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22 - 임금님 밥상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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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호의 선장으로 오랜 시간 항해를 하다 보니 팬도 많이 생겼고, 그 바람에 팬들로부터 받는 편지와 선물도 많을 것 같다. 이번 편에서는 그런 편지와 선물 등이 잠시 소개되었다.

 

 

첫번째 사진은 독자가 보낸 진정 어린 편지였으며. 두번째는 군복무 중 패러디 작품으로 만든 '식충'이란 작품집이고, 세 번째는 독자가 그린 캐리커쳐다. 이런 선물들을 받으면 작품 활동에서 오는 고단함을 씻어낼 수 있는 좋은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나 역시 마음으로는 그런 고마움의 박수를 함께 보태어본다. 

앞쪽에는 항상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요리들을 실연해 본 장면들이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찍은 사진, 혹은 재연하느라 직접 만들어본 음식 등등... 게 중 호박잎쌈과 보리 쌈밥이 배가 부른 상태에서 보았음에도 식욕을 돋우었다. 카메라를 언니가 빌려가는 바람에 핸드폰으로 찍어서 화질이 좀 구리지만 여전히 사진을 보니 침이 꼴깍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병원의 만찬'이다.

 

뇌수술 후 신경을 다쳐서 성욕이 많아져서 여자만 보면 무조건 덮치려는 환자와 식욕이 왕성해져서 입원 한 달 만에 체중이 20kg이나 불어버린 남자, 위아래를 구분 못하고 깍듯이 존댓말만 쓰게 된 남자, 후각이 없어져서 미각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남자, 거식증에 걸린 스님까지... 여러 인물들이 한 병실에서 만났다. 맛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삶의 의욕이 오죽할까. 그런 그들이 '수요일'에는 병원 식사를 거르고 몰래 모여서 집에서 들여온 별미로 일주일을 기다리는 낙을 채운다. 이때 등장한 요리가 호박잎쌈이었는데 흑백으로 보아도 여전히 침이 주르륵!!! 그렇지만 미각을 잃은 할아버지는 이 좋은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자 비장의 무기 '오이소박이'가 등장한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아삭!하고 씹히는 소리가 입 안에 생기를 돌게 한 것이다. 아, 소리만 들어도 그 맛이 떠오른다. 역시 이 밤중에 침이 꼴깍! 지난 여름 한참 다이어트 할 때 오이소박이가 있었는데, 그 무렵에는 후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오이 비린내를 견디지 못해 소박이를 멋지 못했다. 아, 먹고 싶다. 엄니 말씀으로는 지금은 비싸서 못해 먹는다고.... 슬프다!

 

그밖에 두릅을 가지고 상상 음식도 만들고, 도다리 쑥국도 등장하고, 야식으로 닭발도 등장했다. 닭발은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이니 탐나지 않았지만, 설명하는 매운 맛에 절로 미간이 움직인다. 매운맛은 혀가 느끼는 게 아니라 뇌가 느끼는 통증이라고 하는데, 우린 너무 자극을 좋아한다.

 

 

이렇게 맛있는 메뉴들이 등장하니 일주일이 모두 수요일일 수밖에! 금요일을 기다리는 직장인의 마음보다 더 간절할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는 스님의 퇴원 전 송화밀수 한 잔으로 건배!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도 평소 좋아하던 별미 이야기를 곁에서 해주면, 자연반사적으로 정말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의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게 회복을 당겨주는 역할이 된다면 얼마나 고마운 처방인가.

 

작품 후기를 보니 대형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미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신경을 다친 환자들 얘기가 나오는데, 맛을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삶은 상상으로도 끔찍하다. 입맛이 살맛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나로서는 지극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아침에 먹을 굴비 한 마리 생각에 다시 침이 꼴깍!

 

취재 기간에 뇌수술 현장을 직접 참관했는데, 수술이 끝나고 수술을 집도한 박사님이 놀라셨다고 한다. 기자나 의대생들도 개봉된 뇌를 직접 보면은 구역질에 기절까지 하곤 하는데, 허영만 화백은 사진도 찍고 중간 중간 수술 용어도 받아적었다나. 그동안 식객 취재를 위해 도살장 같은 곳도 직접 다니면서 내성이 생긴 덕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간적인 감성이 메마른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부분이 지극히 인간적으로 보였다. 샘의 감성은 여전하시니 걱정 무, 이상 무!!

 

두번째 이야기 '올갱이 국'에서는 성찬과 진수의 러브러브가 꽤 로맨틱하게 진행되었다. 취재 나왔다가 본의 아니게 야영을 하게 된 두 사람. 때는 여름이고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별 다섯 개 호텔보다 별 억만 개 노상 호텔이 더 좋다는 진수가 참으로 예뻤다. 밤바람을 맞으며 와인 한 잔씩 기울이고 행복이란 놈이 오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두 사람,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본인에게 있던 추억을 얹어서 먹는 음식이라면, 고유의 맛 이상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올갱이 편에서는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문학적 감수성을 곧잘 자극하시는 허영만 샘, 역시 짱짱하십니다.

