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여기는 사람이 죽어도 동정하거나 울 수 없는 곳이에요. 수감자들 사이에 동요가 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자식이나 부모 형제가 죽어도 마음껏 울 수조차 없어요.-55쪽
곧 금만이네 엄마 아빠도 금만이가 죽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하지만 금만이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평생 모를 거예요. 수용소에선 사람이 죽으면 늘 이렇게 처리하니까요. 수용소를 지키는 군견이 잘못을 하면, 군견재판을 한 다음 총살을 한 대요. 나이가 들어 군견이 죽게 되더라도 고기로 먹지 않고 묻어 준대요. 그런데 우리는 수용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서조차 개만도 못한 취급을 당해요.-58쪽
누가 엿듣기라도 하면 큰일이에요. 북한에서는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는 날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끌려가요. 혹시라도 불만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늘 감시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가족이나 동무들 사이에도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북한이에요.-73쪽
그런데 언젠가부턴가는 도둑을 잡고도 눈감아 주는 군인들이 늘어났어요.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그냥 놓아주는 거예요. 군인들도 굶주리기는 마찬가지다 보니 그렇게 해서라도 배를 채우는 거지요. 몰래 빼돌리는 양은 점점 늘어나고 그 때문에 당에 바쳐야 할 수확량은 계속 미달되었어요. 수확량을 채워야 하니까 해마다 일은 더 많아지고 굶주리는 사람들 역시 늘어났지요.-76쪽
꽃제비치고 이와 벼룩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근지러워 손을 대면 어김없이 이가 잡히고, 옷 솔기마다 벼룩이 득실득실해요. 심한 아이들은 머리가 노인처럼 하얘요. 이가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알을 깐 거예요.-96쪽
방금 전까지도 죽은 사람이 그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거나, 죽은 사람이 먹던 음식이었다는 건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발견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죽은 사람이 꽃제비일 때는 경쟁자가 하나 줄었다고 생각할 정도지요. 잔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건 꽃제비 생활에서 흔히 있는 일이에요. -99쪽
처음엔 붙잡힐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는데, 몇 번 덮치고 나니 무서울 게 없어요. 세상에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요? 그것도 어린 동생을 혼자 두고 말이에요.-104쪽
"형, 많이 아프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어요.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져 붉게 얼룩졌어요. 동생이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어요. "형, 우리 이다음에는 부자로 태어나자. 부자로 태어나서 먹고 싶은 거 다~ 먹자."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동생을 보며 설핏 웃었어요. "명환아 ……." "응?" 목구멍이 울컥하더니 피를 한 움큼 토해 냈어요. ‘우리 다시는 이런 세상에 태어나지 말자.’-109쪽
우리는 불법체류자로 분류되면서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119쪽
엄마와 나는 공안에게 붙들리면 그 즉시 먹으려고 주머니에 늘 독약을 넣고 다녀요. 다시 북한에 끌려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거든요. -120쪽
우리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잘 때도 꼭 신발을 신고 자요. 대대적으로 단속이 뜰 때는 뒷산으로 올라가 찬 바닥에 비닐박막을 깔고 자요. 언제 발각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매 순간을 사는 거예요. 우리에게 미래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오늘도 무사히 넘기기만을 바랄 뿐이랍니다.-122쪽
중국에 와서 놀란 건 흰 쌀밥도, 으리으리하게 높은 건물도 아니에요. 나를 정말 놀라게 한 건 길가에 서 있는 가로수들이었어요. 북한에는 산에도 나무가 없는데 여긴 눈만 돌리면 어디에든 나무가 있었으니까요.-147쪽
할아버지는 북한에 남겠다고 했어요. 불편한 몸으로 가다 붙잡히면 나까지 곤혹을 치른다며 거듭 안 가겠다고 했어요. 아무리 떼를 써도 이번에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요.-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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