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2
캐서린 스토켓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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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 건 아마 모르실 거예요.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 졸업했을 거예요. 대학 졸업장을 못 받은 것이 평생 한이 되었지요. 하지만 그것을 보상해주는 소중한 쌍둥이 아이들이 있어요. 아이들을 투갈루 대학에 보내려고 십 년 동안 날 남마다 돈을 모았지만 등골이 휘게 일했는데도 둘을 모두 보낼 돈은 마련하지 못했어요. 아이들은 똑같이 똑똑하고 똑같이 배움에 대한 열의가 높아요. 하지만 돈은 한 명을 보낼 만큼이라,그래서 여쭙겠는데, 만약 제 입장이라면 누구를 대학에 보내고 누구를 타르 칠 하는 일을 시키겠어요? 한 명에게 인생의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그 아이에게 다른 한 명만큼 너도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럴 수는 없지요. 어떻게든 그것을 가능하게 할 방법을 찾을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이지요.-26쪽

"모자라는 등록금이 겨우 75달러였다는 이야기도 썼던가요? 미스 힐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대요. 매주 조금씩 갚겠다고 힐리가 안 된다고 했대요.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건강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자선을 베풀지 않는다면서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배우게 하는 게 더 친절한 거라면서요."-29쪽

그들을 덮치려고 한 백인 남자들에게 분노하는 이야기도 있다. 위니는 몇 차례나 강제로 당했다. 클레온타인은 그 작자의 얼굴에서 피가 날 때까지 싸웠더니 다시 덮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과 경멸이 나란히 공존한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대부분은 백인 자녀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만 참석하려면 반드시 제복을 입어야 한다. 이런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유색인의 입으로 들으니 처음 듣는 것처럼 새롭다.-40쪽

콘스탄틴이 아른거린다. 나는 그녀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진심을 다해서는 한 번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44쪽

이게 지금 생시인가? 백인 여자가 정말 나를 구하려고 백인 남자를 친 건가? 아니면 이 작자가 내 두개골을 으스러뜨려서 내가 여기 엎어져 죽은 건가......– -123쪽

미스 셀리아는 화장을 하지 않았고,머리에 스프레이도 뿌리지 않았고, 잠옷은 낡은 프레리 드레스처럼 보인다. 그녀가 코로 깊게 숨을 들이쉰다. 이제야 알겠다. 그녀가 십 년 전에는 가난한 백인 소녀였다는 것을. 강인했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당하고 살지 않았다는 것을.-125쪽

"선생님이 그러는데 검은색은 더럽고 나쁜 얼굴을 가졌다는 뜻이래요."
아이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서럽고 애처롭게 운다.
미스 테일러. 기껏 내가 메이 모블리에게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색깔로 판단하지 않는법을 가르쳐놓았더니 기어코. 가슴에서 단단한 주먹 같은 게 느껴진다. 1학년 때 선생님을 누가 기억하않겠는가? 배운 것은 기억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지금까지 이만큼 아이들을 키워봤으니 안다. 그들은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 -285쪽

그를 되받아치기가 겁난다. 내가 그렇게 하면 그가 나를 떠날까 겁난다. 나도 이것이 어처구니없디는 것을 잘 알고,내가 이렇게 나약하다는 사실에 몹시 화가 난다! 나를 미친 듯이 두들겨 패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왜 바보 같은 술주정뱅이를 사랑하는가? 한번은 리로이에게 물었다. "이유가 뭐예요? 왜 나를 때려요?" 그는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당신을 때리지 않으면, 미니,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누가 알겠어."
나는 개저럼 침실의 한구석에 몰려 있었다. 그가 나를 벨트로 때리고 있었다. 내가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리로이가 나를 개처럼 때리는 짓을 그만두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누가 알겠는가.-290쪽

나는 루 앤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며 사람의 진심은 절대 알 수 없는 거구나, 생각한다. 내가 루 앤의 하루하루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수 있었을까. 내가 그녀에게 조금만 더 잘했줬다면. 이것이 책의 핵심 아니었나? 여자들이 우리는 그저 두 사람이야, 우리를 가르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어, 하고 깨닫는 것.
하지만 루 앤은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이미 핵심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 핵심을 놓친 것은 나였다.-300쪽

