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편지가!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71
황선미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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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는 헐랭이라는 별명이 싫다. 작고 마른 체격의 동주는 키가 쑥쑥 자라고 발도 크게 자라고 변성기도 어여 왔으면 싶다. 하지만 현실의 동주는 245신발에 억지로 220 발을 밀어넣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걷는 아이일 뿐이다. 단짝 친구 마재영은 마뚱이라는 별명이 싫다. 호리호리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싶지만 현실 속의 재영이는 경도 비만 판정을 받은, 간식거리를 늘 입에 달고 사는 뚱뚱한 친구인 것이다. 그래서 그 둘은 둘다 축구가 싫다. 그런데 하필 어린이날 행사에 4학년은 축구 시합을 하게 되었다. 작은 학교인지라 전교생이 선수로 뛰어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차마 축구가 싫다, 혹은 못한다고 말할 용기도 없다.

 

어린이날 함께 무인도로 같이 가출하자고 속삭이고 있던 와중에 동주의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일이 생겨버렸다. 같은 반의 키큰 여자 아이 민영서가 호진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똑같은 가방을 가진 동주에게 잘못 보낸 것이다. 이 '멍청한 편지가!' 동주를 지나치게 신경 쓰게 만들었다. 이게 뭔가 싶어 뜯어본 편지에는 영서의 비밀 이야기가, 그리고 좋아한다는 고백까지 같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뜯었으니 원상복귀가 되지 않고, 그렇다고 그 상태로 돌려주는 것도 마뜩치가 않다. 그런 것도 모른 채 영서는 자신의 편지가 배달사고가 난줄도 모르고 있으니 이 얼마나 난처한 일인가!

 

비밀을 간직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당사자가 아닌 어처구니없게 끼어들게 된 비밀은 더 복잡한 법! 동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영서가 오해를 안 할 수 없는 상황! 본의 아니게 남의 애정전선에 끼어들었고, 또 본의 아니게 방해물이 되었으니 이동주의 고민은 끝이 없다.

 

밀리언셀러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작가님의 필력은 이미 충분히 인정받은 바! 작품은 진짜 열한 살짜리 어린이들의 눈높이와 입말을 그대로 사용하여서 현실감이 높다. 이미 변성기가 오고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하룻밤 사이에 훌쩍 커서 꼬맹이 신세를 벗어나고픈 마음도 사실적으로 그렸다. 2차 성징기가 오면서 예민해진 여자 아이의 마음도, 또 공정한 척하면서 제가 가진 한줌밖에 되지 않는 권력을 남용하는 못난 녀석도 눈에 그려지듯이 표현해냈다. 어린 아이들의 세계이지만, 그 안에서도 세력과 파벌이 형성되고 나름의 공정한 룰을 지키려는 의지도 보이고 또 얼마든지 제 감정을 드러내며 적극적인 표현도 가능한 똑부러진 아이들이 있다. 어른들만큼 고민도 하고 반성도 하고, 책임도 지려는 모습들이 이 아이들의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도 훈훈하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멍청한 편지였지만, 결국 그 편지 덕분에 누군가는 황홀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한걸음 더 성숙해지고 세상을 알아간다. 열한 살짜리 아이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이다.

 

마침 열한 살 조카는 아직 변성기도 한참 남은 것처럼 앳되어 보이지만, 머잖아 짝사랑 내지 첫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그렇게 불쑥 자라고 말 것이다. 벌써부터 그날이 섭섭하게 느껴지고 또 기다려지기도 한다. 조카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조카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뭇 궁금하다. 멍청한 편지가! 하며 투덜거리다가도, 또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근질거리는 입을 어찌할까 고민하고, 또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할 테지. 하하핫, 상상하는 와중에 조카가 여자친구 만드는 게 내가 남자친구 만드는 것보다 더 빠르지 않을까 싶어 갑자기 시무룩해진다. 여하튼! 황선미 작가의 신작 '멍청한 편지가!'는 초등학생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이 있다. 들여다보는 이 어른 역시 즐겁기 그지 없다. 내게는 멍청하지 않은, 번지 수를 제대로 맞춘 편지가 어서 도착해야 할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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