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SION 과학

제 1488 호/2011-11-28

삼각팬티도 특허였다고?! 별난 발명이야기
“이거 또 오디션 열풍이구만! 매회 시청률이 10%를 훌쩍 넘는다던데? 우리는 뭐 색다른 거 없나?”

KHBS 제작팀의 분위기가 또 심상치 않다. 경쟁사들이 금요일 저녁에 방송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보고 있다. 이때 천진난만하기로 소문난 허특 PD가 자신만만하게 기획안을 내놓는다. 제목은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이다.

“‘슈퍼특허, 위대한 탄생’? 이거 뭐야? 이젠 경쟁사 프로그램 이름까지 따라해? 허 PD 자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여기저기서 이럴 줄 알았다는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오늘 허 PD 때문에 기획회의로 밤을 샐지도 모르겠다.

“예, 국장님! 발명이나 특허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려고요. 프로그램 제목은 뭐 바꾸셔도 될 것 같고요. (긁적긁적) 여하튼 발명이야기 재미있습니다!”
“뭐가 재밌다는 거야?!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재밌지,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발명을 알고나 싶어 하겠어?”
“아, 저는…. 그러니까 우리가 편하게 쓰고 있는 것도 특허 받은 제품이 많고, 또 특허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 이야기도 꽤 재미있어요.”

허 PD의 해맑은 표정에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던 김 국장도 두 손 들고 말았다. 우선 들어나 보자.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는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일반적으로 발명이나 특허라고 하면 전화기나 전구의 발명처럼 굉장히 거창하고 유명한 이야기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먹는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 또 일회용 밴드, 삼각팬티, 옷핀(안전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사용하는 것도 발명품입니다.
“그래? 아이스크림콘이나 도넛도 발명품이었어?”
“네. 원뿔형태의 아이스크림콘은 1903년 12월 13일에 이탈리아 사람인 마르치오니(Marchiony)가 특허권을 획득한 것인데요. 이 사람은 뉴욕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수레에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답니다. 처음에는 그릇에 담거나 종이에 둘둘 말아서 아이스크림을 줬는데 뒷처리가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와플조각 같은 빵 과자로 아이스크림 아래를 감싸는 콘을 생각해 냈죠. 마르치오니는 아이스크림콘에 대해서 곧바로 전매특허를 내고 아이스크림 세계에 새 역사를 열었던 거예요. 어때요? 다들 잘 모르셨죠?”

이이스크림콘처럼 간단한 것에 특허가 있을 줄은 잘 몰랐다. 하지만 특별한 사례 하나만 가지고 방송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김 국장은 다른 것은 없냐고 허 PD를 보챘다.

“물론 있죠! 삼각팬티와 일회용 밴드, 옷핀이 발명된 이야기들은 좀 감동적이에요. 우선 삼각팬티는 1951년 일본에서 특허출원 됐어요. 발명자는 놀랍게도 손자를 돌보던 사쿠라이 여사였어요.
“할머니가 삼각팬티를 발명을 했다고? 왜?”
“사쿠라이 여사는 늘 손자를 돌보고 있었는데요. 무더운 여름날 손자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을 입고 있는 걸 본 거예요. 당시에는 속옷이 반바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겉옷 입기에도 불편하고 더운 여름에는 특히 더 불편했다고 해요. 손자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던 사쿠라이 여사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죠!”
“그게 뭔데?”
“속옷은 단지 가리기만 하면 된다.”

풉!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굴할 허 PD가 아니었다.

사쿠라이 여사는 데드론이라는 천으로 만든 헌 자루를 싹둑 잘라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 내고 꿰매서 삼각팬티를 만들었어요. 가볍고 편리한 훌륭한 속옷이 탄생한 거죠. 사쿠라이 여사는 이 팬티의 특허를 받았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삼각팬티로 갈아입었어요. 손자에 대한 사랑이 대히트를 친 거예요!”
“정말 대박특허가 됐겠구만. 아이디어는 작은 거였지만 말이야.”

