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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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이야기는 1962년 8월부터 시작한다. 흑백 인종 간의 갈등이 최고점으로 치달을 시점, 그리하여 백인 집에 고용된 흑인 가정부가 몹쓸 대접을 받고 있던 시점의 이야기이다. 화자는 모두 세 명 등장한다. 장성한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졌더랬지만, 지금은 우정과 신앙의 힘으로 털고 일어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빌린과, 술주정뱅이 남편과 다섯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미니, 그리고 볼품없이 깡마르고 지나치게 큰 키에 곱슬머리까지 신경질 나게 하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스키터다. 

아이빌린은 미스 리폴트 집에서 일을 한다. 이제 두살이 된 메이 모블리 리폴트를 돌보는 것이 주된 일이다. 미스 리폴트는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귀찮은 물건 취급하는 허영에 들뜬 여자였다. 그런 미스 리폴트의 비위도 맞추면서 아이빌린은 어린 메이 모블리가 편견에 싸이지 않은 채 자랄 수 있도록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지혜를 끌어모은다. 아이빌린이 이 이야기 속에서 메이 모블리에게 제공하는 사랑은 그녀가 평생에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은총이었고 축복이었다. 비록 그 시간이 길지는 못했지만. 

미니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입바른 소리 잘하는 것으로 잦은 해고를 당했던 미니는 가는 귀가 먹은 미스 월터의 집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잭슨 마을의 최고 요리사이기도 한 그녀의 솜씨를 월터의 딸인 미스 힐리가 탐을 낸다. 그녀는 교활한 방법으로 미니를 자신의 가정부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녀가 도둑질을 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미니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아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사면초가로 만들면 제 앞에 백기를 들 거라고 미스 힐리는 여겼겠지만, 미니는 그녀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주 통쾌한 복수를 해버리고 자리를 떠난다. 비록 충격적인 복수의 전말 때문에 소문은 나지 않겠지만, 여전히 그녀는 실직 중이고, 그게 좀 더 이어진다면 남편의 매를 피할 길이 없어진다. 그러한 때에 미스 셀리아의 등장은 미니에게 구원 투수나 다름 없었다. 

미스 셀리아. 그녀는 독특한 존재였다. 미니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차를 내오겠다며 앉아있으라고 말을 해준 사람이었다. 흑인 가정부를 위해서 백인 주인이 차를 내온다? 당시엔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미니가 당황한 것은 당연하다. 남편 몰래 가정부 일을 해주고 자신에게 요리를 가르쳐달라며 미스 셀리아는 미니가 받던 임금의 두 배를 제시했다. 엉뚱하기도 하고 마을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패션 감각을 자랑하고 있지만, 미스 셀리아는 그 마을의 백인 여자들 중에서 가장 착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미니가 온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지만. 

미스 스키터. 그녀는 미스 힐리와 미스 리폴트와 브릿지 친구다. 학교 동창이기도 했고, 마을에서 함께 자란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다. 다만 그녀들처럼 유색인들을 대놓고 차별하거나, 속으로 차별하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런 배경에는 콘스탄틴이 존재한다. 그녀의 집에서 무려 29년을 일한, 23년 간 미스 스키터를 돌봐준 엄마보다 더 엄마같은 존재였다.  

"진짜 못난이는 가슴속에 살지요. 못난이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야비한 사람이거든요. 아가씨도 그런 사람일까요?"
"모르겠어요. 안 그런 것 같아요."

"아침마다, 죽어서 땅에 묻힐 때까지 이렇게 다짐해야 해요.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해요. 저 바보들이 오늘 내게 지껄인 말을 믿을 것인가?" -1권 110쪽 

외모에 대해 놀림을 받고 돌아온 어린 스키터에게 콘스탄틴이 해준 말이었다. 그녀의 외모에 대해 그녀 자신보다 더 신경을 많이 쓰고, 그리하여 아이로 하여금 콤플렉스를 갖게 하는 엄마보다 콘스탄틴의 처방이 더 현명하다. 그렇지만 늘 따뜻하게 토닥여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 강해질 것을 요구할 때도 있다. 

