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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상페
장 자크 상뻬 지음, 허지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3월
구판절판
참 마음에 드는 삽화가 상뻬의 작품집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주간지 '뉴요커'에서 상뻬에게 표지화를 요청했다.
그것도 미국적인 그림이 아니라 '상뻬다운' 그림으로 말이다.
상뻬에게도 엄청 영광스런 일이었다.
그렇게 이어져온 인연이 무려 30년 이상 이어져왔다.
이 책은 바로 그 표지화를 모은 작품집이다.
1925년 창간된 이래 뉴요커는 표지에 제목이 없이 그림을 싣는다는 원칙을 일관성 있게 고수해 왔다.
우리나라 잡지들은 표지에 기사의 제목들이 빼곡히 담겨 있는데, 오로지 삽화로만 승부하는 이 배짱이 참으로 근사하다.
상뻬가 처음 뉴요커의 표지를 그렸던 1978년에 이 잡지의 가격은 1달러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잡지의 가격은 대략 25센트씩 올라갔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그림은 2009년도 뉴요커로 가격이 4.99달러다.
30년에 5배면 그래도 비교적 양호한 물가 상승률이라고 해야 할 듯.
고양이가 등장한 표지는 원래 소녀도 있었는데 사장의 만류로 몇 번이나 수정을 거듭한 끝에 소녀 없이 가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에는 상뻬와의 긴 인터뷰도 실려 있는데, 그 속에서 상뻬의 어린 시절과 뉴요커와의 만남, 그리고 그림에 대한 철학과 음악에 대한 열정까지도 함께 읽을 수 있다.
고양이가 또 등장한다. 뉴욕이 아니라도 고양이라면 저렇게 우수에 잠긴 뒷모습이 무척 어울릴 거라고 상상한다.
제목 외에는 글자가 없지만 그림 속에서 음률이 보이고 이야기도 숨쉬고 있다.
상뻬의 힘이다.
살짝 삐져나온 카드가 하트라는 게 마음에 든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협주자에게, 그리고 협주자는 다시 연주자들에게 박수와 공을 돌린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사진을 제대로 못 찍었는데, 빛이 많이 들어간, 그래서 아주 맑고 투명하게 보이는 상뻬의 수채화 그림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는 빛의 화가다.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일을 하는 사람들,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예술적 감각'이 느껴진다.
상뻬가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좋다.
이번 사진도 좀 안 나와서 아쉽긴 한데 마음에 드는 그림들이 가득하다.
이런 게 상뻬 스타일이라고 전에 리뷰도 짧게 썼던 그림이 바로 뉴요커의 표지였던 것이다.
이렇게 다시 만나 반갑다.
뉴욕의 밤과 낮, 그리고 조명 아래에서 꿈과 땀과 열정이 보인다.
무대 뒤 대기 중인 이들에게는 무대 위에 선 사람의 그림자가 이렇게 크게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 자신 역시 그 큰 그림자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떨지마, 쫄지마, 파이팅!
진열장을 바라보는 남자와 소년의 모습에 눈길이 간다.
관심일 수도 있고, 호기심일 수도 있고, 혹은 욕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시선이 좋다.
간절함을 담는다면 더더욱!
피아노를 향해 걸어가는 연주자의 발걸음.
그의 심장 고동 소리는 본인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긴장시키는 구도다.
싸이클 선수들의 대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아름다운 선수의 모습이 뭉클하다.
저 해변을 내가 거니는 것 같고,
저 물 속에 내 발을 담근 것만 같다.
엇갈린 손의 피아니스트의 표정에게서 자신감과 더불어 자부심이 느껴진다.
음악에 충분히 심취해 있겠지만, 바로 그런 자신을 만족스러워하지 않을까.
심벌즈 연주자가 연주 도중에 객석의 아이에게 딸랑이를 흔들어 보인다.
연주 도구를 이용한 센스가 재미 있다.
붉은 튤립밭 가운데 파란 꽃을 들고 방문한 남자가 눈길을 끈다. 이 남자 감각 있네!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고 숲길을 거니는 남자의 표정이 충만하다.
시간을 이탈한,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는 여유로움이 좋다.
미로 속 만남은 또 어떤가. 저 속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무척 반가울 것 같다.
나같은 길치라면 특히나 더!
지각한 연주자와 지각한 관객의 대구가 재밌다. 익살스런 상뻬 할아버지!
뉴욕에서 머물던 아파트에 불이 났을 때 입주자들이 모두 원고나 그림 등 자신의 작품을 들고 뛰쳐나왔다고 한다. 상뻬 할아버지도 마찬가지.
역시 예술가들에게 작품 이상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32년 생인 상뻬 할아버지는 올해 여든이시다. 우리 나이론 여든 하나!
그렇지만 아직 정정하실 거라고 기대한다.
오래오래 작품 활동 계속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