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 전쟁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70
서석영 지음, 이시정 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생 학생들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모든 문장이 욕으로 끝난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문장 끝 뿐 아니라 사이사이에도 욕은 쉴새 없이 등장한다. 욕이 없으면 말이 되지 않을 것처럼 군다. 애석하게도 이런 현상은 초등학생으로 내려가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집에서 엄마 앞에서는 조신하게 굴어도 학교에 가거나 친구들끼리만 모이면 말씨가 크게 변하는 애들도 무척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아이들이 이렇게 욕을 달게 사는 것일까, 욕이라는 것이 또래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한 작가님에게 욕과의 전쟁을 시작한 어느 선생님 소식이 들려왔다. 현장의 모습을 제대로 관찰해서인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욕전쟁은 그야말로 생생 그 자체다. 실제 모습을 그대로 재현시켜 준 것도 놀랍지만, 이야기가 기승전결을 타고서 점점 극적으로 치닫고 올라가더니 아주 바람직한 방향에서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갈수록 태산인 내용들이 등장해서 어찌 수습할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는 '관찰'을 많이 하는 것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엉뚱이'로 통하는 지선이다. 같은 반에 짝꿍까지 되어버린 최시구는 다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힘 센 녀석인데 늘 욕을 달고 살아서 지선이가 인상을 찡그리는 아이이기도 하다. 여학생들 중에는 '흑장미파'의 두목으로 통하는 박채린이 최시구와 거의 맞먹는다. 모든 대화를 '존나'로 마무리 짓는 존나 종결자라고나 할까. 지선이는 어느 쪽에도 끼지 않으면서 친구들의 유치함을 비웃기도 하고 궁금한 부분이 생기면 열심히 관찰하는 그런 아이다.   



학생들의 욕 수준이 장난 아님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욕과의 전쟁을 선포하셨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욕 수호 전쟁에 돌입했다. 초반에는 투명의자 벌을 받았지만, 학생 하나가 벌 받다가 쓰러진 이후로는 자신이 사용한 욕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는 벌을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이것을 아예 '놀이'로 인식하고 즐기는 것이 아닌가! 안 되겠다 싶었던 선생님은 이번엔 그날 사용한 욕을 100번씩 써오는 벌로 바꾸셨다.  

가산점이랄까. 이자라고 할까. 욕을 자꾸 쓰다 보면 벌도 가중되어서 아이들은 팔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한다. 평소에는 그다지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창의성을 내보여서 가면 씌운 욕으로 근질근질한 입에 해방구를 달아주기도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부 고발자에 의해 선생님께 들키기 일쑤! 선생님이 단속법을 늘리면 늘릴수록 아이들의 잔머리도 고수가 되어간다. 심지어 '바보' 소리를 늘 달고 다니는 학급의 정겨운 친구 준기를 위해서는 '바보'는 욕 목록에서 빼달라며 단식투쟁을 하기도 한다. 이 아이들이 어디서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 게다가 이렇게 의리를 보이는지 신기하고도 기특할 지경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투쟁은 모두 나름의 이유와 합리성을 갖고 있었다. 각자의 의견을 전개하는 방식은 때로 비민주적이기도 하고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의견을 조율해 가며 합의점을 찾아가는 비민주성의 민주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성장하는 모습이랄까.  

학교 대회인 교내 피구 시합을 소재로 삼은 것도 탁월했다. 이웃 반과의 대항전에선 욕 대항전도 벌어졌지만, 어떡해서든 욕을 줄일려고 용을 쓰는 아이들은, 상대방의 도발을 무시하고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아 두 배의 복수를 해내는 지혜로운 모습도 보여준다. 아이 수준이라고 보기엔 지나칠 만큼 나쁜 잘못도 저지르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차린 다음에는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게 대견했다. 그것 제대로 못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던가.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에게 배워가며 성장하는 모습이 흐뭇했다. 그것을 교훈적으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재미난 이야기 속에 풀어낸 작가의 재주가 빼어나다. 피구시합의 결승전과, 학년이 올라 초등학교 최고 학년이 된 아이들의 모습까지 지켜보니 내가 키워낸 아이를 보는 것처럼 마음 속이 감동으로 차오른다. 이들이 함께 보여준 노력의 모습들을 어른들의 세계로 옮겨가면 어찌 될까 상상해 본다. 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방해도 많을 것 같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비슷한 성과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나름 핵심 얘기들을 피하면서 얘기하자니 설명이 어렵다. 책을 본 사람이라면 무엇에 찡한 감동을 느꼈는지, 어떤 결과를 더 보고 싶은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입버릇은 환경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아이의 언어습관과 부모의 언어습관을 비교해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이가 곧 자신의 거울이 되어줄 것이다. 요즘 크게 유행하는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은 무척 적절한 시점에서 적확한 표현으로 욕을 쓰기에 시청자로서 속이 시원해지는 효과까지 줄 때가 있다. 모든 욕을 싸잡아서 써서는 안 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욕이 욕을 부르고 무분별한 사용으로 고운 말을 해치는 힘도 있다는 것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혼란스러움을 잘 정리해주는 신호등이 되어줄 것 같다.  유익하고 무엇보다 재밌어서 적극 추천한다. 

 

익살스럽고 역동적인 그림이 무척 재밌다. 당찬 아이들의 개구진 모습과 잘 어우러진다. 이런 작품에 정적인 느낌의 그림이 들어갔다면 절대로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작가님들을 알게 된 것도 이 책이 주는 선물 중 하나다. 무척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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