일회용 밴드는 아내에 대한 사랑 덕분에 탄생한 거였어요.
“아내에 대한 사랑?”
“네, 1920년대 미국에 얼 딕슨(Earle Dickson)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요. 딕슨의 아내는 유난히 요리에 서툴러서 손을 많이 다쳤다고 합니다. 딕슨이 그때마다 붕대와 반창고를 가져와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죠. 하지만 자신이 없을 때 아내가 다칠까봐 걱정이 됐어요. 그래서 혼자서도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반창고를 만들기로 했답니다. 아내의 손에 붕대와 반창고를 붙였던 경험을 살려서 치료용 테이프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 안에 거즈를 작게 접어 가운데 부분에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치료용 테이프가 너무 끈적끈적해서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고 깨끗이 떨어지지도 않았죠.

“그래서 어떻게 했는가?”
오랫동안 수소문한 끝에 나일론과 비슷한 종류의 직물인 크리놀린을 찾아냈습니다. 표면이 매끄러워 테이프가 깨끗이 떨어지고, 빳빳해서 보관하기도 좋았어요. 결국 이 아이디어는 당시 딕슨이 다니던 회사인 존슨앤존슨에서 상품화하게 됐어요. ‘밴드에이드(Band-Aid)’라는 이름으로요.
“허허. 그거 참 대단한 아내 사랑이구만.”

“에이, 그 정도는 대단한 게 아니에요. 특허권으로 벌 돈보다 애인을 선택한 ‘로맨스 발명’도 있는 걸요!”
“특허권과 애인을 바꾸다니? 대체 어떤 발명품인가?”
“바로 옷핀이에요. 1840년 12월 영국에 월터 헌트(Walter Hunt)라는 청년이 옷핀을 발명한 사람인데요. 그는 헤스타라는 아가씨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해요. 헌트는 헤스타의 아버지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찾아갔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한 자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헌트는 물러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두뇌가 있다’고 했어요. 그러자 헤스타의 아버지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제안? 발명품 만들라는 건가?”
“아뇨. 10일 안에 1,000 달러를 벌어 오라는 거였어요. 헌트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눈앞이 막막했죠. 밤새 궁리해도 특별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가진 손재주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살을 찌르지 않는 안전한 핀’을 만들기로 결심했죠.”
“갑자기 웬 안전한 핀인가?”
“당시 미국인들은 부활절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바늘 핀으로 리본을 꽂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바늘 핀은 리본을 단단하게 고정시키지도 못하고, 찔릴 위험도 있었어요. 헌트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철사와 펜치를 가지고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9일째 되던 날 헌트는 안전핀을 만들게 됐습니다. 그는 헤스타의 손을 잡고 특허출원을 마치고 리본가게로 안전핀을 팔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1,000 달러를 받고 특허를 팔았죠.”
“저런…. 안전핀 특허를 그냥 가지고 있었으면 훨씬 부자가 됐을텐데!”
“헌트에겐 특허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했던 거죠. 결국 두 사람은 약속대로 결혼했고 안전핀을 사들인 리본가게 주인도 백만장자가 됐다고 해요.”

허 PD가 말을 마치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박수가 나왔다. 발명과 특허 뒤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줄 몰랐던 것이다.

“허 PD, 재밌게 잘 들었네. 결국 ‘필요’가 아니라 ‘사랑’이 발명의 어머니였군. 이런 이야기를 잘 소개할 수 있는 포맷은 없을까? 그거 고민해서 가져와. 그러면 설날 특집으로 한번 만들어보자고. 자네도 새로운 프로그램 하나 발명해야 할 거 아닌가? 허허허.”
“와! 정말요? 국장님, 감사합니다!!!!”

눈치 없기로 유명한 허 PD가 도움이 되는 날도 다 있다. 김 국장은 회의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이 발명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그대는 모두 발명가가 아닌가 말이다. 기특한 허특 PD 덕분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발명’을 꿈꾸게 되면 좋겠다. 퇴근하는 발걸음이 왠지 가볍다.

글 :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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