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1503 호/2011-12-19

좋은 소음도 있다? 백색소음 효과

소음이란 듣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말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듣는 사람의 처해진 환경이나 심리상태에 따라서는 그 소리가 방해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일례로 애타게 보채고 있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엄마나 아기에게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소리겠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시끄러운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그런데 이런 소음 중에도 좋은 소음이 있다. 어떤 소음이 좋은 소음일까?

소음의 유형에는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칼라소음(color noise)’과 비교적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white noise)이 있다. 백색음이란 백색광에서 유래됐다.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된다.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의 자연 생활환경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생활환경에 따라 주변소리가 다르듯이 백색잡음도 다양한 음높이와 음폭을 갖는다.

우리 생활주변에서 들리는 백색음으로는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다. 이들 소리는 우리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이기 때문에 이러한 소리가 비록 소음으로 들릴지라도 음향 심리적으로는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듣게 된다. 또 항상 들어왔던 자연음이기 때문에 그 소리에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연의 백색음을 통해 우리가 우주의 한 구성원으로서 주변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호감을 느끼게 돼 듣는 사람은 청각적으로 적막감을 해소할 수 있다.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백색소음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반적인 소음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우리는 다년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음도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먼저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소음을 평상시 주변소음에 비해 약 10데시벨(dB)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냈더니 근무 중 잡담이나 불필요한 신체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한 달 후 백색소음을 꺼버렸더니 서로들 심심해하면서 업무의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다. 즉 백색소음이 없는 것보다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시켰다.

여름에 해변가에서 텐트를 치고 있노라면 불어오는 해풍에 시원하고 쾌활한 느낌이 들지만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깊은 잠을 자게 된다고 한다. 특히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소리를 CD에 수록해 팔고 있는데, 도심의 슬리핑 캡슐 등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때 숙면 유발용으로 아주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는 파도소리에 숨겨져 있는 백색소음이 인간 뇌파의 알파파를 동조시켜 심신을 안정시키고 수면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의 백색음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면 학습효과가 크게 개선된다. 남녀 중학생을 대상으로 서울 노원구 소재의 한 보습학원에서 영어단어 암기력 테스트를 실시했다. 일상적인 상태와 백색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상태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고교 2학년 수준의 영어단어를 5분간 암기하도록 했는데, 평소에 비해 학업성취도가 35.2%나 개선됐다.

또 다른 실험으로 독서실에서 백색소음을 들었을 때 집중력이 얼마나 개선되는가를 알아봤다. 각자의 책상 위에 백색소음이 발생되는 장치를 부착하고 공부하면서 옆 좌석에 고개를 돌리거나 주변에 관심을 갖는 횟수를 시간 단위로 비교 파악했다. 이 경우에도 백색소음이 들렸을 때 주변에 관심을 갖는 횟수가 약 22% 정도 줄어들었다.

실험 결과를 좀 더 명확히 입증하기 위해 백색소음을 들려주었을 때의 뇌파반응을 검사해 봤다. 한 의과대학의 도움을 받아 피 실험자에게 백색음을 들려주고 뇌파를 측정했더니 베타파가 줄어들면서 집중력의 정도를 나타내는 알파파가 크게 증가했다. 이는 뇌파의 활동성이 다소 감소되고 심리적인 안정도가 크게 증가했다는 의미다.

또 다른 실험으로 우리 주변의 자연음을 들려주었을 때 집중력의 변화를 관찰했다. 5분 단위로 주변의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주고 10대, 20대, 30대 등 연령대 별로 공부 중 신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10대와 20대 피 실험자는 약수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소나기 내리는 소리 등 비교적 넓은 음폭의 소리를 선호했고, 이때 공부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한편 30대는 작은 빗소리나 큰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 중음 폭의 백색소음을 더 선호하면서 업무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한편 생후 3~4개월 미만의 신생아가 우는 경우 태아시절에 들었음직한 심장박동소리, 숨 쉬는 소리, 엄마 아빠의 목소리 등을 녹음해서 들려준다면 과연 아기가 안정을 취할까? 하지만 실험 결과 아기는 점점 더 불안해하고 엄마의 품을 찾아 더 애타게 울먹일 뿐이었다.

이때 TV의 빈 채널에서 나오는 쉬이익 거리는 소음을 들려주면 울던 아기가 금방 울음을 멈추고 안정감을 찾는다. 어떤 부모는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울던 아기가 안정을 찾았다고 하고, 부드러운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리면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면 아기가 금방 밝은 표정을 짓는다고 한다. 신생아를 달래는 이런 소리 역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실생활에 활용하고 있는 분야도 있다. 소음으로 소음을 잡아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것이다. 백색소음은 넓은 음폭을 가지기 때문에 목소리를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은행이나 보험사 등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쓰일 수 있다. 즉 개인적인 주민등록번호나 계좌번호 등의 숫자를 말하게 되면 옆 사람이 알아듣고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이때 백색소음이 일정한 레벨로 들리게 하면 옆 사람은 숫자의 발음 차이를 잘 구분할 수 없게 사운드마스킹(sound masking)이 된다. 때문에 목소리를 통한 개인정보의 유출이 보호될 수 있다.

이렇듯 듣는 사람에게 별 도움이 안 되는 소음이라도 백색소음은 우리 생활 주변의 자연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에 건강에 좋은 소리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가 첨단화될수록 사회 요소요소에 백색소음의 수요가 점차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의 오감 중에서 청각과 촉각을 만족시키는 백색소음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진행돼 인간에게 두루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길 바란다.

글 :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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