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의 색깔 하면 빨간색이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빨간색이 아니다. 근육도 고유의 색깔을 갖는다. 붉은색 계통이지만 연한 핑크빛에서 검붉은색까지 일련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한 위치의 색깔을 나타낸다.
근육이 붉은색을 띄는 이유는 피 때문이다. 특히 혈액 성분의 적혈구는 대부분이 헤모글로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헤모글로빈은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근육의 붉은색이 유지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근육의 붉은 색은 적혈구나 헤모글로빈 때문이 아니라 미오글로빈 때문이다. 헤모글로빈이 혈액 속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기능을 가진다면 근육에서는 미오글로빈이 산소 운반을 책임진다.
헤모글로빈이 붉은색을 띠는 이유는 간단하다. 철분에 산소가 합쳐진 꼴이기 때문이다. 못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깨끗한 못을 마당에 내어 두어 비를 맞고 햇볕을 쐬면 녹이 슨다. 처음에는 진한 청색을 띠던 못이 시간이 지날수록 녹이 생겨 붉은 빛으로 변한다. 이렇듯 철분에 산소가 합쳐지면 붉은색을 띤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어린 아이들이 추운 겨울날 문밖으로 나가 한동안 활동하면 입술이 파래진다. 보통 추워지면 입술이 파래진다고 한다. 산소를 많이 가진 헤모글로빈은 마치 녹슨 못과 같아 붉은 빛을 띠지만 산소가 모자란 헤모글로빈은 붉은색에서 청색 쪽으로 색깔을 변형시킨다. 마치 녹슨 못이 다시 새 못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근육은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 때문에 붉은 빛을 띤다. 미오글로빈은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으로부터 산소를 받아 근육에 산소를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산소를 많이 가진 근육들은 자연스럽게 더 붉은색을 갖기 마련이다. 그래서 근육이 더 붉다는 뜻은 더 많은 산소를 가졌거나 더 많은 미오글로빈을 가진, 또는 더 많은 미오글로빈들이 최대한으로 산소를 함유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
이로써 연한 핑크빛의 근육과 검붉은 근육들은 서로 다른 미오글로빈의 양과 산소의 양을 가졌을 것이라는 자연스런 가정이 설정된다. 그렇다. 근육의 색깔은 산소를 가진 미오글로빈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연한 핑크빛의 근육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가장 흔한 예로는 닭고기가 있다. 이보다 조금 더 붉은 고기로는 돼지고기를 들 수 있다. 돼지고기보다 더 붉은색의 고기로는 소고기가 있다. 직접 볼 경우는 드물지만 고래 고기는 아주 붉다. 붉다 못해 검붉다. 미오글로빈이 무지하게 많다는 의미다.
고기, 즉 근육이 붉다는 의미가 산소를 많이 함유할 수 있다는 의미라면 위의 동물 중 어떤 동물이 근육에 산소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까? 그렇다. 고기 색깔이 검붉은 고래다. 고래는 포유류임에도 불구하고 잠수로 수 십분 이상을 버틸 수 있다. 숨을 쉬지 않고도 이미 근육 속에 저장돼 있는 산소를 이용해 오랜 시간동안 잠수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닭은 숨을 못 쉬게 하면 빠른 시간 안에 기절한다.
인간은 다양한 색깔의 근육을 갖는다.
인간도 다른 포유류들과 유사한 근육 색깔을 갖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돼지와 소고기 색깔의 중간 정도다. 물론 인간들은 부위에 따라 다른 색깔을 보이기도 한다. 산소가 많이 필요한 부위의 근육은 더 붉은색을 띄며 산소가 덜 필요한 부위의 근육은 핑크빛 쪽으로 치우쳐 보인다.
사람들 간에도 서로 다른 근육의 색깔을 보인다. 산소를 많이 이용하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은 근육이 붉고 산소를 덜 이용하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은 핑크빛을 보인다. 산소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마라톤 선수들은 붉은색의 근육을 가진다. 반대로 산소를 이용하지 않고 단번에 힘을 발휘하는 근육을 가진 사람들은 핑크빛의 근육을 가진다. 대표적인 예가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이다. 마라토너 이봉주의 근육이 100m 세계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의 근육보다 붉다는 의미다.
밝은 핑크빛의 근육은 힘을 내는데 적합하고 진한색의 근육일수록 지구성에 유리하다. 밝은색 근육은 힘을 내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큰 덩어리를 유지한다. 여러 가닥의 고무줄이 한꺼번에 뭉쳐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근육이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많은 고무줄들을 한꺼번에 잡아당겼다가 튕겨 주는 이치다. 그러나 쉽게 지치는 단점이 있다. 반면 진한색의 근육은 쉽게 피로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진다. 근육이 가진 산소를 이용해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힘을 내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때문에 지구력이 강한 근육은 얇고 가늘다. 이봉주와 우사인 볼트의 근육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림 1] 밝은 핑크빛의 근육은 순발력과 파워가 강하고 진한 붉은빛의 근육은 지구력이 강하다.
우사인 볼트(좌)는 밝은 핑크빛 근육의 소유자, 이봉주(우)는 진한 붉은빛 근육의 소유자. 사진 출처 : 동아일보
근육의 색깔은 사람들 간에도 조금씩 다르지만 신체 부위별로도 조금씩 다르다. 다리 근육과 손 근육, 안면 근육의 색깔은 서로 다르다. 허리와 다리 근육의 색깔은 진한 편이고 안면근육은 밝은 편이다. 기능도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허리 근육과 목 근육은 자세를 지속적으로 곧게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때문에 계속적인 긴장이 필요해 금세 피곤해지면 안 된다. 그래서 붉은 계통의 색깔을 보인다. 하지만 안면 근육은 지구력이 필요하지 않아 밝은색의 근육을 가진다.
근육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 가끔 궁금하다. 나도 이봉주나 우사인 볼트처럼 될 수 있을까. 답은 ‘그럴 수 없다’. 이들은 자신의 근육 색깔을 가지고 태어났다. 운동선수는 타고난다는 말은 이 때문이다. 그럼 또 궁금하다. 후천적인 노력으로 개조할 수는 없는지 말이다. 이에 대한 답 역시 ‘그럴 수 없다’이다.
근육의 색깔은 근육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경이 정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오글로빈이 많은(=산소를 많이 가진, 지구력이 강한, 비교적 얇은) 근육은 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대뇌로부터의 운동신경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경을 바꾸면 가능할지 또 궁금해진다. 그렇다. 신경을 바꾸면 근육은 바뀐다. 그렇다면 신경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 부분이 바로 ‘유전’이라는 것이다.
어떤 근육이 만들어질지는 바로 어떤 신경을 가지고 태어나는지에 달렸다. 즉 훈련, 또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도 근육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때문에 100m 달리기와 마라톤에서 함께 금메달을 딸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 : 이대택 국민대학교 체육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