 

 

방배동에 집을 구하려다가 삼선동으로 옮긴 성찬이의 새집 전경이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더 정감이 간다. 작가의 말처럼 곡선이 없어지고 자꾸 직선만 늘려가는 세태가 나도 못마땅하다. 골목이 사라지고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도 점차 사라진다. 재개발이 되고 나면 원래 살던 주민들이 다시 입주할 확률은 17%밖에 되지 않으니, 그들은 정주고 살던 곳을 떠나 이방인이 되어야 하고, 정감 어리던 동네는 투기꾼들의 먹이가 되어버린다. 안타깝고 괴로운 현실이다.

 

세번째 이야기 '은어 수박 향기' 편에서는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에서 설 곳 없는 우리시대 보편적인 가장의 이야기를 다뤘다. 드라마에 심취해 남편은 안중에도 없는 마누라의 행태는 독자의 눈으로도 얼마나 밉살스럽던지! 삶의 주어를 '아이I'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에 크게 공감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번 이야기에는 시골 폐교를 사진 전시관으로 쓰고 있는 실제 인물이 등장했다. 그가 12년 동안 찍은 독도 사진은 그림 상으로도 흠뻑 취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처음 정착했을 때는 긴 겨울과 긴 밤이 지나치게 외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는 그의 말에 조금은 시큰해진다. 그 외로움이 사무쳐서 촛불을 켰다는 사람. 느림의 상징 촛불. 아주 좁은 공간만큼만 비추니, 넓어 휑한 느낌을 지워주었을 것이다. 지혜롭고 로맨틱한 위로법이다.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예술가가,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장사꾼이 되어서 내려가더라는 이야기에 섬뜩해진다. 그런 지경에 이르기 전에 내려놓는 삶을 꾸린 그의 용기에 박수를!

 

금슬 좋은 부부가 한 명은 도시를 좋아하고 한 명은 시골을 원해서 인생 후반기에는 주말 부부로 만나더라는 실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같은 이유로 원한다면 침대를 따로 써서 잠자리를 편하게 갖는 부부도 이해가 된다. 서로 합의가 된다면, 그 쪽이 부부의 사이를 더 원만하게, 더 애틋하게 만들 것도 같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은어가 주제인데, 강에 정착한 은어가 매일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끼가 붙은 돌 주위 1m 안팎 구역을 갖는데 이를 '먹자리'라고 한단다. 먹자리를 확보한 은어를 먹자리 은어라 하고... 독점욕이 강한 성질을 이용한 낚시법도 함께 소개되었고, 환경과 습성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은어들도 함께 소개되었다. 작품의 특성상 요리의 재료와 맛, 효과와 역사까지 장황하게 설명하기 쉬운데, 그걸 적절히 배치해서 주제와 부합되게 하고, 또 독자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과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작가의 내공에 늘 감탄하게 된다. 여기서도 어깨가 짓눌린 가장에게 좋은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으니 독자의 가슴도 훈훈하다.

 

다음 이야기는 보리밥, 열무김치 편! 앞서 사진으로 선보였던 그 메뉴다. 꽁보리밥을 깡보리밥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깡'은 완전히, 전부라는 뜻이라 한다. 그래서 안주 없이 소주만 마시는 걸 깡소주라고 한다고... 호오~ 재밌는 우리말이다.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마지막 이야기 '갯장어' 편이다. 운암정 숙수가 등장해서 이번에도 밉상에 진상 짓을 했다. 여수 아주머니의 호된 호통이 참 시원했다. 맛을 품평해줄 상대는 모 기업의 회장님 한 분!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중간에서 잘 중재해 주었고, 맛의 편가름도 진정어리게 해주었다. 역시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분이다.

 

우리말로는 '갯장어 데침회'라고 써야 하지만 요리의 유래가 일본인인 까닭에 '하모', '유비끼'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햄버거가 햄버거로 불리듯이 일본식 이름도 때로는 유연성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 일단 경계부터 하게 되는 게 우리의 자연스런 반사신경이기는 하지만...

 

식객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여전히 궁극의 맛을 자랑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니 촛불 집회가 한참이었던 2008년에 연재된 내용인가 보다. 3년이 더 지나서야 읽게 되다니 내가 참 늦어버렸다. 이번에는 완결편까지 좀 달려보자. 쭈우욱!

 

덧글) 오타가 있다. 312쪽의 '전체요리'는 '전채요리'로 수정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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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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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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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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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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