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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님 발자국 ㅣ 베틀북 오름책방 4
황선미 지음, 최정인 그림 / 베틀북 / 2009년 1월
평점 :
도연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바이올린 학원을 빼먹고 피씨방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동생이 귀찮게 굴까 봐 다른 동네까지 멀리 다녀왔다. 그런데 돌아온 집에는 경찰들이 와 있었다. 집에 도둑이 들었던 것이다! 방에 난 작은 발자국은 발꿈치까지 다 찍히지도 않았다. 유리창이 깨져 있었지만 딱히 없어진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아뿔싸! 세계위인전집 사이에 끼워둔 비상금에서 만원이 사라진 것이다. 약삭빠른 도둑이 전부 훔쳐가면 들통날까 봐 일부만 가져갔나보다. 도연이는 울고 싶다. 내색을 하자니 돈의 출처 때문에 혼이 날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억울했다. 그 복잡한 심사가 얼굴에 드러났고, 도연이는 없어진 돈과, 그 돈을 갖게 된 경위까지 모두 밝혀야 했다.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졌다. 뿐아니라 학원을 빼먹은 것도 같이 들켰다. 여러모로 일진이 사납다. 게다가 엄마와 아빠는 서로 싸우기까지 하셨다. 이렇게 집안 분위기 안 좋은 때에 동생 상연이는 어디서 뭐하는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돌아보니 박하 사탕도 사라졌고, 냉동고에 있던 볶음밥도 사라졌다. 얼라, 알고 보니 사라진 게 꽤 되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동생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도둑 들었을 때보다 더 큰 난리가 벌어진다. 그리고 진짜 도둑의 정체도 함께 밝혀진다.
작품은 형 도연이의 시각에서 진행된다. 아이의 시각으로 신기하게 경찰을 바라보고,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것과, 엄마 아빠가 다투는 모습에서 잔뜩 속상해하는 어린 도연이의 시각 말이다. 늘 귀찮아 했지만 그래도 동생 상연이의 귀가가 늦어지니 걱정하는 전형적인 형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꼭 우리 조카들 보는 것 같다. 큰 조카가 열한 살짜리 오빠고, 둘째 조카는 일곱살 누이다. 둘은 티격태격 자주 싸우고 다투지만 때로는 서로를 챙겨주고 잘 놀기도 한다. 당장은 네살 어린 동생이 귀찮을 때가 많지만, 동생이 밖에서 뭔가 속상한 일을 당하고 오면 제일처럼 분해하고 씩씩 대는 오빠이기도 하다. 그 둘이 아옹다옹 싸우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귀엽기만 하다.
이 작품 속에는 평범한 우리 시대 가정이 있다. 반지하 셋방에 살지만 자식 교육이 뒤쳐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엄마가 있고, 잊혀진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도 하고 저항도 해보는 소시민 가장이 있다. 그리고 철없는 형이지만 동생 챙기는 일에는 마음이 앞서고, 또 아무 것도 모르는 꼬맹이 동생이지만 때로 다부진 모습도 보여주는 똑똑한 아이도 있다. 지구대가 지구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곳인가 하고 생각하는 어린이지만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가족의 평화를 소망하는 마음가짐은 어른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
여타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작가님의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반지하 작은 집에 기어이 들어와서 망가진 카메라를 훔쳐간 도둑이 남겨놓고 간 물결무늬 발자국이 이 작품의 시작이다. 나 역시 비슷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집에서는 텔레비전 한대와 필름 카메라 한대, 그리고 기타를 도둑 맞았다. TV는 역시 아남이라고 강조하시던 엄마의 상심한 얼굴이 기억난다. 몇 장 찍어보지도 못한 카메라와 기타 배우겠다며 기타부터 샀던 큰 언니의 꽤 멋졌던 기타도 무척 아쉬웠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도둑의 방문이 억울했던 기억으로 남았지만, 황선미 작가님께는 멋진 작품의 동기가 되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요새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도둑들'도 생각난다. 이 사회를 좀먹는 진짜 도둑을 혼내주는 의적 도둑이 등장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란히 매달렸던 사람의 직업으로서, 참으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도둑이 아닌가. 내 집에 온 도둑은 전혀 반갑지 않지만, 이 작품 속에는 '도둑님'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우리들의 도둑님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작품을 보면서 유추해 보시라. 어렵지 않은 스무 고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