수는 세계 43위로, 경제규모 10위권의 국격과 비교하면 매우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145쪽

선거에 의한 견제도 있지만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견제되는 장치도 필요합니다. 미국은 종신제가 적용되는 대법관 등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기관들이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을 견제하죠. 지금도 총리제의 입법 취지를 잘 살리면 어느 정도의 분권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49쪽

북한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 동시에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과 평화적인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면 내수시장이 확장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우리 경제는 현재 성장이 정체된 상황인데 북한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북한 내 지하자원, 관광자원, 인적자원을 활용할 수 있고요. 동북아 경제권 형성을 위한 길이 열릴 수 있고 육로를 통해 부산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연결될 수도 있죠. 지금은 북한에 막혀서 남한이 사실상 섬나라와 같은데, 대륙이 연결돼 원자재와 수출품 등의 수송이 쉬워지는 거죠. 그러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격차를 줄여나가면 서독과 동독이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 비용을 줄인 것처럼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통일 비용도 줄일 수 있을 거예요.

-152쪽

외부에서 북한을 경제적으로 봉쇄해도 중국의 지원이 있기 때문에 고립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북한을 고립시키려다 북한 광물자원의 선점 등 북한경제의 중국 예속만 급진전될 수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남북경제협력이 위축되자 북한은 중국과 경제협력을 확대했고 북한의 경제지표는 그리 악화되지 않았습니다.

-153쪽

남북이 대화의 공간을 마련하고 평화체제를 정착시켜야 북한이 핵에 의존할 명분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하려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말했죠. "배고픈 아이는 정치를 모른다." 누구든 기본적으로 생존이 가능해야 변화를 희망할 수 있을 겁니다.
-157쪽

기업들이 ‘고용 없는 성장은 자본에도 독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비용인 동시에 기업이 생산한 상품의 수요자이기 때문이죠. 고용이 따르지 않는 성장은 궁극적으로 상품에 대한 수요를 위축시켜서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됩니다.

-167쪽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제가 전에 강연에서 "대기업은 내버려둬도 잘하고 있으니 더 이상 성공한 맏자식 걱정에 계속 매달리지 말고 그동안 희생한 둘째를 돌봐야 할 때"라고 말했는데 바로 이런 뜻이었죠.

-169쪽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에게 최저임금을 근로자 평균임금의 60%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우리나라 노동계는 50%를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30%를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평균임금의 50%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한계기업들이 도산하고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 연구결과는 다릅니다. 적절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구매력을 높여서 일자리를 늘린다는 연구결과도 있거든요. 물론 영세자영업자 등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타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존엄성 측면에서 이 문제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173쪽

대출을 해준 은행 등 금융회사가 만기를 연장해주고 변동금리를 장기고정금리로 전환해주는 등 부채 구조조정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득 범위 내에서 갚아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것이죠.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주택 대출도 선진국처럼 20~30년 만기의 장기대출 형태로 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87쪽

소위 영재라고 불리면서 뛰어난 학습 능력을 보이는 학생들에게 ‘속도’, ‘문제해결’, ‘결과’만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학생들이 학습의 과정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이미 해답이 나온 것을 찾는 데만 익숙해지면 답이 나오지 않는 불확실한 환경에 대한 대처가 서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실 세상일은 참고서나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딱 부러지게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게 오히려 드물죠.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는 남들이 먼저 만들어놓은 것을 좀 더 세련되게 모방해서 1등을 하는 것에는 탁월하지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취약하죠.

-193쪽

국사뿐 아니라 세계사도 필수과목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동물의 경우 주어진 그 순간만 생각하고 반응하지만, 사람은 그전에 일어났던 일과의 맥락 속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점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세계 시민으로서 국사와 세계사를 모르고 지금 당장 필요한 지식만 익히는 접근방법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197쪽

우리가 내는 수신료 중에서 EBS는 2.8%인 162억 원, 한국전력이 6.8%인 391억 원을 가져가더군요. 국민이 내는 수신료를 정당한 사용목적에 포함된 EBS보다 수수료 징수를 대행하는 한전이 더 많이 가져가는 상황, 이건 비합리적이죠.

-200쪽

눈앞의 이익이라는 논리로만 따지다 보니 우리나라가 사람 목숨 값이 싼 나라가 됐는데요, 지금은 국민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거나 사람들에게 위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국가가 경제논리만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204쪽

대전에 여러 정부기관이 있는데, 이 기관장들 상당수가 서울에 자주 오가면서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낸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윗사람과 일을 하려면 얼굴을 직접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요. 국회에서도 질의응답을 위해 관련 직원들이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정책 결정권자의 자리에 있으면 지역 균형발전이 표류할 수밖에 없죠.

-223쪽

공공재로서 언론의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 편집권의 독립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뀐다고 언론의 논조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비해 언론자유도가 아주 낮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죠. 올해에도 세계 87위, 중하위권으로 평가받거나, 부분적 언론자유국 정도로 분류되고 있으니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 비하면 아주 부끄러운 일이지요.

-227쪽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사람 모이는 것은 대개 잔치이고 좋은 일이라 여겨왔습니다. 오늘날 정부가 사람 모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정통성이나 정당성에 대해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들으려는 정부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29쪽

옆에 있는 친구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세요. 스스로 실력을 키우고 더 가치 있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세요. 동시에 이 정도의 경제적, 문화적 여건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준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굶주리는 아프리카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장차 일부라도 돌려줘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 중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260쪽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지적하면서 ‘나만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 경고의 이면에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주변의 문제에는 눈과 귀를 닫으라는 이기적 주문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도움은 필수적이죠. 사회와 개인, 나와 타인의 관계는 어느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 공생의 관계라는 것을 알고, 사회와 더불어 행복할 길을 찾겠다는 의지를 단단히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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