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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인형의 눈물 ㅣ 웅진 세계그림책 123
마저리 윌리엄즈 지음, 고향옥 옮김, 사카이 고마코 그림 / 웅진주니어 / 2008년 9월
절판
벨벳 천으로 만든 이 토끼 인형이 소년에게 처음 왔을 때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야말로 눈부신 자태랄까. 토끼 인형을 선물로 받은 소년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곧 다른 선물들이 쏟아졌고, 소년은 금세 인형을 잊어버렸다. 덕분에 벨벳 토끼는 아이 방 한쪽 구석, 장난감 선반에서 살게 되었다. 그곳에는 서로가 자신이 진짜라면서 으스대는 장난감들이 가득 있었다. 여기서 벨벳 인형은 '진짜'란 소년이 진짜 친구로 대한 장난감으로, 마법이 일어날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소년의 품에서 잠들게 된 토끼 인형. 이때부터 소년은 이 벨벳 인형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토끼 역시 소년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아졌다. 아이가 이불로 만든 토끼 굴이 재밌어 보인다. 나도 어릴 적에 저런 식으로 놀았던 기억이 난다.
봄이 되자 아이는 벨벳 토끼와 함께 마당에 나가 놀았다.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웠지만 그 덕분에 벨벳 인형은 매일매일 더러워져 갔다. 그래도 행복했던 것은 물론이다.
눈부신 여름날, 벨벳 토끼는 나무 둥치 앞에서 진짜 토끼를 만났다. 자신처럼 바느질 자국이 있는 인형이 아닌 살아있는 토끼였다. 벨벳 인형이 받았을 충격의 크기가 상상이 간다. 자신이 진짜라고 여겼는데,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진짜를 만났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이는 병이 나고 말았다. 의사 선생님은 방을 소독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결핵 같은 게 아닐까.
하여간 그 바람에 아이가 갖고 놀던 장난감과 책들이 모조리 태워질 운명이 되고 말았다. 토끼 인형은 그야말로 세균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벨벳 토끼는 이렇게 마지막을 맞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곧 불에 타버릴 운명. 슬펐다. 서러웠다. 그 바람에 눈물이 솟았다. 다시는 아이를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사랑을 받았는데 헤어져야 하다니, 토끼 인형의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파왔다.
그런데, 그 눈물이 기적을 일으켰다.
아이 방의 요정이 나타나 토끼인형에게 마법을 걸어주었던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받았던 존재가 '진짜'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다시 몇 번의 계절이 돌고 돈 뒤, 아이는 숲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상한 산토끼를 만났다. 그 토끼에게서 아팠을 때 잃어버린 옛 토끼 인형을 떠올렸음은 물론이다. 그것이 '진짜' 우정을 나눈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라는 것을 물론 아이는 몰랐겠지만...
피노키오도 진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코가 길어지기도 하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기어이 피노키오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진정한 마음을 갖고나서야. 토끼 인형도 그랬다. 진정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고, 진정으로 사랑 받았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면 '진짜'라는 말이 아깝지 않으리라.
이 책은 버전이 무척 많은 편인데 전반적으로 감동적이고, 동시에 조금은 서글프다. 진짜가 되고 싶은 가짜의, 인정받고 싶은 어떤 잉여적 존재의 서러움이 느껴져서일까. 아무튼, 토끼 인형은 진짜가 되었다. 고맙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