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 흑인 민권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한마디 더불어 사는 지구 37
파올라 카프리올로 지음, 김태은 옮김, 이우건 그림 / 초록개구리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로자 파크스의 실화를 동화로 표현한 책으로 '사라, 버스를 타다'가 꽤 유명하다. 하지만 로자의 이야기를 사라라고 하는 어린 아이에게 대입시켜 쉽게 설명했을 뿐, 로자 파크스가 해냈던 일들에 대해서 알기에는 다소 부족했다. 이 책은 바로 그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전후좌우를 다 살펴서 이야기하고 있다. 시작은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 기사의 요구에 "싫어요!"라고 거절하면서 출발한다. 운전 기사가 경찰을 부르러 간 사이 로자 파크스는 자신을 키워주었던 외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느 누구의 학대도 참아서는 안 된다고 로자에게 처음으로 가르쳐 준 이가 바로 외할아버지였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로자의 어린 시절로 흘러간다. 어려서부터 줄기차게 받아왔던 인종 차별, 그 안에서 부당함을 느꼈던 어린 로자의 마음들이 하나씩 하나씩 수면 위로 올라온다.  

버스 안에서 로자는 남편 파크스를 떠올린다. 처음 만났을 때에 이미 미국 유색인 지위향상 협회의 회원이었다. 그 무렵에 파크스는 '스코츠버러 소년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는데, 자연스레 독자는 로자 파크스 버스 사건과도 맥이 통하는 또 다른 흑인 인권 차별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행되었던 캄캄한 시절을 로자와 그녀를 비롯한 많은 흑인들이 감수하며 살았다. 로자에게서 '싫어요!'라는 한 마디를 끌어낸 인종 분리 버스의 규칙은 이렇다. 

1. 모든 승객은 앞문으로 타서 표를 사야 한다. 그러나 흑인은 표를 산 뒤에 버스에서 내렸다가 뒷문으로 다시 올라타 버스 뒤쪽의 흑인 자리에 앉는다. 

2. 흑인 승객은 흑인 맨 뒤 몇 줄에만 앉을 수 있다. 앞줄은 백인만 앉을 수 있다. 백인이 타고 있지 않더라도 백인 좌석은 빈 채로 놔두어야 한다. 

3. 중간 줄은 백인이 먼저 앉는다. 흑인은 자리가 비어 있을 때에만 앉을 수 있다. 

4. 중간 줄에 앉았다 하더라도 흑인은 언제든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흑인이 80세의 노인이든 임산부이든 상관없이 이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백인이 젊은이여도 흑인은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5. 백인이 중간 줄에 앉으면 그 줄(통로 반대편 줄 포함)에 앉아 있는 모든 흑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를 찾든가, 아니면 서 있어야 한다. 이것은 '우월한 인종'이 흑인 옆에 나란히 앉아 가야 하는 '모욕'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실제로 버젓이 적용되었던 규칙들이다. 저걸 당연하게 누려온 백인들은, 이후로도 그 사실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로자 파크스는 의외로 몹시 조용한 성격의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조용히 끓어올라 오래 지속되는 성미를 지녔다. 로자가 자신을 둘러싼 막을 깨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이들 중에는 백인 친구들도 있었다. 10대 시절에 다니던 학교의 창설자인 앨리스 화이트라는 백인 여성이 로자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고, 흑인을 변호하다가 백인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던 변호사 클리퍼드 더르와 그의 아내 버지니아도 로자의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버지니아의 도움으로 '인종 분리의 해소'라는 세미나에 참석했던 로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흑인 여성을 태우러 온 백인 운전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로자는 백인 직원들의 접대까지 받으며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인물이 등장한다. 마틴 루서 킹! 아직 이십 대의 젊디 젊은 이 목사의 웅변은 로자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흔들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로자 파크스의 버스 사건은 마틴 목사의 인권 운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서로가 서로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이다. 진실이 가져다 준 정직한 힘이라고 할까.  

