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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 라덴이 아니에요! ㅣ 가로세로그림책 2
베르나르 샹바즈 지음, 바루 그림, 양진희 옮김 / 초록개구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이집트 출신 낫시르는 미국에서 살고 있다. 할머니의 고향 이집트보다 낫시르는 미국에 더 익숙한 미국 소년이다. 갈색 피부를 가진.
존은 낫시르의 단짝 친구다. 존의 부모님이 휴가를 보내는 펜실베이니아의 한 호숫가에서 낫시르는 2001년의 여름을 지냈다.
존은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야 했다. 존의 부모님은 침례교도이고 낫시르의 부모님은 이슬람교를 믿지만, 존과 낫시르는 모두 종교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둘은 그보다 야구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개구쟁이 단짝 친구일 뿐이다.
9월 11일은 새 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견학을 가는 날이었다. 게다가 이날은 글렌 축일이기도 했다.
학생들이 탄 버스는 동물원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것은 악어들의 첫 식사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수첩에 견학한 내용을 적는 것은 쉬웠지만, 보이는 동물을 그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낫시르는 낙타 앞에서 피라미드 이야기를 꺼냈다.
스핑크스가 있는 피라미드에 가려면 낙타를 타야 하는데, 그러면 보트를 탈 때처럼 몸이 앞뒤로 흔들린다고 설명해 주었다.
스핑크스 앞에서는 구경만 했고, 나중에 아스완에서 낙타를 탔을 때 정말 어찌나 흔들리던지 아주아주 무서웠다는 기억을 보태 본다.
아이들이 열심히 견학을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선생님은 숨이 멎는 듯한 소리를 내뱉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셨다. 선생님은 사고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승객을 태운 비행기가 세계 무역 센터 쌍둥이 빌딩을 들이받았고, 빌딩에 화재가 났다.
낫시르의 친구 바리의 삼촌이 쌍둥이 빌딩에서 일하고 있었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무시무시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상벨이 울리는 가운데 흩날리는 재와 함께 사방에는 탄내가 진동했다.
방어벽을 치는 경찰들과 놀라서 사방으로 달려가는 사람들로 인해 광장 근처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낫시르의 가족들은 모두 무사했다. 연락이 두절되었던 누나도 체육관에 대피해 있었다.
낫시르는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꿈을 꾸다가 깨었다.
화재 때문에 뛰어내렸던 사람들이 바닥에 부딪쳐 으스러지기 직전에 눈을 떴지만 이 때의 충격은 낫시르에게서 쉽게 사라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 일을 직접 겪은 사람이건, 간접적으로 당한 사람이건 모두에게 말이다.
바리의 삼촌은 쌍둥이 빌딩에서 돌아가셨다.
존은 침울해 보였고 무척 짜증이 나 있었다.
존은 영웅 놀이를 할 때도 악당 역할은 더 이상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9.11 테러의 주범과 동일시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존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소식이 궁금해서 전화를 걸면 존의 엄마는 쌀쌀하게 말씀하셨다.
편지도 보내봤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탄저균 감염 우편물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제대로 전달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누나는 빨간 폴로 티셔츠와 파란 치마를 입고 학교에 갔다. 성조기를 연상시키는 옷을 입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낫시르는 피라미드가 그려진 초록 티셔츠를 좋아하지만, 부모님은 입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다.
미국 연방 수사국이 새로운 법에 따라 알카에다의 테러범들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게 되었다고. 그러니 이슬람을 상징하는 초록색은 조심하는 게 좋다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그 무렵 존은 학교를 옮기게 된다. 침례교단에서 운영하는 사립 학교로.
그 학교에는 낫시르와 같은 이슬람교도 학생은 없을 것이고, 그것이 안전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또 시간이 흘러 10월 31일 할로윈 데이. 낫시르는 드디어 존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존은 낫시르와 친구들을 피했다.
부모님 때문에 낫시르와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페드로도 되고 첸도 괜찮지만 낫시르는 안 된다고 했다. 낫시르의 아빠가 이슬람교도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낫시르는 얼어붙고 말았다. 내 이름은 낫시르라고, 빈 라덴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지만 이후로도 존은 낫시르를 피했다.
그렇게, 가장 절친한 친구를 잃어버렸다. 끔찍한 테러와, 그로 인한 보복 전쟁과 무분별한 몰아세우기로.
다시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2011년 5월 1일. 스무살 생일 파티에 참석했던 날 저녁, 낫시르는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한결 마음이 놓이면서 기뻐했지만, 그가 죽었다고 해서 이미 죽은 바리 삼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때 죽었던 무수한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다. 낫시르와 친구들은 다시 광장으로 나갔다. 혹시라도 그곳에서 존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빈 라덴이 죽었으니, 이제 존도 낫시르를 다시 친구로 받아줄 수 있을까? 부모님의 강요 때문이었지만 필시 후회했을 존의 마음에 이제는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괜히 작품의 뒷이야기를 궁금해 해본다.
어려운 주제인데도 제법 절제가 되어 있고,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장점이 있는 책이다. 걸프 전쟁 이후 국제 사회에서 입김이 세진 미국이 여러 분쟁 지역에서 갈등을 부추겼던 일들, 알 카에다의 만행과 이어지는 9.11 테러. 그리고 테러 이후 폭주해 버린 미국의 오만한 전쟁들. 그것들이 그림 속 사진으로 책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개 되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전쟁을 반대하던 목소리도 함께 소개했다. 이슬람교도들이 그들의 적이 아님을, 전쟁이 답이 아님을 외치는 구호들이 가슴에 박힌다. 시간과 장소를 바꾸면 저런 메시지는 어디에서도 울려퍼질 수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후세인이 죽었고, 빈 라덴도 죽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후유증과 9.11 테러의 상처로 힘들어 하고 있다. 그 때를 이용해서 부시는 연임에 성공했고, 전쟁을 일으켰으며 누군가는 악의 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부추기는 입김 속에서 누군가는 전쟁 무기를 팔아서 돈을 벌었다. 독재자의 손자와 독재자의 딸이 지도자가 되어버린 한반도와 극우 성향의 일본 새총리, 이렇게 급속도로 얼어붙는 동아시아의 판세 속에서 이 책이 어린이 책의 무게로 읽히지가 않는다.
'내 이름은 칸'이란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낫시르와 같은 고민이 나올 것이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란 책도 함께 떠오른다.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우리 나라에는 언제 개봉하려는지?
길지 않은 내용 안에 역사와 전쟁과 갈등, 인권과 상처의 치유에 대해서 복합적으로 다뤘다. 어려운 주제인데 솜씨 좋게 구성했다. 독특한 설정의 그림들도 인상적이다. 평화를 갈망하며 더불어 읽기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