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패단의 방문
제니퍼 이건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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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책이다. 퓰리처상 수상이란 이력을 제쳐두고도 이 책은 볼거리가 많다. 13개의 챕터들은 각각 하나씩의 단편으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의 이야기적 완결성이 있다. 게다가 마치 몸의 여러 장기와 세포들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번 이야기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사람이 2번이나 5번에서 얼마든지 주연으로 등장 가능하다. 게다가 이야기들은 동시대이기도 하고 과거와 미래를 마구 오간다. 약 60여 년을 최대치로 해서 향수 어린 옛 시절과 그 향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21세기의 이야기도 동시에 진행된다. 어찌 보면 무척 중구난방 식으로 진행이 되지만 그래도 각각의 이야기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향해 귀결된다. 바로 '시간은 깡패야!'라는 메시지로.

 

시간이란 게 그렇다.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고 누구도 멈출 수가 없다. 누군가에겐 한순간에 모든 것을 부수어버릴 수 있는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자기치유와 구원이 될 수도 있다. 오해의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이해의 끝이 될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살아가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이 이곳에 있다. 세상에 대한 끊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십대 소년 소녀들이 있고, 주변 사람을 모두 망가뜨리고 착취하는 거물 프로듀서도 등장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져 위험천만한 일을 시도한 대가로 인생이 망가진 홍보 담당자, 무대 위의 죽음을 기획하는 왕년의 록스타, 레코드 레이블 대표가 있고, 그의 유능하지만 도벽이라는 고질병을 갖고 있는 비서가 있다. 이들의 시간은 방사선으로 뻗어나가서 서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맞닿아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챕터에서만 본다면 그들의 다음 이야기를 모르기 때문에 시간이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 그게 또 이 책의 마력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분명히 다음장 어디에선가 이들이 마주칠 것 같고, 어디선가 이야기의 또 다른 매듭이 풀릴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개 실망을 안겨 주지 않았다.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파워포인트의 향연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처럼 이미 종이 책의 전통을 깨버린 책들은 여럿 등장했기에 그것이 '파워포인트'의 화면이라는 것만으로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파워포인트 화면은 그 안에 담긴 글자의 메시지 말고도 도형의 기호성으로 또 이야기를 전개하는 힘이 있었다. 2차원 종이이지만 독자에게는 그것이 애니메이션 화면처럼 움직이는 착각을 준다. 그리고 그 부분이 음악에 관한 이야기였기에 소리까지 들린다는 착각마저 갖게 한다. 때로 검은 화면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장면이 암시하는... 혹은 함축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 정도면 이 파격적인 시도가 거둔 효과는 참으로 탁월하다고 하겠다.

 

이처럼 화려한 성찬을 갖춘 이 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별 다섯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감동의 부재라 하겠다. 각각으로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지만, 또 '시간'이라는 통일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들어 흔드는 힘은 다소 부족하다. 또 이 작품의 여러 매력들을 알아차리기까지 몰입의 속도는 제법 느린 편이었다. 사실 이 작품은 두번째 읽을 때에야 감탄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이미 누구의 이야기인지, 그들이 어떻게 마주치고 헤어지는지를 알고 나서 다시 본문을 읽을 때 행간의 의미와, 강조된 글자의 힘과, 문장의 맛깔스러움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두 번씩이나 다시 읽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게 나와의 맞지 않는 궁합일 것이다. 무척 맛있지만, 내 입맛에 베스트는 아닌 그런 작품 말이다.

 

가장 몰입이 안 되어서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가장 인상깊고 아련하게 만든 이야기는 급류에 휩쓸려 죽은 롭의 이야기 편이었다. 이 장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처럼 주인공 '나'를 '너'로 표기하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사샤는 비좁은 침대에서 잠들어 있다. 타오르는 붉은색 머리가 시트에 대비되어 어두워 보인다. 너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가 잘 때 나는 친숙한 냄새를 맡으며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미안해난 널 믿어언제나 곁에서 널 지켜줄게절대 널 떠나지 않을게, 네가 살아 있는 동안 네 심장을 감싸고 있을게가 뒤섞인 말을. 마침내 내 어깨와 가슴을 내리누르던 물이 나를 으스러뜨려 깨우고, 나는 사샤가 내 얼굴을 향해 절규하는 소리를 듣는다. 버텨! 버텨! 버텨내라고! -303쪽

 

강조된 글씨는 본문에서 적용된 그대로다. 급류에 떠밀려 정신이 혼미해지는 가운데 롭이 환영을 보는 것처럼 묘사된 구절이다. 절절하게 마음을 담은 뒤 문장은 너에서 '나'로 바뀐다. 그리고 사샤는 그런 나를 향해 절규한다. 버티라고!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알기에 독자는 이 부분에서 더 뭉클해지고 말았다.

 

말썽 많고 사고도 많이 일으켰던 사샤가 그러나 미래에 자폐아 아이를 두고, 그 아이가 '쉼표'에 집착하고 탐닉하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그 세계를 공감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조화롭게 보였다. 많이 방황해 보았기 때문에 쉽게 남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의 세계도 더 깊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책을 덮으며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깡패 같은 시간이 날 해코지 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저항해야지. 그 시간에 휘둘리지 않도록 갖은 수를 다 써내야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널리 넓게 시간을 내다보지도 주름잡아보지도 못하는 이 평범한 인간은, 오늘이 금요일 밤이고, 그래서 이미 12시가 넘어 토요일이 된 시간, 출근의 압박이 없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단순한 중생. 그러나 지금 이 시간만큼은 충실히 즐기고 싶은 시간의 숭배자. 시간은 깡패가 아니라 축복이고 선물이라고, 이 시간만큼은 확실히 되뇌어 본다.

 

덧 하나. 작품의 구체적 줄거리는 담지 못하겠다. 방대하기도 하거니와 어쩐지 무의미해 보여서 말이다. 다만 이 깊고도 넓게 뻗쳐 있는 이야기를 '베니'와 '사샤'를 두 중심축으로 읽으면 좀 더 쉽게 몰입이 될 거라고 추천하겠다.

 

덧 둘. 48쪽에 -랄프 로렌 을 입고 나와-로 적혀 있다. 랄프 로렌과 '을'을 띄어 둔 것은 그냥 실수인가? 아님 내가 모르는 어떤 규칙이 있나 궁금하다. 소박한 편집 실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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