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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내가 알라딘 생활을 시작한 것은 2006년이었고, 물만두님을 알게 된 것도 아마 그 해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라는 것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소박하고 친근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분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물만두님이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서 꾸벅 절을 하는 모양새로 정수리가 주인공인 사진이었는데, 그 목덜미를 보고서는 몸이 불편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페이퍼 중간에 외출을 하지 못한다거나, 핸드폰을 쓰지 않는다거나, 누군가 보내준 어떤 선물을 동생 만순이에게 준다고 하는 것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물만두님의 글은 더 의미있게, 더 깊이있게, 더 절절하게 다가오곤 하였다.
이 책은 2003년부터 2007년 1월까지의 기록이다. 맨 뒤에 부록처럼 발췌한 글이 더 나오기 때문에 내가 읽었던 몇몇 글이 겹치지만, 본문의 글은 딱 하나 빼고는 내게는 첫 만남이다. 내가 몰랐던, 미처 만나지 못했던 물만두님의 이야기가 이리 있었구나 새삼 생각하며 짠한 마음이 더 피어오른다.
서재에서 왕래하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던 것은 물만두님의 사랑스럽고 건강한 가족분들 때문이었다. 헌신적이지만 자식을 나약하게 만들거나 의지만 하게 두지 않으신 부모님과, 언니와 누나를 사랑으로 대하지만 좀처럭 삭지 않는 유머감각을 갖춘 동생분들이 함께 이루는 조합은 가히 환상이었다. 철마다 꽃사진을 찍어서 몸소 나오지 못한 딸에게 꽃구경을 시켜주는 어머니, 사람에게서 나는 냄새 중 가장 좋은 냄새는 화장품 냄새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난 뒤 몸에 배어 있는 냄새라는 것을 짚어주시는 아버지는 그야말로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그림같은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 제사상에 올릴 닭의 똥구멍을 막겠다고 닭 모가지를 꽂아놓기도 하는 둥, 시트콤에서 나올 법한 연출도 적지 않게 해주시는 아주 역동적인 가족들이다. 또 무인도에 가져갈 책 한 권을 고르라는 말에 책을 왜 가져가냐며, 살아남을 수 있는 연장을 고르겠다는 현실적인 대답을 해주는 만순양의 매력도 무시할 수가 없다.
물만두님의 글들은 우리가 같이 겪었던 지나온 시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라, 그때그때에 물만두님이 느꼈던 감정들이 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사회적 이슈나 사건에서 겪은 좌절과 아픔, 또 매일매일 숨쉬는 삶의 아름다움과 절박한 고마움들이 오늘 하루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탈하게 지나온 나 자신에게 새로운 감사와 반성을 반복하게 한다.
94쪽
세상에 나처럼 한심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또 있을까 싶다가도 이런 내가 없어지면 슬퍼할 가족이 있어 나는 오늘도 힘을 낸다. 힘을 낸다고 해서 나올 힘도 아니지만 그래도 우울하게 지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내게는 우울도 사치다. 감히 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 앞에서 기운 빠진 못난 모습으로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기 때문에…….
175
“햇빛 따스한 아침 숲 속 길을 걸어가네.”
CF에서 들은 이 노래를 오늘 종일 흥얼거렸다. 나는 햇빛도 숲 속도 걷지 않았지만 그 좋은 느낌은 잘 알고 있다. 살아 있어서 좋다는 건, 백 번의 불행이 닥쳐와도 단 한 번의 행복이 그 백 번의 불행보다 찬란하기 때문이다. 삶이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 해피데이’라고 하는 건가.
182
시간이란 상대적인 것
그 누구의 시간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으랴
내 마음 가는 대로 이제는 한 박자 쉬어 보련다.
물론 나중에 가서 쉬지 말걸 하면서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
나의 독서가 의무가 아닌 예전처럼 기쁨이 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천천히 가련다.
217
내가 남긴 날들보다 나를 기다리는 날들이여, 내가 너희를 더 기쁘게 맞이하마. 이제야 그걸 알다니. 나이 든다는 건 좋은 거란 걸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오라, 나를 기다리는 날들이여!
232
어떤 사람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이 없다고 한 말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나는 반대다. 꿈이란 게 무엇일까. 의사, 박사, 대통령이 되는 거? 그런 꿈을 꿀 바에야 차라리 꿈 없이 살라고 하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하면 그건 꿈이 아니라고 하겠지. 농부가 되겠다고 하면 더 큰 꿈을 가지라고 하겠지.
269
나는 오늘 죄인이 되어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은 죄인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도 슬프다. 윤리로 희망을 살 수 있다면…… 윤리로 생명을 살 수 있다면……. 또 다른 생명을 내놓을 사람들을 위해서 울었다. 아무도 생각해 주지 않는 그늘에서 오늘도 웅크리고 사라져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271
나는 개구리. 돌에 맞은. 그런데 죽지도 않는다. 얼마나 맞아야 죽을까. 나는 진짜 개구리가 아니어서 그런가. 그래. 그래도 아프다. 마음이 죽는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내버려 두시길.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는가 보오.
305
나는 비록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없을지라도 지금부터 더 좋은 기억을 쌓아갈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다가오는 매일이 반갑다. 첫사랑은 단 한 번뿐이겠지만 내 남은 하루하루는 매번 첫사랑의 느낌일 테니까.
벌써 한 해가 더 지나갔다. 물만두님이 떠나신지... 그날 페이퍼를 통해 부고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문장을 읽는 순간 와락 눈물이 터져나오던 기억이 난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도 불현듯 생각이 나서 또 울컥했던 마음도 떠오른다. 시간은 차곡차곡 흘러 그 사이 물만두님의 글을 엮은 책이 두 권 나왔고, 여전히 그분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분들이 서재를 다녀가신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순간 눈물이 쏟아졌지만, 이 또한 차차 고운 추억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애써 위안해 본다.
한 번은 그런 적도 있었다. 만돌군이라는 이름으로 중고책이 잔뜩 올라왔는데 추리 소설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물만두님의 유족이 마음이 힘들어 책을 정리하시나... 뭐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분에게서 책을 구매했는데 공교롭게도 주소가 물만두님 집과 비슷했다. 다만 아파트는 아니었는데 계속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거래를 마쳐보니 계좌 주인의 이름도, 또 책을 발송한 사람의 이름도 다르고 홍씨도 아니어서 내가 혼자 착각하고 마음 아려했구나...로 결론내렸다. 웃길 수도 있는 해프닝이었지만, 물만두님의 생각하면 또 다시 아련해지는 경험이다.
건강히 사시지 못했지만, 많은 아픔을 지니고 계셨지만, 당신의 책 제목처럼 별 다섯 인생을 사셨던 아름다운 분을 기억한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또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던 고운 그분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이다. 오래오래 고마운 사람으로 추억할 것이다.
물만두님, 지금 계시는 곳에서는 아픔 없이, 눈물도 없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맘껏 웃으며 즐기며 지내시길 소망합니다.
덧글)소중한 책에 옥의 티가 있다. 안타깝다.
62쪽
3줄 만순이과>>만순이와
마지막 줄 만순이과>>만순이와
75쪽 2줄
그 나이 에 >>그 나이에
96쪽 4줄
엉덩이뼈가 달아서>>>닳아서 아닐까??
134쪽 마지막 줄
부부동반 모임이과>>>모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