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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야, 미안해!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68
원유순 지음, 노인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동화집이다. 모두 서로 다른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아이다운 천진함과 철없음, 순수한 마음과 모난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바로 우리 주변의,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적 모습들이다.
첫번째 이야기에는 도도라는 이름의 진돗개가 등장한다. 순종 진돗개가 흔치 않기 때문에 잡종으로 의심을 받고 있지만 따스한 마음으로는 누구보다 순종인 도도였다. 오소리가 잠깐 등장했는데, 오소리가 어찌 생긴 동물인지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언뜻 '너구리'가 떠올랐는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검색을 해보니 족제비 과에 속했다. 음, 오소리 아저씨 그림책을 먼저 읽었으면 바로 알았으려나...
두번째 이야기에선 앙심을 품은 학급 친구에게 복수를 하려고 벼르던 녀석이 너무 쉽게 마음이 풀어지는 나름의 '반전'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아주아주 이해가 잘 되었다. 못 견디게 미운 녀석이라도 나를 필요로 하거나 뭔가 친절한 모습이 보이면 금세 마음이 풀어지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내 경우에는 가족 사이에서 좀 자주 있었던 일이다.^^
세번째 이야기가 표제작인 '고양이야, 미안해!'다. 아파서 끙끙대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지만 무섭고 더러워서(꼬리에 똥이 묻어 있었다.) 차마 만지지 못한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다. 동물병원에 신고했지만 데리고 오라는 소리에 식겁했고, 동물을 사랑한다고 자랑하는 절친에게 부탁해 보았지만 역시 찬 바람만 쌩쌩. 친언니조차도 신경쓰지 말라는 소리만 듣는다. 마음은 쓰이지만 몸으로 움직일 엄두가 안났던 그 모습에 언니가 제대로 한 방을 먹인다. '죽은 휴머니스트'라는 것이다. 어려운 표현일 수 있는데 친절하게 아이의 목소리로 설명도 해준다. 행동은 하지 않고 동정만 하는 사람! 문득,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많은 경우 죽은 휴머니스트가 되곤 하니까. 고양이야, 미안해!라는 말은,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많은 사례에서 자주 하게 되는 말이었다. 나야말로 정말, 미안한 일이다.
네번째 이야기는 미국 사람과 결혼한 작은 아버지의 아들, 그러니까 사촌동생이 한국에 오면서 부딪치는 문화충격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하고 사소한 오해가 마음의 금이 된 이야기. 그렇지만 역시나 사소한 반전으로 훈훈하고 재밌게 끝나버렸다. 더불어 재채기에 대한 나라별 반응이 다른 현상에 대해서 알 수 있어서 또 재밌었다. 오호라, bless you!!!
다섯번째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우아하고 고상한 우리 할머니'라는 제목인데, 어려서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꿈을 접어야 했던 외할머니가 노년에 작품 전시회를 갖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딸인 엄마도, 그리고 손녀딸인 주인공 아이도 모두 할머니가 무슨 그림을 그릴 수 있느냐며, 할머니의 꿈과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우습게 여겼다. 다행히 그런 시각은 수정되지만, 이런 실례를 우리들도 많이 저지를 것이다. 편견을 갖지 않고 존중하는 법을 책을 통해서 어린이 친구들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에는 이주 노동자가 등장한다. 우리한테 익숙한 풍경은 악덕 고용주에게 실컷 이용당하고 급여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거나 몸이 상하는 모습이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선의를 등쳐 먹은 그런 노동자가 나온다. 물론, 그에게는 사정이 있었고, 그 사연은 참으로 눈물겨운 것이었다. 딱히 어떤 해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야기도 그래서 조금은 어정쩡하게 끝난다. 무책임하다기보다는, 그 다음 문제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몫이라 생각했다. 저럴 수 있지. 저럴 경우 어찌 해야 하는가...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담다 보니 통일성은 없다. 그래도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아내었고, 부족함이 많지만 거기서 한 걸음 성장해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인물들이 나와서 마음이 편했다. 나라면 어땠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줄 수 있어서 또 좋았다. 답을 내리기 어려워도, 때로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묻는 것을 마다해서는 아니 될 테니까.
덧글) 27쪽에 오타가 있다. 밑에서 네번째 줄에 '지호은 반에서 싸움짱이다.'>>>>지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