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밤의 산책자들 현대문학 테마 소설집 2
전경린 외 지음 / 강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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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테마로 한 소설집이다. 참여한 작가는 전경린, 김미월, 황정은, 윤이형, 이홍, 기준영으로 작가 소개는 등단순이다. 전경린을 빼면 모두 처음 만난 작가들이었다. 반가웠다. 다양한 색채의 작가들이 모였으니 똑같은 주제 '서울'을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과 분위기는 아주 많이 달랐다. 문장이 가장 아름다웠던 작가느나 전경린이었다.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켰기 때문에 더 순화되는 분위기도 있었을 것이다. 불륜의 사랑을 끝내면서 상대방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그렇지만 부치지 못하는 편지라는 점에서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많이 닮았다. 그 애잔함까지 말이다.  

존재가 인내하던 불안의 끈을 놓쳐버리고 안도감 같은 공허의 검은 안개 속으로 실려 가는 거예요.-라는 문장은 지극히 문학스러운 문장이지만,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밤은 검정색 헝겊으로 귀를 틀어막은 짐승 같았지요.-도 마찬가지. (21쪽) 

나를 가만히 놔둬요. 나도 당신들을 가만히 놔둘 게요...... 나는 그녀들의 꽃말을 생각했어요. 그녀들과 나의 닮은 점을 그때서야 깨달았어요. 이웃들과 달리,우리는 서로 심판하지 않아요. 그 여자들에게 우리는 자기들의 카페와 주방 바깥의 사람, 인생 바깥의 사람,스쳐갈 뿐 알고 싶진 않은 외국인,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서로의 증인이 되지는 못하는 사람들, 그녀들과 우리, 서로가 무채색 배경에 지나지 않는 타인들이었지요. 서로 심판하지 않기 위해 더욱더 무관심해진 타인들,그것이 이웃이었어요.-25쪽 

위 글에서의 '이웃'이 '서울'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말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당신들을 가만히 놔두는 것처럼 당신도 나를 가만히 놔두라는 무언의 항변이, 익명석을 강조하고 그것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내는 서울, 현대인들의 모습이 잘 포착되었다. 그리하여 아무리 보아도 서로의 증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 아프게 인정하는 단어다. 서로 심판하지 않기 위해 더욱더 무관심해지는 우리네들. 그것이 편하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외롭다고 여기는 모순성까지 아득하다. 

어느 날, 세월이 흐른뒤, 어느 날 말이에요, 당신이나 내가 세상과 작별했다면,우리, 홀러다니는 소문으로 그 소식을 알리지 말아요. 예의를 갖춘 정식 부고를 주고받고 싶어요. 별세의 날이 다가올 즈음 비밀스러운 주소 하나를 누군가에게 맡기는,그 정도 부탁은 가족에게 할수 있지 않을까요...... 또다시 오랜 시간이 흘러간 뒤에 말이에요. 우리가 낙엽처럼 가벼워져서 한걸음으로 훌쩍 공기 속으로 넘어가게 될 때요. -35쪽 

그리고 위 글은 참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들이다. 온라인에서 마주치는 무수한 인연들은 쉽게 만나지는 만큼 쉽게 헤어지고 부서진다. 부득이 당신이 이 자리를 떠나야겠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지만, 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주었으면 한다. 어느날 문득 당신의 빈자리를 알아차리고 허탈해지는 일이 없게 말이다. 온라인 아니라 오프에서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다. 

김미월의 '프라자 호텔'은 시골에서 상경한 티를 팍팍내는 신입생 이야기에 꽤 웃음을 자아냈다. 휴가를 호텔에서 보내는 것으로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부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추억 속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뭔가 애틋한 분위기도 내보았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서는 가장 평범하고 무난한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작품이 무난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작품은 충분히 좋았다. 

황정은의 '양산 펴기'는 짧은 글 안에서 작가의 매력을 십분 발휘해 놓았다. 건조하고 딱딱하게 이야기하지만 등장인물의 애정과 성격과 상황이 잘 드러나 있었다. 유머와 풍자도 잘 녹아 있다. 더 만나고 싶은 작가다.  

윤이형의 결투는 무척 SF스러웠는데,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단막 극장에서 한 시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도 좋을 작품이었다. 자신과 동일한 DNA를 가진 분리체와 결투를 통해 살아남은 자가 오리지널 인간이라고 증명되는 세상의 이야기, 그리고 그 결투장의 진행요원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런 이야기에서 '서울'을 어떻게 끌어낼까 궁금했는데 두 달 동안 세 번이나 분리를 겪은 최은효라는 인물을 통해 단서가 잡힌다. 자신과 동일한 인물과의 동거가 그럭저럭 가능했던 것은 서울 바깥에서의 생활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울로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분리체는 제거할 수밖에 없는 불편하고 껄끄러운 존재가 되고 만다. 고비용도 문제지만 몰인간적 성향으로 몰아가곤 하는 이 도시의 성향이 확 느껴져서 아찔함이 느껴졌다. 

이홍의 '삼인구성의 가정식 레시피'는 이 작품집 안에서 가장 섬뜩한 내용을 담았다. 자신의 목표와 이득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3인 구성의 가정식 레시피를 고집하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 여인은 제 가족의 건강과 아이의 교육적 성취가 지상 최고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 타인의 삶과 안녕 따위는 한줌 재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한다. 추리적 재미까지 더해져서 더 긴장감을 주었는데 이 작품도 역시 단막극장으로 옮겨져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작품 기준영의 '시네마'는 가장 읽기 힘든 환경에서 읽기도 했지만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소설을 풀어가는 방법도 무척 난해해서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달리 남길 말도 많지 않다.  

두번째 테마 소설집인데 첫번째도 찾아보니 역시 '서울'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작품과 달리 평점이 생각보다 박해서 당장 읽고 싶지는 않지만 조금의 흥미는 생겼다.  

태어나서 줄곧 살아온 서울이라는 도시. 전원 생활의 낭만과 로맨틱함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이상'이라고 생각할 뿐인 사람인지라, 잠시 잠깐 휴가로는 가고 싶어도 가서 살고 싶지는 않아하는 전형적인 도시 여자인 나. 이 삭막하고 차가운 도시의 날선 느낌을 섬뜩해 하지만, 이 도시를 떠나서 살고 싶은 마음은 좀처럼 먹지 않는 그런 사람인 나. 그런 입장에서 만나는 서울의 이야기들은 깊이 공감하게 하면서도 안타까운 연민도 느끼고 말았다. 그 외로운 고단함이 비단 서울 사는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라고는 여기지 않는다. 도시 생활을 한다면 공감할 것이고, 아니어도 대한민국의 현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감정들이다. 어쩌면 자기 연민이고 자기 위안일 것이다. 그냥 센치해지기 참 좋은 가을밤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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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1-11-07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경린의 단편이 실려서, 구매하려고 보니, 다른 작가들이 죄다 모르는 작가들이라 패쓰해야 겠어요. 전경린 단편은 서점에서 걍 읽어 보렵니다~

마노아 2011-11-07 22:19   좋아요 0 | URL
저도 전경린 외에는 모두 처음 만나는 작가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요. 낯선 만남도 때론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