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2 호/2011-11-07
2011년 올해로 21주년을 맞은 이그노벨상(Ignoble prize)의 주가는 매년 올라간다. 2010년에는 이그노벨상 수상자 출신의 진짜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니 이 유머러스한 상은 이제 권위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먼저 웃게 하고 그 다음에 생각하게 한다’는 이그노벨상의 본령은 그대로다.
2011년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어떤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으로 이그노벨상을 거머쥐었을까.
우선 수학상은 수학적인 추적과 계산을 통해 세계 종말을 예측한 사람들이 공동 수상했다. 이들이 제시한 종말의 해는 각각 1954년, 1982년, 1990년, 1992년, 1999년, 2011년 10월 21일까지 다채롭다. 영광스럽게도 1992년 세계 종말을 예언한 이는 한국의 이장림 목사. 이로써 우리나라는 향기 나는 양복으로 1999년 환경보호상을 받은 FnC코오롱의 권혁호 씨, 3,600만 쌍 합동 결혼을 공로로 2000년 경제학상을 받은 통일교 문선명 교주에 이어 세 번째 이그노벨상 수상자를 갖게 됐다.
경제학상, 평화상 등은 대체로 기발하거나 기이한 행동을 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데, 올해의 평화상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수상자는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 시의 아투라스 주오카스 시장이다. 지난 8월, 불법 주차된 벤츠를 장갑차로 깔아뭉갠 공로였다. 그는 시상식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이메일로 소감을 밝혔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상금은커녕 시상식 참가비조차 주지 않는 이그노벨상이지만, 노벨상 수상자들도 꼭 한 번 서 보고 싶어 하는 무대다. 2011년에도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그노벨상을 찾았다. 1986년 화학상 수상자 더들리 허슈바흐, 1990년 물리학상 수상자 제롬 프리드먼, 1998년 의학상 수상자 루이스 이그나로, 2005년 물리학상 수상자 로이 글라우버, 2007년 경제학상 수상자 에릭 매스킨, 2010년 경제학상 피터 다이아몬드 등이 올해의 참석자다. 이들은 시상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공연에도 참가하며 이 시상식을 재능 있는 과학자들의 축제로 만들었다.
이그노벨상의 하이라이트는 기발한 연구를 수행한 과학 분야의 수상자들이다. 2011년 올해의 수상자들을 살펴보자.
혹시 시험시간을 앞두고 벼락치기에 급급해 소변을 참고 있지 않은가? 일이 급하다며 화장실 가길 미루고 있나? 그렇다면 당장 화장실 먼저 다녀오길 바란다. 올해 이그노벨상 의학상은 소변을 연구한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호주 연합팀 과학자들이 수상했다. 소변을 오래 참으면 어떤 종류의 의사 결정이 나아지고 어떤 종류의 의사 결정이 나빠지는지를 연구한 것이다. 수상자들은 소변을 참을 경우 술에 취하거나 24시간 잠을 자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니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면 먼저 화장실부터 다녀올 일이다.
화학상은 고추냉이(와사비)를 공중에 분사해 화재 등 위험 상황에서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알람을 연구한 일본의 과학자들이 수상했다. 이들은 고추냉이 외에도 썩은 계란 등 100여 가지 재료를 연구했지만 고추냉이가 가장 강력한 효과를 냈다고 밝혔다. 물론 이 ‘와사비’는 초밥에는 뿌려먹을 수 없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냄새를 이용한 알람은 시각, 청각 장애인들에게는 특히 필요한 시스템이다.
물리학상은 원반던지기 선수들이 느끼는 어지러움에 대해 연구한 프랑스와 네덜란드 연구자가 차지했다. 해머던지기 선수들은 어지러움을 느끼지 않는 반면 원반던지기 선수들은 어지러움증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연구한 것이다. 실제로 실험에 참가한 운동선수 중 59%가 원반던지기에서 불편을 호소한 반면 해머던지기에서는 불편을 호소한 선수가 전혀 없었다.
녹화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두 운동 사이에는 머리의 움직임과 지지하는 발바닥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해머 쪽이 돌리고 던질 때 안정감이 커 어지럼증을 유발하지 않았다. 이 연구는 해머와 원반던지기가 일반인이 보기엔 거의 비슷한 경기로 보이지만 확실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원반던지기 선수가 되려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어지럼증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생물학상은 호주와 캐나다 연구자가 수상했다. 이들은 호주산 맥주병을 짝짓기 대상으로 착각한 딱정벌레를 연구했다. 수컷 딱정벌레가 맥주병에 올라가는 건 목이 마르기 때문이 아니다. 갈색의 반짝거리는 병 표면이 암컷의 날개무늬와 비슷해서 착각했기 때문이다.
생리학상과 심리학상은 모두 ‘하품’ 연구가 차지했다. 생리학상은 붉은다리거북의 하품에는 전염성이 없다는 것을 연구한 과학자들이, 심리학상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하품하는 이유를 연구한 노르웨이 연구자가 수상했다.
우리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궁금증이나 비웃음을 살만한 일들 속에 오늘날 문명을 만들어낸 비밀이 숨어 있기도 하다. 18세기 이탈리아의 생물학자 갈바니는 개구리를 해부할 때 개구리 뒷다리가 움찔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학교 실험실에서 한번쯤 경험해봤을 사소한 발견이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다양한 금속 재료로 개구리 뒷다리를 자극하는 실험을 계속했고 오늘날 전기의 시대를 여는데 기여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이그노벨상은 사소하고 엉뚱한 호기심 속에 과학이 있다고 알려준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이그노벨상 덕에 올해도 과학에 한 발 더 가까워진다.
글 : 이소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