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찰을 전하는 아이 푸른숲 역사 동화 1
한윤섭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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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역사 동화가 나왔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역사적 실체에 다가가는 것과 이야기가 주는 재미와 감동을 어떻게 엮어나갔을까 궁금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대성공이다!

 

주인공은 현재 보부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어릴 적 최초의 기억은 열 세살 때부터다. 무척 늦은 나이 같지만, 그 나이 때에 겪었던 사건이 워낙 큰 일이었던지라 다른 기억들에게 자리를 비키지 않는다.

 

그가 아직 열 셋이었을 때, 그리고 그의 보부상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부터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는 북한산의 어느 노스님에게서 서찰을 한 장 전해 받고, 그 서찰을 전하기 위해서 전라도로 가야 한다고 하셨다. 엄청 중요한 서찰인지라 아들에게조차 누구에게 가는 것인지 자세한 내막을 알리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어린 아들도 그 중요성을 짐작하고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수원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묶던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세상 천지에 홀로 떨어진 아이의 두려움과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의지할 곳 없는 아이는 목표를 세워 달려나가야만 했다. 그 목표란 아버지께서 완수하지 못한 서찰을 전달하는 임무다.

 

 

 

 

아이는 수원에서 오산, 평택, 아산까지 이른다. 서찰은 한문으로 적혀 있었고 영리했던 아이는 서찰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서찰 속 10글자를 끊어서 알아낸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공짜란 없다-라는 아주 중요한 명제를 온 몸으로 깨닫는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대가를 지불했고, 값을 지불한 글자는 온전히 아이의 것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값을 요구한 어른들이 무척 야속해 보였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가져가는 깨달음이 더 컸기에 오히려 어떻게 전개될지 더 흥미진진하게 보게 되었다.

 

더불어, 아이가 자신의 값어치로 흥정을 하게 되었을 때는 신이 나기까지 했다. 아이는 남다른 재주가 있었고, 그 재주가 사람들에게 값을 지불해도 좋을 충동을 일으켰다. 아이는 많은 것을 배웠고, 배운 그 이상으로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었다.

 

작품 속 배경이 '동학농민운동/전쟁/혁명'인 까닭에 일본군과 청나라 군이 싸우는 대목이 나온다. 전력적으로 일본군이 훨씬 우세했고, 실제로도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던 그 싸움에서 사람들은 동학농민군을 편들기도 하고, 그들의 죽음을 애달퍼 하기도 했지만, 누구도 임금과 관군이 옳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부분이 참 쓰디 썼다. 제나라 백성을 제압하기 위해서 외국 군대를 툭하면 끌어들이는 임금이라니, 어느 백성이라고 그런 임금과 그런 명에 움직이는 관군을 역성들 것인가.

 

주인공 아이가 글자를 알아내기 위해서 거래를 한 사람 중에는 양반 도련님도 있었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열 셋 동갑이었고, 세상이 변해가는 만큼 그도 다른 양반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올곧이 양반의 허영을 벗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그 편이 더 설득력 있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도가 사라진 뒤에도 양반과 노비의 차이는 오래도록 하늘과 땅 만큼의 거리가 있었으니까.

 

아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대목에서는 무척 감동스러웠다. 열 셋 나이에 처음으로 물에 비친 제 얼굴을 바라보았던 아이, 날마다 장돌뱅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고된 일상을 살았을 이 아이가 어느 대목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았겠는가. 비단 아이뿐 아니라 그 시절 힘없고 가난한 백성으로 살던 이들 중 누가 감히 행복이란 말을 입에 담으며 살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 아이가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감정을 전달하고 퍼뜨렸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살벌한 시대였고, 각박한 때였던 만큼, 인심도 그같은 세태를 닮아 있었다. 주막집에 어른 없이 아이 혼자 들어서면 주모들은 동냥하는 아이가 왔나 해서 경계하는 모습부터 보였다. 아이가 돈을 내밀고 나서야 손님 대접을 해주곤 했다. 그렇지만 그들도 인정이라는 게 있었다. 일본군과의 전투가 있던 날, 주막을 나선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자 아이가 살아온 것만으로도 기뻐서 방값을 대신해주지 않았던가. 게다가 먼 길 떠나는 아이를 위해 따뜻한 옷을 준비해 준 이들도 있었다. 그 고마움을 아이는 분명 갚았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말이다. 때마침 아이 역시 보부상으로 성장했으니, 그 길들을 다시 되짚으며 고마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아이는 제 직업과 소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또 행복해 했을 것이다. 넘겨 짚는 이야기건만, 그렇게 생각하니 독자의 마음도 훈훈해진다.

 

 

 

키가 작았던 녹두장군 전봉준. 허나 큰 마음과 의젓한 기개를 가졌던 그의 영혼은 그림처럼 거인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배신을 당할지라도 스스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역사의 큰 별 하나. 이미 그가 관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했다는 역사적 진실을 알고 있기에, 아이의 임무가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어쩌다가 그런 결과를 낳았는지, 또 아이는 그런 결말을 어찌 받아들일지 자꾸 책장을 재촉하게 했다. 바쁜 마음을 달래며, 이야기는 가장 아름답게, 그리고 완성도 있게 마무리 된다.

 

 

책의 마지막에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같은 시간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아이가 서찰을 전하느라 이동했던 경로와 동학농민군의 진로를 지도에 담아 설명해 주었다. 어린이 친구들의 이해를 돕는 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168쪽에 옥의 티가 하나 있다. 정약용이 지은 '애절양'의 일부에서 '쌀 한 톨, 배 한 치도 바치는 일 없으니' 라고 썼다. 원문은 비단이지만 '베'로 쓰는 쪽이 세금의 의미로 더 낫다고 동의한다. 하지만 '배'가 아니라 '베'라고 써야 맞다. ^^

 

책이 재밌어서 버스 안에서도 읽으면서 귀가했는데, 대학로를 지날 무렵 연극 포스터 '수상한 궁녀'를 보았다. 작가 한윤섭의 작품을 연극으로 올린 게 아닐까 궁금해졌다. 작품 목록에 흥미를 돋우는 제목들이 꽤 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작품들을 찾게 만들었으니, 이야기의 힘이 참으로 컸다. 게다가 감동 주머니까지! 이만하면 아주 흡족한 독서가 아닌가. 고맙고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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