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634 호/2012-06-25

오디션 프로에서 우승하는 득음법이 있다?

최근 몇 년 새 TV에서는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케이블 채널 ‘슈퍼스타 K’를 시작으로 KBS 위대한 탄생, SBS K팝스타‘, MBC ‘나는 가수다’까지, 일반인은 물론이고 가수들까지 경연에서 우승하기 위해 그야말로 열창을 한다. 그동안 허각, 존박, 장재인 등 오디션 프로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가수들도 줄지어 데뷔해 인기를 얻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인 슈퍼스타K는 시즌 4 제작을 앞두고 지원자를 모집한 결과, 4개월 만에 180만 명이 넘게 몰렸다고 한다. 이렇듯 노래를 잘 하고 싶고,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과연 과학적으로 노래를 잘 하는 방법이 있을까? 노래를 잘한다고 인정받은 가수들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노력해서 얻은 결과일까.

삼성경제연구소의 평가에 의하면 국민가수로 불리는 이미자 씨의 노래 가치는 자그마치 1,650억 원에 달한다. 가수활동 46년간 약 560종의 음반과 2,069곡의 노래를 발표했으며, 1,500만~2,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했다고 한다. 여기에 공연수익, 가요계 영향력 등을 감안한 평가금액이다.

“목소리가 변할까봐 치아 교정도 못한다.”

이미자 씨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치아 교정을 하게 되면 입안 모양이 변하며, 목소리도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자 씨는 얼굴에 비해 입이 큰 편이다. 입이 크다는 것은 입 안의 공간이 넓다는 것으로, 이는 소리가 커다란 울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입이 크다고 해서 모두 다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입의 크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소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성대와 발성능력이다.

노래는 발성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발성의 기본은 허파에 공기를 모아 방출하면서 만들어진다. 즉 노래를 부르면서도 사이사이에 공기를 모아서 오래 동안 목소리를 지속하게 하는 폐활량이 중요하다. 이미자 씨의 빼어난 가창력은 바로 남들보다 2.5배 이상 길게 목소리를 유지하는 큰 폐활량에 그 근본이 있다.

그녀의 숱한 노래 가운데 초창기 노래인 섬마을 선생님, 동백 아가씨 등 몇 곡을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다른 사람에 비해 발성하는 음역대가 넓고 빼어난 미성임은 당연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탁월한 성대 떨림을 보여주었다.

또한 성문분석기에 나타난 그녀의 목소리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와 달리 톤이 명료하고 배음의 울림이 마치 악기음 같았다. 일반적으로 소리가 갈라지기 쉬운 고음대역에서도 음정의 대역 차이가 뚜렷했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가 무려 3옥타브(8배 음폭)에 걸쳐 매우 안정적이었다. 특히 이미자씨의 목소리는 저음에서 중음을 거쳐 고음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강한 바이브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어 구구절절 애절함이 더한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20대 때의 목소리와 60대 때의 목소리가 아주 유사했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톤은 낮아지고 표현할 수 있는 음 대역은 좁아진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무척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천부적으로 매끄럽고 정교한 성대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빼어난 악기다.

이미자 씨 만큼이나 빼어난 목소리를 가진 우리 선조들은 타고난 성대 외에 엄청난 노력의 결과로, 일종의 ‘득음’과정을 거쳐 명창으로 거듭났다. 명창이란 판소리나 민요 등, 우리 소리를 빼어나게 잘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우리 국악계만의 별칭이다. 명창이 되려면 득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득음을 이루기 위해선 ‘목구멍에서 피를 세 번 토할 정도로 노력해야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실 노래 솜씨란 아름답고 탁 트인 목소리에 음정과 박자, 기교가 어우러지면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피를 세 번 토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의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된 일종의 솔로 오페라이다. 판소리는 노래와 대사가 쉼 없이 반복되며 무엇보다 완창을 하는데 무려 3~4시간 동안 줄기차게 소리를 내야 하는, 그야말로 엄청난 에너지와 다양한 목소리를 필요로 하는 장르다. 때문에 명창들의 소리 훈련과정인 득음을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첫째, 영화 <서편제>에서 나오는 한 장면처럼 산 속 계곡 폭포 아래서 소리를 내는 훈련이 그것이다. 모든 소리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폭포 소리를 뚫고 자신의 목소리가 뻗어 나갈 수 있어야 1단계 관문을 통과한다는 것이다. 우렁찬 폭포수의 백색소음을 뚫고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면 얼마나 크고 또렷해야 할까. 이 과정을 통해 일단 엄청난 음량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둘째 단계는 동굴에서의 훈련이다. 건조한 동굴 안에서는 모든 소리가 울린다. 동굴의 흙이나 바위벽 등이 고르지 못한 탓에 소리의 난반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목욕탕에서의 울림과 유사하다. 메아리 반사효과 때문에 음량은 목소리보다 크게 들리지만 소리가 뒤섞여 윙윙거림으로 무슨 소리인지 잘 알아듣기 힘들다. 따라서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마침내 동굴의 울림을 극복하고 목구멍에서 공명을 잘 일으켜 섬세하고 명료한 소리를 뽑아낼 수 있을 때, 명창의 두 번째 관문을 통과한 셈이 된다.

다만 우리 주변의 산하에는 동굴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선조들은 시골의 토담집을 대신 활용했다. 토담집의 실내구조는 규칙적이지 못해 흙이 보일 정도로 울퉁불퉁했고, 여기 저기 지지대가 삐져나와 있기에 소리의 난반사를 불러일으켜 동굴에서의 소리울림을 잘 대체할 수 있었다. 술상이 차려진 허술한 주막집도 소리의 반사 특성을 고려한 울림현상이 두드러지는 잔향실로 사용하기에는 손색이 없어, 자신의 소리가 뚜렷하게 울려 퍼지도록 목청을 다듬는 훈련을 할 수 있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셋째, 명창이 되려면 갖가지 소음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도록 훈련해야 한다. <서편제>에서 보면 왁자지껄한 시골장터에서 소리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처음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 가닥 선율이 시장의 온갖 소음을 뚫고 뻗어 나온다. 장사치들의 호객소리, 다툼, 동물울음, 자동차 소리 등등, 다양한 소리가 뒤섞인 소음을 유색잡음이라 하는데, 명창이 되려면 이 모든 소리를 극복하고 독창적인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관문은 해변이나 들판 같은 광활한 곳에서의 훈련이다. 벌판이나 평지에서는 소리가 초라해진다. 소리가 부딪혀 되돌아오는 반향이 없기 때문이다. 파도소리가 끊이지 않는 해변이 특히 그렇다. 벌판에 바람이라도 불어대면 소리가 흩어지게 된다. 그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낼 수 있을 때, 그는 명창이 되기 위한 가장 어려운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명창이 되기 위한 득음의 4단계. 옛 소리꾼들은 무심코 이런 과정을 밟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소리의 특성을 감안할 때 모든 훈련과정이 무척 치밀하고 과학적이라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선조들의 득음과정을 똑같이 따라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천부적으로 빼어난 성대와 발성기관도 중요하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일구어 낸 득음을 통해 명가수가 배출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

과학향기 : http://scent.ndsl.kr/sctColDetail.do?seq=4984&classes=200&subclas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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