내가 열다섯 살이 됐을 때 새로 전학 온 여자애가 나를 가리키며 "얘는 황새야?"라고 했다. 그러자 힐리마저 쿡 터지려는 웃음을 참으며 그애가 한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나를 잡아당겼다.
"콘스탄틴은 키가 얼마나 커요?" 내가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콘스탄틴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나를 보았다. "아가씨는요?"
"180." 나는 울먹였다. "벌써 남학생 농구부 코치보다 커요."
"나는 185니까, 스스로를 동정하는 건 그만두세요."  -1권 114쪽 

이렇게 각별했던 콘스탄틴이었다. 집을 떠나서 멀리 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정을 과시했던 그 콘스탄틴이, 졸업해서 돌아와 보니 집에서 사라졌다. 엄마는 그녀가 시카고로 갔다고만 얘기할 뿐, 숨은 사연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고만 짐작할 뿐, 스키터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다가 미스 리폴트의 집에서 화장실 사용 건으로 모욕을 당하는 아이빌린을 목격한다. 미스 힐리는 유색인들이 백인들이 쓰는 화장실을 쓰면 안 된다며, 미스 리폴트에게 실외에 따로 화장실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유색인들을 병균 보균자로 취급하는 미스 힐리가 불편했지만 미스 스키터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현실을 바꾸고 싶지 않냐고 아이빌린에게 묻지만, 그 질문은 아이빌린에게도 당황스러울 뿐이다. 

미스 스키터는 나더러 현실을 바꾸고 싶지 않은지 묻는다. 미시시피 주 잭슨을 바꾸는 것이 전구를 갈아 끼우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듯이.  -1권 48쪽 

편집 일을 해오면서 글을 쓰고 싶었던 미스 스키터는 뉴욕의 유명한 출판사에 이력서를 보낸다. 그리고 그곳 편집장으로부터 진정한 조언을 듣는다. 일단 어느 쪽이든 경력을 쌓아야 했던 스키터는 <잭슨 저널>이라는 지역 신문사에서 칼럼 일을 맡는다. 미스 머나가 쓰던 살림에 대한 지식인 답변스런 글을 쓰는 일이었는데, 살림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스키터에겐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빌린을 찾았다. 처음엔 아이빌린의 지혜와 지식을 구했지만, 스키터는 자신이 진정으로 쓰고 싶은 글의 인터뷰어로 그녀를 원했다. 백인의 집에 고용된 흑인 가정부로서의 경험담을 구했던 것이다. 당연히 딱지를 맞았다. 때는 1960년대 초반이었다. 어느 반듯한 흑인 청년은 백인 화장실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구타를 당해 실명하고 말았다. 그들의 이웃의 이야기이다. 목숨을 걸기에는 스키터의 서툰 열정은 아직 지나치게 덜 익었다. 아이빌린을 비롯해서 미니, 그리고 그밖의 많은 가정부들의 입을 열기에는 좀 더 극적인 사건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작가는 차분하게 절정으로 끌어당기며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리하여 2권 율 메이의 편지에 다다르면 최고 정점을 한 번 찍는다. 그녀가 고백했던 것이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 건 아마 모르실 거예요.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졸업했을 거예요. 대학 졸업장을 못 받은 것이 평생 한이 되었지요. 하지만 그것을 보상해주는 소중한 쌍둥이 아이들이 있어요. 아이들을 투갈루 대학에 보내려고 십 년 동안 날마다 돈을 모았지만 등골이 휘게 일했는데도 둘을 모두 보낼 돈은 마련하지 못했어요. 아이들은 똑같이 똑똑하고 똑같이 배움에 대한 열의가 높아요. 하지만 돈은 한 명을 보낼 만큼이라,그래서 여쭙겠는데, 만약 제 입장이라면 누구를 대학에 보내고 누구를 타르 칠 하는 일을 시키겠어요? 한 명에게 인생의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그 아이에게 다른 한 명만큼 너도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럴 수는 없지요. 어떻게든 그것을 가능하게 할 방법을 찾을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지요. -2권 26쪽 

열 수 없을 것 같던 입을 열고, 쓸 수 없을 것 같던 글을 쓰고, 그리고 낼 수 없을 것 같던 책을 만들게 된다. 그녀들이 말이다.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던 그들 사이에 신뢰가 싹트고, 우정이 무르익고, 인간적 유대감이 켜켜이 쌓인다. 무수한 위험에 직면했고, 생존의 존폐가 내내 흔들렸지만 그들은 극복해 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웃음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세상은 금방 장밋빛으로 물들지 않는 법! 여전히 미스 힐리는 저들 유색인들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여기며 짓밟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미스 리폴트는 위선으로 가득 찬 제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느낄 것이다. 그리고 비록 어깨는 폈지만 아이빌린은 당장에 생활고를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느낀 진정한 의미의 자유는 그녀가 잃은 것보다 훨씬 크고 값진 것이었다. 그녀가 위대했던 것은 메이 모블리와의 이별 과정에서 보여준 사랑이었다. 

