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재미있는 일을 할 때나 매년 12월이 되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고 인식한다. 흘러간 물리적 시간의 길이를 실제보다 주관적으로 과소 추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 지속에 대한 인식은 주로 뇌의 기저핵이나 두정엽과 같은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만일 시간 흐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물리적 시간인식을 담당하는 뇌 센터라고 간주되는 기저핵과 두정엽 등의 통제만 받는다면 사람들이 시간 흐름을 인식함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다른 경우가 많다.
한 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두 사람이 마주 보는 상태로 실험에 참여한 피험자는 상대편 사람이 친절하고 미소를 짓는 경우보다 화내고 분노한 표정을 짓는 경우에 더 오랜 시간이 경과한 것으로 인식했다. 살아있는 거미를 동일한 시간동안 본 경우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꼈다. 거미를 혐오하는 사람은 거미에 대한 혐오감이 없는 사람보다 더 긴 시간 동안 거미를 봤다고 느낀 것이다.
다른 심리학 실험의 예를 살펴보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시간의 흐름을 알려 주지 않은 채 3분 동안 소리 듣기 실험을 실시했다. 컴퓨터로 울리는 ‘삐익-’ 하는 소리가 한 집단에는 5초에 한 번씩 울렸고 다른 집단에는 2초에 한 번씩 울렸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실험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흐른 시간이 몇 분 몇 초인지 추정하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 같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2초에 한 번씩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5초에 한 번씩 소리를 들은 사람들보다 더 긴 시간이 흘렀다고 추정했다. 사람들은 시간 흐름의 절대적인 양보다는 시간 흐름 내에 사건들이 얼마나 많이, 자주 발생했는가에 따라 시간의 흐름을 인식했다. 사건들이 더 많이, 자주 일어났으면 더 긴 시간이 흘렀다고 인식한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인간이 시간의 흐름을 절대적, 물리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정보처리를 해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인식함에 있어서 모종의 추가적인 정보처리를 해 주관적으로 느끼는 시간 길이 중심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을 채운 사건이나 대상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적 반응이 좋았는가, 싫었는가, 사건이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가 등이 우리의 시간 인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우리 뇌에는 두 종류의 시계가 있다.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고도 하루주기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바로 빛을 기준으로 삼는 ‘하루주기성 시계(Circadian clock)’가 있기 때문이다. 대개 정상적인 아이나 어른의 하루주기성 시계는 지구의 자전에 맞춰 24시간 11분(±16분) 경을 하루로 설정한다.
뇌의 또 다른 시계인 ‘시간간격 시계(interval timer)’는 짧은 시간동안 하나의 사건이 시간적으로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가를 잰다. 이 시계는 어떤 사건에 뇌가 반응할 때 뇌의 관련 부분들이 반응하는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뇌의 시간 담당 영역들에는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계(또는 메트로놈)가 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조합돼 리듬이 다양해진다. 결국 사람은 리듬의 변화로 시간의 변화를 인지한다.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에서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관계성과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생존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인지능력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물들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 관계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더불어 사물들이 서로 원인과 결과의 인과적 관계에 놓여 있음을 파악하거나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능력은 동물에게서도 어느 정도 나타난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점은 아마도 이런 시간적, 공간적, 인과적 관계성을 부여하는 능력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돼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관계성을 자기 나름대로 그럴싸한 에피소드들의 연결로 엮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를 엮는 구성적 능력도 있다.
자신의 경험적 에피소드들은 기억에 저장돼 있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에피소드에 대한 시간의 흐름을 인식함에 있어 물리적 시간의 흐름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기억’을 동원해 실제 시간 경과의 길이 판단에 적용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이 오랜 진화 역사 과정에서 적자생존하기 위해 획득한 일종의 적응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즉 한 달이나 몇 년과 같이 긴 시간의 흐름을 살아가는 우리는 물리적 ‘시간’ 그 자체보다는 그와 관련된 주관적 ‘기억’에 바탕을 두고서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 인식에 대한 정보처리 심리학 이론 중 하나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매년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은 다른 달보다 더 짧다, 더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는 것이다.
일정한 시간의 흐름을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데는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다. 그 시간 내에 일어난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얼마나 자주 일어났는가, 어떤 종류의 사건들이 일어났는가, 그 사건들이 자신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체험적 사건들인가, 그 사건들을 자신이 마무리 지었는가 아니면 끝내지 못하고 중단해야 했는가 등이 우리로 하여금 실제 시간 길이와는 다른 정보처리를 하게 하고, 다른 기억을 하게 한다.
12월, 해가 저물기 전에 여러 일들을 끝내고 마무리 져야 하는 시점이다. 오랜만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인사를 나누는 모임도 많다. 참석하거나 인사해야 할 일들,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시간은 제한돼 있다. 하지만 수많은 에피소드가 생기는 달이다. 제한된 시간 내에 여러 에피소드들을 압축해 정보처리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12월은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달로 인식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일들을 효율적으로 정보처리 하는 인지적 기술이나 전략(사회적 기술 포함)을 개발한다면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글 : 이정모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