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1477 호/2011-11-14


총알 막는 슈퍼맨 강철 피부가 현실로!

저녁시간, 아빠와 엄마가 약상자를 들고 야단법석이다. 부엌칼에 엄마 손가락이 살짝~, 아주 살짝 베인 것이다.

“허걱, 피가 나잖아! 벌써 세 방울이나!! 응급실에라도 가야 할까? 지혈이 잘 안 되는 거 아냐? 버들잎같이 여리고 여린 내 아내의 손가락을 베다니, 이 나쁜 식칼!!”

태연은 5살 꼬마처럼 엉뚱하게 식칼에게 분풀이를 하고 있는 아빠를 기막힌 듯 바라본다. 아빠의 아내 사랑이 끔찍하기로는 대한민국 1등감이라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좀 심하다.

“아이고, 피가 다섯 방울 났으면 아주 입원을 시키셨겠네요~. 저번에 내가 무릎 까졌을 땐 쳐다보지도 않으시더니만, 아빠 정말 너무하신 거 아녜요? 그럼 버들잎 같은 엄마 피부를 강철처럼 튼튼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시든가….”

“맞아! 그러면 되겠구나.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거미줄을 이용해서 엄마 피부를 강철로 만드는 거야!”

“엥? 뭔 말씀이세요. 전 그냥 농담을 한 거라고요. 아무리 엄마가 다쳐서 속이 상하시더라도 정신줄을 놓으시면 안 돼요. 아빠~.”

“아냐, 얼마 전에 네덜란드에서 거미줄을 이용해 강철같이 튼튼한 실험용 피부를 만들고 거기에 총알을 발사하는 실험을 진짜로 했었단 말야. 실험 결과 정말로 총알이 뚫고 지나가지 못했고. 진정한 방탄피부가 탄생한 거지. 연구진은 우선 염소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무당거미처럼 단백질로 꽉 채워진 젖을 생산하게 했어. 그 다음 이 염소젖에서 뽑아낸 단백질을 엮어 직물을 만들고 5주에 걸쳐서 이 직물 둘레에 실제 피부 층이 자라나게 했다는구나. 그렇게 거미줄과 염소젖을 이용한 방탄피부를 만들어 낸 거지.”

“초, 총알도 뚫지 못한다고요? 그럼 실험용 피부 말고 실제 살아있는 사람 피부도 그렇게 강하게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이론적으로는 그래. 인체에는 피부를 견고하게 하는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이 있어. 이 케라틴을 거미줄 섬유의 단백질로 대체하면, 즉 방탄피부와 인간피부를 섞으면 방탄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거지.

“와~, 영화에서 보면 총알을 튕겨내는 초인들이 가끔 나오잖아요. 슈퍼맨처럼요. 그런 일들이 실제로 가능하다니 너무 신기해요. 방탄피부가 되면 군인들은 방탄복을 입을 필요가 없고, 일반인들도 테러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요. 또 엄마처럼 칼에 베일 염려도 없잖아요. 완전 짱인데요!! 그런데 아빠, 거미줄이 그렇게 튼튼한 줄은 몰랐어요. 도깨비 팬티보다 더 질길까요?”

“노래에 나오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들어서 수천 년 입어도 까딱없다는 그 도깨비 팬티 말이냐? 음…, 도깨비와 직접 대화를 나눠보지 못해서 그건 잘 모르겠다만, 암튼 거미줄은 같은 굵기의 강철보다 10배나 강하면서 유연성과 탄력성도 좋아서, 이런 특성을 활용해 첨단 신소재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상당히 많단다. 거미줄을 철사 정도의 굵기로만 뽑아낸다면 피아노도 천장에 너끈히 매달 수 있을 거야.”

“거미줄은 하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본떠서 첨단과학 기술을 개발한다니 엄청 신기해요.”

바로 이런 걸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이라고 한단다. 살아 있는 생물의 행동과 생김새, 생산 물질 등을 모방해서 첨단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이지. 잠자리 날개를 본뜬 헬리콥터 프로펠러, 상어의 미세돌기를 본 딴 전신수영복, 벽 타기 선수인 개코도마뱀의 발바닥을 본뜬 특수테이프 등등 아주 많지. 자연처럼 완벽한 건 없다는 걸 과학자들도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요즘엔 생체모방공학이 ‘미래 세계를 먹여 살릴 10대 기술’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단다. 거미는 그 중에서도 과학자들이 가장 자주 모방하는 대상 중 하나지.

“와~, 이제 거미를 다시 봐야겠어요. 징그럽다고 피하거나 괜히 심술 나서 거미줄을 막 끊어놓고 그랬는데 이제 진심으로 거미를 존경하려고요. 그런데 존경해 마지않는 그 거미님께 인간은 또 어떤 기술들을 본뜨고 있어요?”

“최근에 개발된 몇 가지만 말해주마. KAIST 이상엽 교수 연구팀은 거미의 실크 단백질을 대사공학으로 개량한 대장균을 이용해서 강철보다 강한 거미 실크 섬유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고려대학교 이상훈 교수 연구팀은 지름이 100마이크로미터(μm·1μm는 100만 분의 1m) 이하로 극히 미세한 극세사(極細絲)를 생산하는데 성공했단다. 이 극세사에 간세포, 섬유세포, 신경세포 등을 심으면 인공 간, 인공 근육, 인공 신경 등의 재료로 쓸 수 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니? 또 독일의 라이프니츠 연구소는 거미줄을 이용해 몸속에서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수술용 실을 개발하기도 했단다.

“정말 과학자들은 대단해요. 못하는 게 없다니깐~. 근데요 아빠, 거미줄을 이용해 엄마 피부를 강철로 만들면 다치지도 않고 참 좋긴 하겠는데, 촉감까지 강철 같으면 어떡하죠? 아님 도깨비 팬티보다 더 질긴 촉감이 된다거나. 그렇게 돼도 엄마를 사랑할 수 있으세요?”

“물론 사랑할 수 있고말고… 가 아니라,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 내 버들잎 아내를 강철로 만드는 건 안 된다고! 방탄피부 취소, 절대 취소!!”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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