내가 책을 쓰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한다. 월요일에는 브리지를 했을 것이다. 내일밤에는 연맹 모임에 가서 뉴스레터를 나눠줬을 것이다. 금요일 밤에는 스튜어트와 저녁을 먹으러 가서 늦은 시각까지 같이 있었을 것이고,토요일에는 피로가 풀리지 않은 몸으로 테니스를 치러 일어났을 것이다. 피곤하고 평안하지만 갑갑했을 것이다.
어느 오후 힐리가 자기 가정부를 도둑으로 몰아붙이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서 듣고만 있었을 것이기에. 엘리자베스가 자기 아이의 팔을 세게 꼬집지만 나는 못 본 척 시선을 돌렸을 것이기에. 스튜어트와 약혼하지만 짧은 드레스도 입지 못하고,머리도 기르지 못하고, 그가 위험하다며 용납하지 않을까봐 두려워 유색인 가정부에 대한 책을 쓰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기에. 내가 힐리와 엘리자베스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고 거짓말은 할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말에 더는 동의하는 척할 필요가 없다.-301쪽

"내 말 잘 들어요,미스 스키터. 나는 아이빌린을 보살필 거고 아이빌린은 나를 보살필 거예요. 여기에서 당신에게 남은 건 주니어 연맹에 속한 당신의 적들에게 시달리고 당신 어머니 때문에 술잔을 기울이는 일뿐이에요. 당신은 이곳에서 다리란 다리는 깡그리 태웠어요. 이 타운에서는 새 남자친구도 절대 사귀지 못할 거고,그건 모두가 알지요. 그러니 뉴욕까지 그 하얀 궁둥이를 흔들면서 걷지 말고 뛰어가란 말이에요!"-310쪽

"윌리 메이는 이제껏 다른 백인 여자들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자기를 어떻게 대했는지도 다 말해줬대요. 그 백인 여자는 가만히 듣고요. 윌리 메이가 거기서 일한 게 삼십칠 년인데 한 테이블에 앉은 건 처음이었대요."-316쪽

나는 아이의 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아이도 내 눈을 본다. 오, 이 아이의 눈빛은 천 년을 산 사람처럼 원숙한 영혼의 눈빛이다. 그리고 맹세하건대, 저 아래 깊숙한 곳에서 아이가 자라면 어떤 여자가 될지 보인다. 미래가 반짝 불을 켠다. 키가 크고 자세가 꼿꼿하다. 당당하다. 머리 모양은 훨씬 예쁘다. 그리고 내가 머릿속에 심어준 말들을 기억한다. 다 자란 숙녀가 되어서도 기억한다.
그 순간 아이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착해요." 아이가 계속 말한다. "나는 똑똑해요. 나는 소중해요."-340쪽

나는 아이가 또다시 서럽게 울고불고하는 소리를 들으며 뒷문을 열고 나간다. 나 또한 울면서,내가 메이 모블리를 얼마나 그리워할지 알면서, 제 엄마가 좀더 많은 사랑을 주기를 기도하면서 진입로를 걸어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미니처럼 자유를 느낀다. 자기 머릿속에 갇힌 채 자기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미스 리폴트보다 내가 더 자유롭다. 그리고 미스 힐리보다도 더. 저 여자는 앞으로 평생 자기는 그 파이를 먹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감옥에 갇힌 율 메이를 생각한다. 미스 힐리 역시 자신의 감옥에, 그것도 무기징역으로 갇혀 살 것이다.-342쪽

햇살이 환하다. 나는 눈을 크게 뜬다. 사십 년 남짓한 세월을 그래온 것처럼 버스 정류장에 선다. 내 삶이 삼십 분 만에...... 송두리째 끝났다. 어쩌면 나는 계속 글을 써야 할 것이다. 신문에 싣는 글만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과 내가 겪은 모든 것에 대해. 어쩌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내 나이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 생각에 울음과 웃음이 동시에 터진다. 어젯밤만 해도 나는 내 인생에 새로운 것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343쪽

(옮긴이의 말)
흑인과 백인을, 더 크게는 인종과 인종을 갈라놓는 선이 점차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한편으로 확산되고 변형되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핵심은 우리는 그저 두 사람이야, 우리를 가르는 건 그렇게 많지 않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어, 하고 깨닫는 것이라고. 우리는 이 말에 진심으로, 얼마나 동의하는가.-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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