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인이 남편과 교도소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차가운 입맞춤을 한다. 짧은 면회 시간, 남편은 이미 사형 판결이 났으니 무의미한 노력을 기울이지 말라고 하지만 아내는 아직도 포기할 수가 없다. 끝까지,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겠다고 했다.

 

여자는 전직 스트리퍼 댄서, 남자는 대재벌 가의 외동 아들이다. 꽤 엉망진창 생활을 했던 이 도련님이 바에서 이 여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결혼에 골인한다. 당연히 집안에선 난리가 났다. 여자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이 대단한 가문에서 고용인들에게조차도 무시를 당하기 일쑤지만 특유의 강인함을 펼쳐서 기죽지 않고 잘 살아보려고 결심한다. 집안의 실권을 쥔 시아머지는 류머티즘으로 내내 가택 생활 중이긴 하지만 꼬장꼬장함만은 잃지 않고 있었다. 노인은 아들에 대한 금전적 지원을 모두 중단하겠다고 선포하기까지 했지만, 당찬 이 아내는 자신이 돈을 벌어서라도 가족을 부양할 생각을 한다. 물론, 전직으로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건이 있던 날은 남편의 누나인 시누이 부부와, 남편과 전에 사귀었던 친척 여자 아이, 그리고 집안의 주치의와 전속 변호사까지 모두 모인 날이었다. 우스개 소리로 오간 아버지를 죽이고 재산을 나눠 갖자는 얘기를 들으며 아내는 역겨움에 실신해 버린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부인의 임신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돌릴 기회를 얻었다고 여긴 남편은 별채의 아버님께로 가고, 한 밤중에 깨어난 부인은 그 밤에 아버님이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아버린다. 남편이 그랬거나, 혹은 남편이 가장 의심을 받을 거라고 여긴 아내는 살해 도구와 열쇠의 지문을 지우고 다시 방으로 돌아오지만, 수사망이 좁혀오는 것을 피해갈 수 없었다. 심지어 변호사들마저 불리한 증언을 계속했고, 아내는 새로운 변호사를 통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증인을 법정에 내세우며 반격을 가한다.

 

작품은 꽤 느리게 진행됐고, 분명히 심각한 반전이 있을 거란 짐작에 꽤 주의를 기울이며 읽게 만들었다. 더운 여름인데 에어컨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대재벌 가에도 에어컨이 없을 정도면 꽤 옛날 작품이겠거니 했다. 아닌게 아니라 작품이 발표된 것은 1963년이라고 한다. 책의 첫 머리에 이 작품의 성분 함량표가 제시되었는데, '고전의 반열'에 속하느냐는 질문에 5점 만점에 5점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간 50년 정도면 고전이라고 할 만하다. 대반전도 5점이었고, 속도감은 3점, 캐릭터에 3점, 논리정연에 4점, 선정성에 1점이다. 대반전과 속도감, 캐릭터, 선정성 점수에 모두 동의한다. 논리정연은 다소 못 미치는 3점 정도라 생각하지만.

 

작품은 확실히 꽤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반전의 종류는 내가 생각했던 류가 맞았지만, 방향은 달랐다. 잘못 짚은 게 오히려 반가운 경우였다. 이런 느낌의 반전을 다른 작품에서 이미 만났기 때문에 짐작 가능했지만, 작품이 창작된 연도를 살핀다면 아마도 이 책이 더 먼저 발표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의 값어치가 떨어질 수는 없다.

 

난 이렇게 영화로는 표현하기 힘든, 소설로는 얼마든지 표현 가능한 이야기들이 참 좋다. 때로 영상을 만나서 더 좋아지는 작품들도 있지만, 문자의 영역에서 가능하거나 혹은 더 자유로운 것들이 있다는 것이 묘한 쾌감을 준다.

 

현재 서술하고 있는 관점과, 과거의 이야기가 교차 진행되고, 그 말투들이 꽤 느리게 들리게 때문에 속도감은 현저히 떨어지지만,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잦은 오타와 비문들이다. 문장들이 무척 부자연스럽고 잘 쓰지 않는 한자어를 매끄럽게 바꾸지 않은 것들이 불편했다.

 

67쪽 두 사람 점차 그런 일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76쪽 우물 쪽으로 가시면 안 돼요, 도련님. 우물을 위험합니다.

77쪽 보지 않으려도 그녀의 시선은 꼭 그쪽으로 가곤 했다.

160쪽 무슨 일이 있어서 져선 안 된다.

165쪽 그녀는 프랑스식 창문을 열려 와들와들 떨리는 손을 뻗으며 다시 한 번 돌아보았으나, 의사는 이미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201쪽 별채와 그 주변에는 아직 경찰 쪽 사람들이 아직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213쪽 서류를 든 오가타 경위는 만점 받은 성적표를 자랑하지 않으려 애쓰는 우등생처럼 침착성이 없었다.(침착한 게 아니라?)

216쪽 뭣보다도 히다 씨가 별채에 들어가려도 열쇠가 없습니다.

 

반면 표지는 아주 잘 뽑았다. 표지의 분위기가 주는 느낌이 작품 속에서 기대되는 반전을 더 잘 끌어내었고, 더불어 시공사의 미스터리, 스릴러, 경계소설 전문 브랜드인 '검은숲'이라는 이름도, 또 로고인 검은새의 모습도 이런 책의 분위기에 아주 걸맞아 보인다.

 

작품의 해설을 보니, 남자 작가일 거라고 여겼는데, 작가는 여자였다. 두 명의 전남편과의 사이에 꽤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다. 검색하면 혹 나오려나? 그나저나, 작가는 1985년에 만취 상태에서 실족사했다고 한다. 어이쿠! 그의 미스터리한 작품 세계만큼이나 극적인 주문이다. 오래 살았더라면 좀 더 재미난 작품을 많이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기) 띄어쓰기 안 했다고 검색이 안 되는 건 너무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