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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네버 스탑 - The Music Never Stopp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느 날 집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가출한지 20년이나 지난 아들을 찾았다는 소식이다. 그렇지만 아들은 오랜 노숙자 생활로 뇌종양 수술을 받고 기억이 15년 전에서 멈춰져 있다.
무언가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하지만 멍한 아들의 눈빛은 초첨을 맞추지 못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구조조정으로 실직을 해버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린 아내는 남편을 내친 회사의 간부를 찾아가 담판을 짓는다. 남편은 30년 이상을 이 직장에 헌신했고 딱 두 번 결근했다고 한다. 하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렇게 성실한 남편을 내친 바람에 가족은 경제적으로 위기를 맞게 되었고, 회사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세운 것은 자신의 취직이었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대학을 졸업했고, 비서직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당찬 그녀의 요구를 회사는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아내는 출근하고, 남편은 아들을 돌보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아들은 15년 전의 기억은 그대로 갖고 있지만, 새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들은 기억해내지 못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병실에 아빠가 오전 10시에 온다고 메모를 적어놓았다. 뇌기능 손상 환자에게 음악이 좋은 치료가 된다는 기사를 접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러저러한 음악들을 들려주지만 아들은 통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평행선을 긋던 두 사람에게 변화를 준 것은 비틀즈의 노래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옛 노래들에 아들이 반응했던 것이다. 어려서 음악을 하고자 했던 아들과, 그 아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사사건건 부딪혔었다. 서로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하고 오해가 오해를 불러 마침내 아들은 집을 떠났고, 상처받은 마음 그대로 기억은 멈춰져 있다.
이제 아버지는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기억이 멈춘 아들에게, 추억이 멈춰버린 자신이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징검다리를 밟으며...
자신의 취향이 아니던 록음악들을 듣고, 하나하나 정복(!)해 나가는 아버지. 아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아들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눈물겨운 몸부림이다. 이미 매진된 라이브 콘서트 티켓을 구하려고 발빠르게 움직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웃음과 뭉클한 감동을 함께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고령이었다. 예순 다섯의 나이. 심장에 무리가 왔고, 라이브 콘서트 티켓을 거머쥐었어도 의사 입장에서는 허락해줄 수 없는 여정이었다. 그러나 지금 가지 않으면 아들의 기억 속에 자신과의 추억을 심을 수가 없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그 아들에게 중요한 순간으로 남고 싶은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은 관객들의 마음을 한껏 적시고 만다.
영화가 독보적인 것은, 이들의 대화와 추억, 그리고 상처와 치유의 과정에서 소개되는 전설적인 음악들의 잔치 때문이었다. 비틀즈, 롤링스톤즈, 밥 딜런, 그레이트풀 데드, 크로스비 등등... 시대를 넘나드는 전설의 명곡들이 적재적소에서 울려퍼진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영화에 사용된 뮤직 넘버들이 자막으로 쭈욱 올라간다. 그리고 그 음악을 만들어낸 뮤지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스페셜 땡스투가 또 다시 그들의 이름과 함께 올라간다. 어려서 팝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란 편이 아님에도, 그 이름들과 그 노래 제목들이 올라가는 순간 경외감이 들었다. 저런 노래들이 울려퍼지는, 그런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벅찬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영화의 엔딩에서 보여준 뜨거운 완성도는 이 영화가 추구한 '힐링무비'의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힐링 뮤직에 힐링 무비다.
애석한 것은 이렇게 훌륭한 영화의 개봉관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 원래 내가 예매한 영화는 '트루 오브 라이프'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서울에 한 군데 밖에 없고, 볼 수 있는 시간대가 주말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앞서 예매했던 영화를 취소하고 얼른 갈아탔다. 65명 좌석을 가진 영화관에 이미 팔린 표는 15석 정도였다기에, 직장 동료와 함께 현장 예매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동료가 보자고 먼저 권했던 것이 고마워서,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맛있는 바닐라 라떼로 고마움을 전했다. 따뜻하고 달콤한 향이 오래오래 내 주변에 머물렀다. 음악의 힘이다. 그리고 사랑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