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바람 그림책 6
이세 히데코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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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아하는 이세 히데코의 작품이다.

책장을 열고 작가와 역자 이름이 소개된 그 페이지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첼로 교실에 새 학생이 왔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보다 훨씬 어려운 곡을 술술 연주해냈다. 힘이 넘쳤지만, 왠지 화를 내는 것 같은 그런 연주를...

연습이 끝나고 늘 가는 공원에 들렀다. 거기서 그 아이와 만났다.

그 아이는 내 첼로 소리가 꼭 강아지 소리 같다고 했다.

잃어버린 강아지 그레이를 떠올리게 해서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아빠는 강아지 대신 첼로를 사주셨다. 그렇게 해서 연주하게 된 악기다.

그 아이는 같이 연주하자고 했다. 두 사람은 언덕 위에 편하게 앉아 첼로를 켜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첼로로 여러 소리를 연주해 냈다. 활자만으로는 소리를 들을 수 없건만, 저렇게 음표를 그려주니 정말로 작은 새가 지저귀는 것 같고, 강물이 또르르르 구르는 것만 같다.

피아노의 숲에서 내가 종종 감탄하게 되는 배경 묘사와 비슷하다.

 

 

그 아이는 고베에서 왔다고 했다.

연주를 마치고 큰길로 나왔을 때 진풍경을 보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첼로를 메고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다.

두 아이도 따라가 보았다. 건물 안에는 첼로는 꺼내는 사람, 무언가 신청하고 나누어 주는 사람, 그리고 온갖 연령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 했다. 놀랍게도 그들 모두가 첼로를 연주하는 것일까?

알고 보니 이 자리는 '대지진 복구 지원 음악회' 참가 신청을 받는 곳이었다.

지진으로 무너진 마을이나 피해를 당한 마을 사람들을 응원하는 음악회라고 한다.

첼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고.

고베에서 왔다는 그 아이는 당장 참석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신청서를 접수하자마자 건네받은 악보를 앞에 놓고 바로 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 진지한 얼굴에 이끌러 '나' 역시 케이스에서 첼로를 꺼냈다.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의 소리를 듣고,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느끼면서 연주하는 거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연습을 마치고 다시 들른 공원에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순간에 마을도, 집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사라져버렸던 참혹했던 지진의 참사를...

지금 할아버지가 연주하는 첼로는 그때 세상을 떠난 친구의 유품이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폐허더미 흑백 사진 앞에 첼로를 들고 서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빛조차 스며들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그림 속에 자리한다.

 

 

그 아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동물까지 돌볼 수가 없어서 하늘로 보내준 새들의 이야기를...

그래도 그 새들은 날개라도 있어 더 높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사람 손을 필요로 하는 다른 동물이었더라면 더 안타깝지 않았을까...

 

복구 지원 음악회에 나가기로 한 뒤 '나'의 첼로 소리가 달라졌다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지극한 마음이 소리의 깊이와 감동의 무게를 더해준 게 아닐까.

첼로 교실에는 참가자가 더 늘어났다.

할아버지와 그 아이와 '나'는 공원에서도 연습을 했다. 숲이 청중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연주였으리라.

무엇보다도 위로가 가득한 따뜻한 연주.

 

가을이 오고도 연습은 계속되었다. 첼로를 켤 때면 그레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떠나보낸 새 플로르를 떠올리며 연주를 할까.

 

 

드디어 대지진 복구 지원 음악회가 열리는 날, 참가자가 천 명 넘게 불어났다.

일본 여기저기에서 백 명, 이백 명씩 모여서 연습했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첼리스트가 많이 왔다.

색색의 케이스를 멘 사람들 행렬이 공연장으로 향한다.

모두 자신의 그림자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소중한 또 하나의 자신을....

 

객석에 있는 수천수만 개의 눈과 귀가 연주자들에게 쏟아졌다.

대지진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구들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이윽고 울려 퍼지는 천 개의 첼로 소리.

높고도 낮게, 빠르고도 느리께, 부드럽고도 힘차게, 그렇게 앞으로 나왔다가 뒤에서 받쳐주는 소리, 소리들...

천 명이 첼로를 켠다. 첼로의 활은 바람이 되어 스쳐간다.

천 개의 첼로는 천 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그러면서도 하나의 곡을 이루었다. 하나의 마음이 된 것이다.

 

 

대지진 이후, 고베에서는 25만 그루의 목련을 심었다.

목련은 봄이 되면 하얀 꽃을 피운다. 마을마다 나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 천개의 소망이 하나가 되어 하늘로 향한다.

간절한 소망과 위로를 담아서....

 

첼로는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연주하는 악기라고 했다. 낮지만 힘차게, 부드럽고도 강렬하게 울리는 첼로 소리.

 

이 작품을 쓴 이세 히데코는 고베 대지진이 있고 두달 뒤에 스케치북을 들고 거리를 걸었다.

그렇지만 백지 스케치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잊어서는 안 될 풍경은, 그릴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려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그림으로써 안심하게 될까 봐, 눈과 손이 기억한 후 잊어버릴까 봐...

 

그로부터 3년 후 고베에서 편지가 도착했다.

고베 대지진 복구 지원 자선 행사인 '천 명의 첼로 음악회'에 참가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열세 살 때 첼로를 처음 만났던 이세 히데코는 그렇게 1998년 11월, 천 명 중 한 사람이 되어서 잊어서는 안 될 풍경 앞에 섰다.

그렇게 마음을 담았던 첼로 연주는, 분명 연주자들까지 치유해 주는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이세 히데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리지 못했던, 그리지 않았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 그림책이 완성되기까지 그가 그린 첼리스트도 천 명이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극진한 마음을 담아 이 작품을 만들어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모양을 한 악기, 인간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악기 첼로.

첼로를 켜는 사람의 모습은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영화 굿바이에서 주인공은 오케스트라가 해산된 이후에 고향에서 시신 닦는 일을 하게 된다. 구토도 일으키고 여러모로 좌절도 했지만 마침내 장례사로 거듭난다. 영화 마지막에서 그는 망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무사히 가길 바라면서 언덕 위에서 첼로를 연주한다. 그렇게 누군가를 보내고 남은 사람을 또 위무했다. 여기 이 책의 사람들처럼.

 

지금 대한민국에도 '힐링'이 필요한 사람이 참 많다. 이 추운 날, 마음이 가난한 무수한 사람들에게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첼로가 다가갔으면 한다. 기꺼이 그 연주에 동참해줄 우리도 기대해 본다. 그렇게 위로하고, 상처는 치유하며 살아보자. 어떻게든,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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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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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7 0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