나는 아이의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아이도 내 눈을 본다. 오, 이 아이의 눈빛은 천 년을 산 사람처럼 원숙한 영혼의 눈빛이다. 그리고 맹세하건대, 저 아래 깊숙한 곳에서 아이가 자라면 어떤 여자가 될지 보인다. 미래가 반짝 불을 켠다. 키가 크고 자세가 꼿꼿하다. 당당하다. 머리 모양은 훨씬 예쁘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에 심어준 말들을 기억한다. 다 자란 숙녀가 되어서도 기억한다.
그 순간 아이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착해요." 아이가 계속 말한다. "나는 똑똑해요. 나는 소중해요."  -2권 340쪽 

아이가 제 엄마를 미워하지 않게 말을 고르고, 이제 네살 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의 가슴 속에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심어주는 위대한 아이빌린. 아이는 그녀의 바람대로 친절하고 똑똑한, 그리고 소중한 아가씨로 성장할 것이다. 결코 제 엄마를 닮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시작과 끝은 모두 아이빌린이 열고 닫았다.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오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그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 '헬프'에서 자막이 올라갈 때 스키터의 이름이 먼저 나온 것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이런 영화에서조차 차별하십니까? 소리가 나올 만큼. 

무한한 신뢰와 따스한 인간미를 아이빌린이 담당했다면, 진정한 유머와 통쾌한 복수는 미니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서도 아주 적절한 캐스팅으로 잘 표현해 주었다. 뉴욕으로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스키터에게 전하는 미니의 맵고 따끔한, 그러나 진정한 우정이 깃든 충고를 들어보시라. 

"내 말 잘 들어요,미스 스키터. 나는 아이빌린을 보살필 거고 아이빌린은 나를 보살필 거예요. 여기에서 당신에게 남은 건 주니어 연맹에 속한 당신의 적들에게 시달리고 당신 어머니 때문에 술잔을 기울이는 일뿐이에요. 당신은 이곳에서 다리란 다리는 깡그리 태웠어요. 이 타운에서는 새 남자친구도 절대 사귀지 못할 거고,그건 모두가 알지요. 그러니 뉴욕까지 그 하얀 궁둥이를 흔들면서 걷지 말고 뛰어가란 말이에요!”  -2권 310쪽 

그리고 이들 진한 피부를 가진 여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하얀 얼굴을 가진 스키터. 그녀는 이 작품에서 발군의 성장을 기록한다. 키로도 다른 사람들을 압도할 만큼의 길이를 자랑하지만, 그녀가 보인 영혼의 성장도 참으로 눈부시다. 콘스탄틴에 대한 추억으로 그녀가 다른 백인 여성들보다 유색인들의 인권에 대해서 보다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 설익은 감정에 불과했다. 책을 쓰기 시작할 때도 그랬다. 책의 대부분은 아이빌린과 미니가 만들어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책이 완성되어 가고, 그 다음에 책이 나오고 난 뒤에 그녀가 보여준 행보는 그녀 영혼의 키도 한 뼘 이상 컸음을 제대로 시사했다. 이제 보다 높이, 보다 멀리 바라볼 줄 알게 된 그녀는 스튜어트에게도 '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엄마의 편견을 바로잡아주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스키터의 성장은 잭슨 마을의 핍박받던 무수한 유색인들에게도 우정의 이름으로 다가온다. 진정 훈훈한 결말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이야기도 잠시 해보자. 지난 수요일에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기네스에 올랐다는 커다란 스크린은 정말 무식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컸다. 너무 커서 앞자리가 아닌데도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영화는, 애석하지만 몹시 졸작이었다. 이렇게 좋은 원작을 가지고 그렇게밖에 표현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감독은 깊이 반성하시라. 혹시 원작을 먼저 읽은 탓에 나만 그렇게 여겼나 싶어, 원작을 읽지 못한 동행에게 물었더니 나의 야곱 역시 영화가 많이 부족하다고 말을 한다. 누군가는 감동 깊게 보았을 테지만, 그것은 이 작품의 소재와 결말이 주는 훈훈함 때문일 것이다. 영화나 소설 둘 중 하나만 고르겠다고 한다면 기필코 소설 쪽을 고르라고 권하고 싶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떠한 피눈물 속에서 이만큼 자라 있는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직도 멀고 멀었다는 것도 한숨 대신 기운을 차리며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먹게 하는 소설이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닌가. 옮긴이의 말을 마지막으로 덧붙여 본다. 우리 안의 선에 대해서 한 번 더 곱씹어 보면서......

흑인과 백인을, 더 크게는 인종과 인종을 갈라놓는 선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한편으로 확산되고 변형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핵심은 우리는 그저 두 사람이야, 우리를 가르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어, 하고 깨닫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 말에 진심으로, 얼마나 동의하는가.  -2권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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