   
 

오랫동안 우리는 정말 놀라울 만큼 큰 인내심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 우리는 자유와 평등보다 덜 소중한 것에 만족하려는 우리의 인내심에서 벗어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권리입니다. 여러분이 용기 있게 싸운다면, 우리가 우리의 존엄성과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함께 싸운다면, 우리의 투쟁을 역사책은 다음과 같이 기록할 것입니다. ‘위대한 민중이 살았다. 그들은 문명의 핏줄에 새로운 의식과 존엄성을 가져온 흑인 민중이었다.’라고. 이것이 우리의 도전이요, 우리가 꼭 이뤄 내야 할 책임입니다.  -99쪽

 
   

버스 운전 기사 이야기도 나온다. 로자와 악연을 맺은 그 운전 기사는 이미 12년 전에도 로자에게 상처를 주었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로자는 자신의 영혼까지 병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렇게 강인하게 지켜온 존엄함은 마침내 1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로자의 버스 사건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었지만, 이 일이 어떤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다른 흑인들의 연대 투쟁이 필요했다. 그녀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버스 승차 거부 운동에 동참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집이 멀어서, 다리가 아파서, 혹은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등등... 도망가고 싶은 이유야 얼마든지 많았겠지만, 그렇게 주춤거리고 머뭇거리다간 그들이 원하는 진정한 평등과 자유는 결코 가질 수가 없다. 내일이 아니고 모레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여러분은 100년 전부터 로자와 같은 불쌍한 여자들 덕에 먹고 살고 있어요.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겁에 질린 학생들처럼 굴지요. 그래요, 맞아요. 우리는 평생을 교복을 입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복을 벗어 버릴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인간이 되려면, 지금 당장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96쪽 

몽고메리 지역의 승차 거부 운동은 1년 이상이나 지속되었다. 백인들은 갖은 법안을 올려서 이들의 연대 투쟁을 방해했지만, 그럴 때마다 또 다른 지혜와 협력을 동원해서 버티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몽고메리의 지역 법원 재판관들은 버스에서의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다.  참으로 뜨거운 승리였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법이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힌 인종 차별의 뿌리가 쉽사리 사라질 수는 없었다. 로자는 익숙한 고향을 떠나 북부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고, 다시 돌아오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되돌아올 때 그녀의 입장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려 '몽고메리' 시 당국의 초대를 받아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감았을 때에, 그녀의 유해는 링컨 대통령의 관이 모셔져 있던 자리에 놓인 채 5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조문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 후에는 검은 피부를 지난 버락 오바마라는 남자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참으로 극적인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짜릿한 감동을 주면서 작품을 마무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에, 우리도 막 대선을 치른 직후였기 때문에 난 미국 시민들이 부러웠었다. 기꺼이 오바마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에게 부럽다라는 얘기를 했더니 더 두고봐야 알 일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당연히 공감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불가능으로 보이던 것을 가능으로 바꾸는 일이 인류가 나가야 할 진보의 첫 걸음이고 위대한 한발자국이 아니던가. 버스 의자에 앉는 것조차도 오랜 투쟁이 필요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50년 뒤에는 대통령 자리를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일단은 감격이다. 그리고 그 안에 깃들어 있는 많은 땀과 눈물과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싫어요!'라는 단순한 한 마디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싫어요!가 아닌, 마땅히 거부해야 할 것을 거부한 당당한 한 마디였다. 역사를 바꾼, 역사를 움직인 소중한 한 마디였다. 용감했던 로자 파크스와, 그녀와 뜻을 같이 했던 많은 이들에게 고마움과 존경의 박수를 보내본다.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96쪽 그러나 그들은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같이 읽으면 좋을 책 : 이 책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 버릴 까닭은 없어."라는 명문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가 기꺼이 소화가 되었다면 '헬프'도 같이 읽으면 좋겠다. 따뜻한 감동이 오래오래 가슴을 적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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