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먹는 괴물
이웃집 아주머니를 만나면 활짝 요구르트 아주머닐 봐도 활짝 웃던 엄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하 경비 아저씨를 봐도 하하 웃던 아빠
그런데 이상하다 집에만 들어오면 엄마 얼굴에 웃음 뚝! 아빠 얼굴에 웃음 뚝!
우리 집에 웃음 먹는 괴물이 사는 걸까? -11쪽
서울 친구들
막내고모가 아기처럼 키우던 강아지 미루 고모가 아기 낳자 시골 할아버지네로 보냈다
소연이 언니가 생일 선물로 받은 점박이 토끼 소파 밑에 똥 누고 베란다 꽃 뜯어 먹는다고 시골 할아버지네로 보냈다
피곤한 아빠 위해 안마해 주고 목욕탕 가면 엄마 등도 밀어 주던 나 엄마 아빠 헤어지면서 시골 할아버지네 와서 산다
"미루야, 점박아! 놀자."
내 뒤를 쫄쫄 따라오는 미루 미루 뒤를 총총 뛰어오는 토끼 우린 모두 서울 친구들. -12쪽
자는 척
텔레비전도 잘 준비를 끝냈다 이불도 쫙 펼쳐 누워 있고 베개도 이불 위에 엎어져 잘 준비를 한다 양말은 돌돌 말려 윗목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할머니가 벗어 둔 시계도 베개 옆에서 채각채각 코를 고는데 할머니가 뒤척뒤척 할아버지가 뒤척뒤척 퇴근길에 술 취한 아빠의 전화 "어머니, 너무 힘들어요." 그 전화 한 통에 벽에 걸린 작업복은 벌써 잠이 들었는데 이불도 베개도 모두 곯아떨어졌는데 할머니가 뒤척뒤척 할아버지가 뒤척뒤척. -15쪽
작은 엄마는 작은엄마다
올 때마다 냉장고를 가득 채워 놓고 내 숙제를 봐 주는 작은엄마 토요일이면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외식도 시켜 주는 작은엄마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 주는 작은엄마 나올 때 꼭 바나나우유를 사 주는 너무 착한 작은 엄마 내 머리를 빗겨 주며 가끔 우는 작은엄마 우리 엄마였으면 좋을 작은엄마 성익이네 엄마인 작은엄마. -16쪽
누구네 엄마일까?
빈 화분이었을 때는 그냥 화분이었는데 봉숭아 모종을 옮겨 심었더니 봉숭아 화분이 되었다
떠돌이 고양이일 땐 그냥 고양이였는데 내가 키우자 우리 집 고양이가 되었다
그냥 새댁이었다가 나 태어나고 한별이 엄마가 된 우리 엄마 지금은 내 이름 말고 다른 아이 이름을 달고 있을 엄마. -17쪽
엄마 만나러 가는 길
가는 길만 있고 오는 길은 없었으면 좋겠어. -20쪽
여름
낮에는 파리가 우리 집 주인
밤에는 모기가 우리 집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 부채 하나 들고
밖으로 쫓겨나셨다. -26쪽
훌륭한 사람
세종대왕, 유관순, 에디슨 같은 훌륭한 사람 다 두고 소같이 우직한 사람이 최고래요 풀같이 끈질긴 사람이 최고래요 뿌린 대로 거둬 주는 땅 같은 사람이 최고래요 우리 할머닌.
할머니가 말하는 사람 위인전에는 없지만 우리 집엔 살지요 흙 묻은 바짓가랑이 걷고 마루에 앉아 점심 드시는 바로, 저분.
"한별아, 물 좀 떠 와라." "네, 할아버지." -27쪽
들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
할아버지 뒤에 할머니 할머니 뒤에 아빠 아빠 뒤에 내가 쫄쫄쫄 따라간다
할아버지에게 할머닌 등 가려울 때 긁어 주는 마누라
할머니에게 아빠는 마음까지 든든한 울타리
아빠에게 나는? 재혼할 때 걸리는 혹
내 생각이 아니고 동네 사람들 얘기다.
-40쪽
내가 오고부터
방바닥에 연필이 굴러다니고 달력 뒷장에 그림이 그려지고 밥상 위에 햄이 오르고 할아버지가 슈퍼를 자주 가고 할머니가 시내 문방구 단골손님이 되었다
-41쪽
위풍당당 박한별
우리 학교에서 인사 제일 잘하는 아이는? 나, 박한별 믿을 수 없다면 교장 선생님께 여쭤 봐 열 번 보면 열 번 다 인사하는걸
우리 학교에서 젤 잘 웃는 아이는? 나, 박한별 우리 반에서 공부 젤 잘하는 아이는? 너희가 더 잘 알지?
그럼 우리 반에서 달리기 제일 잘하는 아이는? 현용이? 아니. 엄마 없다고 놀리는 현용이 끝까지 따라가서 등짝 한 대 멋지게 날려 준 나, 박한별이야
위풍당당 박한별!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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