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어록청상 푸르메 어록
정민 지음 / 푸르메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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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저것

내게 없는 물건을 바라보고 가리키며 ‘저것’이라 한다. 내게 있는 것은 깨달아 굽어보며 ‘이것’이라 한다. ‘이것’은 내가 내 몸에 이미 지닌 것이다. 하지만 보통 내가 지닌 것은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사람의 뜻은 성에 찰 만한 것만 사모하는지라 건너다보며 가리켜 ‘저것’이라고만 한다. 이는 천하의 공통된 근심이다. 지구는 둥글고 사방 땅덩어리는 평평하다. 천하에 내가 앉아 있는 곳보다 높은 곳이 없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자꾸만 곤륜산을 오르고 형산과 곽산을 오르면서 높은 것을 구한다. 가버린 것은 좇을 수 없고, 장차 올 것은 기약하지 못한다. 천하에 지금 눈앞의 처지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하지만 백성들은 오히려 높은 집과 큰 수레에 목말라하고 논밭에 애태우며 즐거움을 찾는다. 땀을 뻘뻘 흘리고 가쁜 숨을 내쉬면서 죽을 때까지 미혹을 못 떨치고 오로지 ‘저것’만을 바란다. 하여 ‘이것’이 누릴 만한 것임을 잊은 지가 오래되었다. -「어사재기」
-16쪽

시비와 이해의 네 가지 조합이 만들어내는 네 가지 삶의 등급이 있다. 옳은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이 첫째요, 옳은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둘째다. 그른 일을 해서 이롭게 되는 것은 셋째다. 그른 일을 하다가 해롭게 되는 것이 넷째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기란 쉽지 않다.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를 입는 것은 싫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른 일을 해서라도 이로움을 얻으려고 하다가 마침내 해로움만 불러들이고 만다. 첫째는 드물고 둘째는 싫어 셋째를 하다가 넷째가 되고 마는 것이다.

-19쪽

만족을 모르는 삶에 기쁨은 없다. 미래를 꿈꾸려거든 현재를 경영하라. 내일은 알 수가 없다. 자손은 내가 아니다.

-25쪽

땅은 달아나지 않는다. 하지만 땅문서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수시로 주인이 바뀐다. 변치 않을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지, 고작 땅주인 되는 데 인생을 걸어서야 되겠는가?

-29쪽

사람은 생긴 대로 노는 것이 아니다. 노는 대로 생긴다. 상은 자꾸 변한다. 사람은 나이 들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33쪽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드는 것은 집과 땅 같은 것들이다. 지켜야 할 ‘나’ 는 내버려둔 채, 달아날 염려 없는 물건만 지키려고 난리다. 내가 나를 잃으면 그 많은 물건을 다 지녀도 내 것이 아니다. 한번 떠난 나는 돌아올 줄 모르고, 주인 잃은 빈집에 허깨비만 산다. 이익과 명예, 부귀와 여색에 빠져 떠나버린 나를 어디서 찾아 데려올까?

-43쪽

사람은 제 이름값을 하고 살아야 한다. 이름값을 하려면 명실이 상부해야 한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 소문보다 실제가 못한 것을 군자는 부끄러워한다. 이름은 내가 얻으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름은 행위의 결과일 뿐이다. 없는 것을 만들고, 작은 것을 크게 부풀려 얻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이름 앞에 겸손할망정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갖춘 것 없이 얻은 헛된 명성이다. 이런 것은 오히려 재앙에 가깝다.

-83쪽

공부는 부족함을 아는 데서 새로 시작된다. 하지만 초심자일수록 자꾸 드러내고 자랑하려 든다. 논문을 쓰라고 하면 자기가 읽은 것을 다 늘어놓는다. 잔뜩 썼지만 알맹이도 초점도 없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을 시로 알고, 달콤한 말을 문장으로 여긴다. 잘못을 지적하면 부끄러워 더 분발하는 것이 아니라, 제까짓 게 하면서 원망을 품는다. 오류를 깨달아 인정하는 것이 공부다. 과오를 바탕으로 거듭나는 것이 공부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른 것이 공부다. 그저 고여만 있고, 저 잘난 맛만 있다면 그런 공부는 해서 무엇 하겠는가?

-97쪽

18세기에 중국에서 간행된 크기가 작은 휴대용 소책자가 조선에서 인기를 끌었다. 소매 속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작다고 해서 수진본(袖珍本)이라 했다. 그런데 책의 크기가 작다 보니 성현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드러누워 보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어찌 감히 성현의 말씀을 자리에 누워서 볼 수 있느냐고 책의 수입을 금지시킨 일이 있다.

-105쪽

시다운 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시대를 상심하고 시속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다. 찬미하고 풍자하며 권면하고 징계하는 뜻이 없다면 시가 아니다. 때문에 뜻이 서지 않고 배움이 순수하지 않으며 큰 도를 듣지 못하여, 임금에게 미치고 백성을 윤택하게 할 마음을 지니지 못한 자는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 너는 힘쓰도록 해라. -연아에게 부침
-164쪽

시는 안타까움에서 나온다. 안타까움이 없는 자는 시를 쓸 생각을 마라. 시인이란 명성을 탐하여 개폼이나 잡으려거든 차라리 붓을 꺾어라.

-165쪽

부지런히 노력해도 검소함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검소함은 아끼고 절약하는 정신이다. 한 번 쓸 것을 여러 번에 나눠 쓰고,. 혼자 쓸 것을 함께 쓴다. 먹고 입는 데 호사를 부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육신의 배고픔보다 영혼의 허기를 부끄러워하라. 초라한 의복 말고 빈약한 내면을 다급히 여기라. 아무리 맛난 음식도 한번 침이 닿기만 하면 개밖에 먹지 않는다. 들어갈 때는 다른 것 같아도 나올 때 보면 다 같다. 그러니 냄새나는 똥을 위해 아등바등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곳간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해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된다.
-2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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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2-05-2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편 빼고는 저자의 감상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