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동시집 차령이 뽀뽀 - 국영문판 바우솔 동시집 1
고은 지음, 이억배 그림, 안선재(안토니 수사) 옮김 / 바우솔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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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제나 우러러 보게 되는 대상이지만, 동시를 쓰는 이는 더 위대해 보인다. 시를 쓰는 사람이 자기 자식을 위해서 동시 한 편 안 썼다면 그건 직무유기로 보인다. 고은 시인은 그 비난으로부터 자유롭다. ^^

 

 

이억배 씨가 그림을 그렸다. 동시는 풋풋하고 그림은 구수하다. 절묘한 조화다. 시골의 넉넉한 풍경이 잘 어우러진다.

 

 

어젯밤 꿈 속에서

새가 되었지

새가 되어

멀리 날아갔었지

학교 가는 길도

학교 마당도

고속도로도

저 아래로 조그맣게 보였지

바다 위 배도

산더미 파도도 조그맣게 보였지

 

새들도 나처럼 꿈꾸겠지

꿈 속에서

사람으로

걸어가겠지

안 그러면 미안해

아주 미안해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다. 내가 날개 달고 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축복이지만, 그러니까 공평하게 너희 새들도 걸어가란 말은 못해봤다. 새들은 원래도 다리가 있으니까 걷기도 하지만...

 

가을

 

외할머니와 차령이가 누워 있어요

차령이가 말문을 열었어요

나는요 가을만 빼고 다 좋아요

외할머니가 왜? 하고 물으셨어요

봄에는 꽃 피고 나비가 놀고

여름에는 수영할 수 있어서 좋아요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니까 좋고

 

나중에 아빠가 그 말을 듣고

이다음

가을도 좋아질 거야

무척 좋아질 거야

 

왜 어른이 되면

가을이 좋을까요

잎새 지는 가을이 좋아질까요

 

그러게 말이다. '가을'은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더 어울리는 계절이다. 아이들은 찌는 볕에도 불구하고 여름이 신나고, 겨울은 추운 빙판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 수 있는 경이로운 계절이다. 어느 틈에 가을이 좋아진 것일까. 분명 지금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 맞건만...

 

 

책 좋아하는 책보 차령이의 꿈나라 풍경이다. 아름답다.

책 속 이야기가 자장가도 불러주고, 모험의 나라로 초대할 것만 같다. 저런 집은 넓지 않아도 근사하고, 그 자체로 격조가 있다. 아, 탐난다!

 

이이주 선생님

 

(......)

 

아이들이 운동장에 놀고 있으면

이놈들아

이놈들아

땅하고만 놀지 말고

하늘하고도 놀아라

하고 큰 소리로 말하셔요

 

(......)

 

하아, 가슴을 강타하는 말이다. 땅하고만 놀지 말고 하늘하고도 놀라는 저 말이. 땅만 보고 걷지 말고 하늘도 보면서 달도 보고 별도 보고 구름도 봐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았던 날들에 반성한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는, 넓은 이상을 품어야 한다는 말로도 들린다. 아, 하늘하고 놀아야 해. 2012년에는 필히 그래야만 해!!

 

 

책의 뒤쪽으로는 앞에 한글로 실렸던 서른 편 이상의 시가 모두 영역되어 있다. 처음에 책을 펼쳤을 때 영어로 쓴 쪽이 먼저 보여서 책을 잘못 산 줄 알고 깜짝 놀랐더랬다. 다행히! 한글 시가 먼저 수록되어 있다. 하마터면 펼쳐보지도 못하고 덮을 책이 될 뻔 했지 뭔가.

 

고은 시인의 시는 전 세계 25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고 소개되어 있다. 세상에! 정말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계셨구나. 해마다 노벨 문학상에 이름이 거론되는 게 우연은 아니었나 보다. 그냥 시도 그렇지만 아이의 마음을 담은 이 동시들이 외국에서는 어떻게 읽힐까 궁금해진다. 시인의 아이가 어렸을 때라면 정말 오래 전 일이건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여전히 예쁘고,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또 따뜻하기만 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읽은 책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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